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상 직접고용의무가 있는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정할 때 직장 내 동종 · 유사 업무를 하는 근로자가 없을 경우 법원이 적절한 근로조건을 선택해 적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3월 12일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받은 고속국도 통행료 수납원 596명이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낸 임금차액 또는 고용의무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상고심(2019다223303, 223310)에서 이같이 판시, 한국도로공사의 「현장직 직원 관리 예규」 중 조무원의 근로조건을 적용해 원고들의 기준임금 등을 산정한 원심을 수긍했다.
원고들은 한국도로공사와 고속국도 통행료 수납업무 용역계약을 맺은 외주사업체에 소속되어 한국도로공사의 통행료 수납업무를 수행한 근로자들로, 이에 앞서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2019년 8월 대법원에서 대부분 파견법상 공사에 직접고용간주된 근로자이거나 공사에 직접고용의무가 있다고 판단을 받았다.
재판에선 사용사업주에게 직접고용이 간주되거나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하였는데 동종 · 유사 업무 근로자가 없는 경우 어떤 근로조건을 적용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1심에 이어 항소심 재판부가 현장직 직원 관리 예규 중 조무원의 근로조건을 적용, 한국도로공사는 원고들에게 약 21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자, 한국도로공사가 상고했다.
대법원은 먼저 "사용사업주가 근로자파견관계를 부인하는 등으로 인하여 자치적으로 근로조건을 형성하지 못한 경우에는 법원은 개별적인 사안에서 근로의 내용과 가치, 사용사업주의 근로조건 체계(고용형태나 직군에 따른 임금체계 등),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의 입법 목적, 공평의 관념, 사용사업주가 직접 고용한 다른 파견근로자가 있다면 그 근로자에게 적용한 근로조건의 내용 등을 종합하여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가 합리적으로 정하였을 근로조건을 적용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다만, 이와 같이 파견근로자에게 적용될 근로조건을 정하는 것은 본래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가 자치적으로 형성했어야 하는 근로조건을 법원이 정하는 것이므로 한쪽 당사자가 의도하지 아니하는 근로조건을 불합리하게 강요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원심은 ①원고들이 피고 소속의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직접고용이 되어야 하는데 현장직 직원 관리 예규는 피고가 현장에서 상시 · 지속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정한 취업규칙인 점, ②피고의 현장직군으로서 하위 직종 중 하나인 조무원은 피고 소속의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 중 가장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근로자로서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단순 · 반복적인 잡무를 처리하는 직종 전부를 지칭하므로 원고들과 같은 통행료 수납원도 이에 포함될 수 있는 점, ③피고는 2014년 이후 현장직 직원에 대하여 직종과 관계없이 동일한 기본급표를 적용하는 등 현장직 직원들의 근로가치를 동등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원고들이 수행한 업무가 현장직 직원의 업무보다 근로가치가 낮다고 볼 수 없는 점, ④외주화 이전에 통행료 수납업무를 담당한 비정규직 직원의 임금이 그 당시 청소원, 경비원 업무를 담당하던 비정규직 직원의 임금보다 다소 높았던 점에 비추어, 피고는 원고들과 같은 통행료 수납업무를 담당할 직원을 직접 고용할 경우 적어도 피고의 조무원에 준하는 근로조건을 적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점 등의 사정과 파견법의 차별금지 규정의 취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직접고용 시 원고들에게 적용되는 임금 등 근로조건은 피고의 현장직 직원 중 조무원에 적용되는 근로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며 "피고는 원고들로부터 파견근로를 제공받지 않았음을 전제로 제정 파견법에 따른 고용간주 내지 개정 파견법에 따른 고용의무 발생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데, 원심판결 이유를 앞서 본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에 파견법에 따라 직접고용 시 적용되는 근로조건의 내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원고들이 결근 등을 한 기간에 대한 임금을 결근일 등에 비례하여 감액하지 않고 전액을 인용하려면, 결근 등이 피고의 책임 있는 사유 등으로 인한 것으로 인정되거나, 그러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현장직 직원들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결근 등을 하여도 피고가 급여를 비례 감액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인정되어야 하는데, 피고의 책임 있는 사유 등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결근 등을 한 기간에 대하여 외주사업체가 감액한 비율만큼 기준임금을 감액하지 않은 부분, 급여명세서 등이 제출되지 않은 기간에 대해서도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한 부분 등을 다시 재판하라며 파기, 환송했다.
법무법인 오월이 원고들을, 한국도로공사는 법무법인 광장이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