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금산군에 있는 화학공장에서 불산이 누출되어 인근 마을 주민들이 두통, 메스꺼움 등의 피해를 입었다. 대법원 제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2월 28일 피해를 입은 화학공장 인근 마을 주민 19명이 해당 공장을 운영하는 램테크놀러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상고심(2019다300866)에서 피고 측의 상고를 기각, "피고는 원고들에게 1인당 위자료 7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판결은 특히 환경오염피해구제법에 따른 배상책임 인정에서 피해자의 인과관계 증명 부담을 완화하여 '전체적으로 보아 시설의 설치 · 운영과 관련하여 배출된 오염물질 등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생명 · 신체 및 재산에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면 그 시설과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추정된다'는 법리를 처음으로 선언한 의미있는 판결이다.
대법원은 먼저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환경오염피해구제법)의 입법 목적과 취지, 관련 규정의 내용 등을 종합하여 보면, 환경오염피해에 대하여 시설의 사업자에게 환경오염피해구제법 제6조 제1항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경우, 피해자가 같은 법 제9조 제2항이 정한 여러 간접사실을 통하여 전체적으로 보아 시설의 설치 · 운영과 관련하여 배출된 오염물질 등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생명 · 신체 및 재산에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면 그 시설과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추정된다고 보아야 하고, 이때 해당 시설에서 배출된 오염물질 등이 피해자나 피해물건에 도달하여 피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이 반드시 직접 증명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사업자는 같은 법 제9조 제2항의 간접사실들에 대하여 반증을 들어 다투거나 같은 조 제3항의 사실들을 증명하여 추정을 번복하거나 배제시킬 수 있다.
대법원은 "이 사건 공장에서 누출된 불산은 기체 상태로 공기 중으로 확산되었다가 지표면으로 낙하하여 원고들에게 피해를 주었다고 볼 상당한 개연성이 있고, 달리 이 사건 사고와 원고들에게 발생한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정할 사정은 없다"고 지적하고, "피고는 화학물질관리법 제27조의 유해화학물질 영업을 하는 자이고 이 사건 공장은 화학물질관리법 제2조 제11호에 따른 취급시설에 해당하므로 피고는 공장의 설치 · 운영과 관련하여 환경오염피해가 발생한 때에는 그 피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원심은 위와 같은 법리에 따른 것으로 정당하고 거기에 환경오염피해구제법상 손해배상책임에 있어서 인과관계 인정과 증명책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2016년 6월 4일 램테크놀러지가 금산군에서 설치, 운영하는 공장 내에 위치한 불화수소 하역시설에서 수용액 상태의 불산을 차량의 탱크로리에 상차하는 작업을 실시하던 중, 하역시설 내부로 2,370kg 상당의 불산이, 하역시설 외부로 약 444.6kg 내지 871.3kg 상당의 불산이 각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고, 누출된 불산이 증발함에 따라 약 33.04kg 상당의 불화수소가 기체 상태로 대기 중으로 확산되었다. 이에 인근 마을 주민 72명이 초등학교 체육관으로 대피하고, 일부는 두통, 메스꺼움, 호흡곤란 등을 호소하여 응급실로 이송되었으며, 19명은 6월 4일부터 29일까지 기침, 가래, 수면장애, 소화장애, 기관지 불편, 두통, 안구통증 등을 호소하면서 인근 병원에서 진료와 치료를 받았다.
대법원에 따르면, 원고들의 거주지 대부분은 사고 발생지점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300~500m 사이에 위치하고, 사고 당시 바람은 공장이 있는 북쪽에서 마을 방향으로 1.0~2.1㎧의 속도로 불고 있었으며, 시간대는 밤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대법원은 "원고들은 사고 발생 직후 불산에 노출되었을 때 보이는 증상을 공통되게 호소하였고, 이로 인하여 응급실로 이송되거나 병원치료 등을 받았다"고 지적하고, "불산 노출 이외에 원고들에게 이처럼 공통된 증상이 나타날 만한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원고들의 소변검사에서 불산이 검출되지 않았다고는 하나 체내에 유입된 불화수소는 대부분의 양이 24시간 이내에 소변을 통해 체외로 배출되는바 이러한 사정만으로 사고와 원고들의 증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씨앤아이가 1심부터 원고들을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