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100년이 넘는 징역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많고, 스페인 법원은 192명이 사망한 2004년 마드리드 열차 폭탄테러사건의 주범 3명에 대하여 각각 징역 42,924년, 42,922년, 34,715년(사망자 1인당 30년, 부상자 20년으로 계산)을 선고했다(다만 스페인은 선고형과 무관하게 최대 40년까지만 복역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법원은 8세 여자아이를 성폭행해 중상을 입힌 조두순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해 형량이 지나치게 약하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조두순은 재판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다는 이유로 이른바 주취감경(酒醉減輕)을 적용받았다.
판사의 형량은 왜 낮을까. 최근 《범죄사회》를 출간한 정재민 변호사도 "예전에 판사로 일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사실상의 항의)도 판사의 형량이 왜 그리 낮으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먼저 "양형은 결코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유죄, 무죄에 대한 판단은 두 가지 선택지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이지만, 양형은 가령 5년 이하의 징역형 중에서 숫자로 정확히 답을 특정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는 판사의 형량과 시민들의 형량 사이에 괴리가 큰 이유로, 검사와 변호인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는 판사의 중간자적 입장, 판사가 장기간 재판을 하면서 범죄자의 다양한 측면을 들여다보게 되면 생길 수 있는 감정적 요인 등을 들고, 강력한 처벌이 범죄를 막지 못한다는 명제가 엄벌주의에 비해 과학적,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도 양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의 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 이래 가혹한 처벌이 범죄의 감소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존재하고, 미국의 경제학자 아이작 에를리히도 통계 분석을 통해 범인 검거율이 높으면 범죄 발생률이 유의미하게 감소하지만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서 범죄 발생률이 감소한다는 근거는 발견할 수 없다고 했다고 소개했다.
저자는 양형을 현실화하는 방법으로 개별 처벌조항에 정해진 법정형의 상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양형이 피해자의 입장과 괴리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피해자가 법정에 등장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다며 적어도 피고인이 자백하는 사건의 경우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처음부터 뚜렷하게 구분되기 때문에, 법정에 피고인석을 놓아두고 피해자를 정식으로 초대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정 변호사에 따르면, 재판 업무 중 인공지능을 적용하기에 가장 좋은 업무가 바로 양형이다. 법관이 유사한 사건들의 양형을 참작해 해당 사건에서 가장 공평한 양형을 정하는 작업이, 알고리즘을 통해 유사한 영역을 찾고 통계 데이터를 학습해 귀납적 추론으로 결론을 내리는 인공지능의 작동 방식과 닮았다는 것이다. 정 변호사는 "인간 판사들은 같은 사건을 놓고도 저마다 다른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지만 인공지능은 같은 사건에 대해서 같은 결론을 내릴 것이므로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정의의 본질에 한걸음 다가설 것"이라고 주목했다.
범죄가 발생하면 경찰이 수사를 하고, 검찰이 기소를 하며, 법원이 재판을 한다. 이후 교도소는 교정을, 보호관찰소는 범죄예방을 맡는다. 저자는 범죄를 둘러싼 여러 제도를 순차적으로 짚어나가면서 각 시스템에 대한 시민들의 궁금증을 반영해 분야별로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책을 전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범죄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범죄를 막는 방법도 개인보다는 사회적 차원에서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