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라 보호되는 영업비밀의 경우 특허권, 상표권, 저작권 등 다른 지식재산권들과는 다르게 권리 창설 또는 추정적 효과를 가질 수 있는 등록절차가 없고, 영업비밀 보유자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 권리 범위가 정해지게 된다.
권리 창설, 등록절차 없어
이러한 특성으로 인하여 여러 당사자들이 영업비밀 개발 과정에 관련되어 있을 경우 여러 법적 문제가 야기된다. 특히 기업들이 기술용역, 하도급 계약 등을 통해 연구 개발, 제조 전반에 걸쳐 기존 기술을 이용하여 새로운 기술을 만들었을 때, 이와 관련된 영업비밀의 귀속과 공동보유자들간 사용에 대한 법적 다툼이 발생하고 있다.
부정경쟁방지법상 규정 미비
그러나 부정경쟁방지법에는 영업비밀 개발 과정에서 여러 당사자가 관여하였을 때 누구를 영업비밀 보유자로 볼 것인지, 영업비밀의 공동보유자들이 있을 경우 여러 보유자들의 사용행위가 민, 형사상 책임이 발생하는지 명문의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판단은 당사자들의 합의가 가장 우선할 것이나, 이러한 합의가 없을 경우 기존의 다른 법리와 법원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 이에 대한 법리와 판례들이 점차 축적되어 가고 있지만 아직 명확한 법리가 구축되어 있지는 못한 상태이다.
대법원은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른 영업비밀 침해 금지 등 권리 행사를 할 수 있는 영업비밀 보유자에 대하여 기술상 · 영업상의 노하우를 최초로 생산 · 개발한 자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정당하게 양수받은 자나 실시권 허여(라이선스)계약에 의하여 영업비밀의 실시권(사용권)을 얻은자 등 법적으로 유효한 거래행위에 의하여 취득한 경우 등과 같이 정당한 권원에 의하여 취득한 자를 포함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대법원 1996. 11. 26. 선고 96다31574 판결 등)고 판시하고 있다. 다만 공동보유자에 대한 대법원의 명시적인 판단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 공동 귀속 인정
하급심에서는 직무발명에 관한 공동발명자에 관한 기존 대법원의 법리, 즉 "발명의 기술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착상을 새롭게 제시 · 부가 · 보완한 자, 실험 등을 통하여 새로운 착상을 구체화한 자, 발명의 목적 및 효과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과 방법의 제공 또는 구체적인 조언 · 지도를 통하여 발명을 가능하게 한 자 등과 같이 기술적 사상의 창작행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기에 이르러야 한다"(대법원 2012. 11. 15. 선고 2012도6676 판결 등)는 판시를 인용하여, 영업비밀 관련 자료를 생산, 개발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기여한 연구개발 주체에게 공동 귀속된다고 인정하고 있다(서울고등법원 2017. 11. 2. 선고 2017나2000733 판결, 대법원 상고기각 확정).
따라서 여러 당사자들이 영업비밀 관련 자료를 생산, 개발 하기 전에 명확하게 그 귀속과 사용 방식에 대하여 합의해두고 있지 않다면 그 내용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관여 주체들은 영업비밀의 공동보유자로서 부정경쟁방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여러 권리들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동보유자 일방이 다른 공동보유자의 동의 없이 영업비밀을 사용할 수 있는지, 아니면 영업비밀 침해가 성립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검토가 필요하다.
대법원의 명시적인 판단은 없었으나 하급심 판단에선 다소 상이한 결론들이 확인되고 있다. 학계에서도 이에 대한 견해가 나뉘고 있다. 결론이 다른 두 가지 하급심 판결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공동보유자 사이의 자유로운 사용 인정
서울고등법원 2021. 9. 9. 선고 2020나2038172 판결은, 제작물공급계약에서 원고(도급인)가 피고(수급인)에게 기존 설계도면 등 사양을 제공하였으나 구체적인 제작 과정에서 피고가 구성요소들을 변경, 수정하여 설계도면을 작성하였고, 피고가 이를 다른 제3자에게 제공하여 제품을 납품받은 사안에서, "영업비밀은 비밀성을 본질로 한다는 점에서 지식재산의 공개를 전제로 성립하는 위 지식재산권들과는 다르나, 무체재산으로서 경제적으로 유용한 가치를 가지고, 유체물과 달리 공동보유자 1인의 사용이 다른 공동보유자의 사용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위 지식재산권들과 다르지 않다. (중략) 영업비밀의 공동보유자도 그들 사이에 달리 약정이 없는 한, 영업비밀성을 상실하게 하지 않는 이상 다른 보유자의 동의가 없더라도 영업비밀을 사용할 수 있고, 영업비밀 침해행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공동 보유 영업비밀 사용에 관한 별도의 약정이 없다면, 공동보유자 타방의 동의가 없더라도 영업비밀 사용행위를 영업비밀 침해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공동보유자 사이의 침해 인정
반면 수원고등법원 2023. 3. 7. 선고 2021노69호 판결에선, 피해회사와 피고인 A가 공동 보유하는 영업비밀과 관련하여, 피고인들이 공모하여 피해회사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허락 없이 이를 피고인 B에게 누설한 것이 위 구 부정경쟁방지법 제18조 제2항에서정한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구 부정경쟁방지법에는 영업비밀 공유자 사이의 영업비밀 사용에 대한 규정이 없기는 하나, 이미 일반에 공지되어 있는 특허권과 저작권과는 달리, 영업비밀의 경우 영업비밀 공유자 사이에 아무런 제한없이 각자 사용을 인정하게 되면, 자칫 영업비밀이 일반에게 공개됨으로써 영업비밀로서의 속성(비공지성, 경제적 유용성)을 상실하게 될 위험을 초래하게 되므로, 위 특허권과 공동저작권에서의 법리와 같이 볼 수 없다"며 아무런 제한없이 제3자에게 공유 영업비밀을 제공하고 사용하도록 한 행위는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기존의 지식재산권에 관한 대표적인 규범인 특허법, 저작권법 외에 부정경쟁방지법 중 영업비밀 보호의 중요성이 국내 기술 산업의 발전과 함께 더욱 부각되고 있다. 특히 공동개발 계약, 하도급계약, 기술용역계약 등 여러 당사자들이 동일한 제품, 기술 개발에 함께 관여할 경우 당사자들 사이의 권리, 의무 관계를 명확히 합의해둘 필요가 있다. 명시적인 합의가 없을 때 발생하는 문제인 공동보유자 사이에서의 법적 책임의 경우 법원의 해석에 따라 많은 이해관계자들의 법적 지위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는바, 향후 대법원의 균형 있는 판단을 기대하여 본다.
이세희 변호사(김 · 장 법률사무소, sehee.lee@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