특허 제도는 기본적으로 특허권자를 보호함으로써 기술혁신을 촉진하고 산업발전을 도모하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특허 제도를 운영하는 각 나라마다 산업발전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선진기술을 추종하는 패스트-팔로워 전략을 추진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개발도상국 또는 중진국에서는 대체로 특허 제도를 느슨하게 운영하는 경향(anti-patent)이 있고, 지속적인 기술혁신을 통해 선진기술을 발굴하고 사수해 나가는 퍼스트-무버 전략을 갖춘 선진국에서는 특허 제도를 강화해 나가는 경향(pro-patent)이 있다. 다만, 특허 제도를 느슨하게 운영하는 경향이 있는 국가라도 상대적으로 비교우위에 있는 산업분야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산업분야에 비해 특허 제도를 강화해서 운영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국제특허출원(PCT) 건수 기준으로 현재 세계 4위의 특허출원 강국으로서 지난 10년간 특허권 보호를 위한 법제를 꾸준히 강화해 왔는데, 이하에서는 이러한 추세를 네 가지 측면에서 되돌아 보고자 한다.
1. 손해배상
올해 8. 21. 시행된 개정 특허법(법률 제20322호)에 따르면, 고의적인 특허침해에 대해 최대 5배까지 증액 배상이 가능해졌다. 이는 지난 2019. 7. 9. 최대 3배 수준의 증액 배상 제도가 도입된 지 약 5년만에 다시 손해배상의 상한이 대폭 증액된 것으로 특허권자 보호에 대한 정부와 국회의 단호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주요 국가들이 증액 배상제도를 운용하고 있지만, 최대 5배 수준은 현재 전 세계 주요국 중에 중국이 유일하다.
침해자 판매수량도 합산
한편 2020. 12. 10. 시행 개정법에서는, 특허침해에 대한 손해배상액 산정시 특허권자의 생산능력을 한도로 산정하던 종전의 방식을, 특허권자의 생산능력을 초과하는 침해자의 판매수량에 대해서도 특허발명의 합리적인 실시료를 기초로 계산해 이를 합산하도록 개정하였다. 이에 따라 생산설비 등이 부족한 영세 기업들도 실효적인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2. 침해 입증
특허침해소송에서는 침해입증에 필요한 증거자료들이 주로 침해혐의자 측에 편재되어 있어 특허권자가 침해사실이나 손해액 입증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2016. 6. 30. 시행 개정 특허법에서는,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종전 서류제출명령 규정을 자료제출명령 규정으로 바꾸면서 제출 대상을 "서류"에서 "자료"로 확대하고, "손해액 산정"뿐만 아니라 "침해의 증명"에 필요한 경우에도 본 규정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제132조). 또한 2019. 7. 9. 시행 개정 특허법에서는, 특허권자가 주장하는 침해행위의 구체적 행위 태양을 침해혐의자가 부인하는 경우에 침해혐의자가 스스로 구체적인 행위 태양을 제시하도록 의무를 부여하였다(제 126조의2).
K-discovery 논의 주목
이러한 일련의 입법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특허침해소송에서 침해와 손해 증명에 필요한 증거의 확보에 어려움이 계속되자, 적어도 특허침해소송이 제기된 사건에 대해서는 미국과 같은 증거개시 제도(discovery)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실무계에서의 요청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미국식의 증거개시 제도보다는 독일식의 전문가에 의한 사실조사제도(inspection)가 우리 실정에 맞다는 등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는데, 한국형 증거수집제도(소위 K-discovery)가 향후 어떤 식으로 논의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3. 형사사건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특허침해에 대해 민사적 구제뿐만 아니라 형사적 제재도 고려할 수 있는 독특한 법제를 가지고 있다. 형사 사건의 효율적인 처리를 위해 특허청은 2010년부터 특별사법경찰 제도를 운영해 오고 있는데, 초기 특별사법경찰은 상표침해 사건을 주로 처리하였으나, 2019. 3. 19.부터는 특허, 영업비밀, 디자인 침해까지 다룰 수 있도록 그 기능이 확대되었고, 2024년 1월부터는 실용신안, 영업비밀 침해 전반(예비 · 음모, 미수 등)으로까지 확대되었다. 한편 특허침해죄는 고소해야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였으나, 2020. 10. 20. 이를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로 변경하여 특허침해를 형사사건화 할 수 있는 문턱을 낮추어 주었다.
4. 권리보호
기술 발달에 따라 기존 특허법에 의한 보호가 제한적이어서 법을 개정한 경우도 있다. 소프트웨어는 종래 CD나 USB와 같은 기록매체에 저장되어 판매되어 왔으나, 근래에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하여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소프트웨어의 경우, 기존 특허법에 따르면 물건발명과 방법발명으로 보호될 수 있는데, 소프트웨어가 저장된 기록매체는 특허법상 "물건"으로서 이를 생산, 양도하는 행위는 특허권 침해에 해당될 수 있다.
'온라인 전송' 행위 포괄
그러나 소프트웨어를 온라인으로 전송만 할 경우 기존 특허법상으로는 침해를 주장하기 어려웠다. 이에 따라, 2020. 3. 11. 시행 개정 특허법에서는, 방법발명의 실시에 관한 규정(제2조 제3호 나목)에 "그 방법의 사용을 청약하는 행위"를 추가함으로써 이 규정이 "소프트웨어의 온라인 전송(다운로드)" 행위를 포괄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다만, 이로 인한 소프트웨어 산업의 위축을 우려하여 개정법은 "특허권 또는 전용실시권을 침해한다는 것을 알면서" 그 방법의 사용을 청약하는 행위에만 특허권의 효력이 미치도록 하였다(제94조 제2항 신설).
간접침해 규정 적절한 활용 필요
한편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특허법에 특허발명을 그대로 실시함으로써 침해가 되는 직접침해 규정과 직접침해로 될 가능성이 큰 간접침해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특허보호의 실효성을 높이고 기술 발전에 따른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간접침해 규정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특허청은 2018년 9월 "특허간접침해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한 바 있고, 미국, 유럽 및 일본 등은 산업환경 변화에 따라 간접침해의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온 만큼 우리나라도 이와 관련된 규정의 정비가 조만간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 간 기술 경쟁이 격화되고 있고 기술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되는 요즘, 특허권 보호를 강화하려는 추세는 선진기술을 보유한 국가들의 일반적 현상으로 보인다.
유럽은 2023. 6. 1.부터 유럽 단일특허(Unitary Patent) 및 통합특허법원(Unified Patent Court)을 도입하여 기업의 특허분쟁에 대한 신속한 해결을 도모하고 침해금지명령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됨으로써 글로벌 기업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특허권자에게 유리한 증거조사 제도를 갖고 있고 침해자 측에 막대한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 특허 분쟁의 해결 장소로서 인기가 높다.
부산지법, 증액 배상 첫 인정
특허법원이 주최하여 올해로 10년차가 된 국제 특허법원 컨퍼런스(IP court conference)가 지난 11월 6일과 7일에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는데, 첫 번째 세션의 주제를 "국제 지식재산분쟁에서 선호되는 법정지"로 정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법원에서도 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특허침해에 대한 증액 배상 제도가 도입된 이후 부산지법 2023가합42160 사건에서 처음으로 증액 배상이 인정된 바 있고, 최근에는 상표 침해 사건(2023나11399)에서도 증액 배상이 인정된 사례가 등장하였다. 관련 제도가 도입된 지 근 5년이 지나도록 좀 더 많은 선례와 법리들이 축적되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쉽지만, 손해배상액의 현실화를 위한 그간 정부와 국회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를 기대해 본다.
이와 더불어 특허침해소송에서 증거의 편재를 극복할 수 있도록 특허권자에게 최소한으로 부여된 자료제출명령과 구체적 행위태양 제시의무(제126조의2)가 적극적으로 시행되어 우리나라도 장차 특허출원 건수뿐만 아니라 특허권자 보호 측면에서도 모자람이 없는 명실상부한 특허 강국으로 불릴 수 있는 환경이 조기에 정착될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지형근 변리사 · 손천우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hgji@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