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주행 중 사고 내고 피해차량이 갓길에 정차한 사이 그대로 달아났다면 물피 뺑소니"
[교통] "주행 중 사고 내고 피해차량이 갓길에 정차한 사이 그대로 달아났다면 물피 뺑소니"
  • 기사출고 2020.02.2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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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물피 뺑소니는 원활한 교통 확보 위한 것"

대법원 제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2월 6일 주행 중 그랜저 승용차를 들이받았으나 피해차량 운전자가 갓길에 차를 세운 사이 그대로 달아난 덤프트럭 운전자 황 모씨에 대한 상고심(2019도3225)에서 검사의 상고를 받아들여 특가법상 도주치상 혐의와 함께 도로교통법상 사고후미조치 혐의도 유죄라는 취지로 사건을 춘천지법 강릉지원으로 되돌려보냈다.

황씨는 2018년 5월 13일 오전 9시 40분쯤 25톤 덤프트럭을 운전하여 삼척시에 있는 편도 3차로 도로를 1차로를 따라 진행하던 중 2차로로 차선을 변경하다가 당시 2차로로 주행하던 A(67)씨가 운전하는 그랜저 승용차의 좌측 뒤 펜더 부분을 덤프트럭의 우측 앞바퀴 부분으로 들이받고도 그대로 달아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고로 A씨의 목이 심하게 꺾이고 몸이 양 옆으로 흔들리는 등 A씨와 A씨 차량의 동승자가 각각 전치 2주의 목뼈의 염좌 및 긴장 등의 상해를 입고, 수초 동안 떨리면서 밀려난 A씨의 차량은 뒤 펜더 부분이 찌그러지는 등 수리비가 3,816,439원이 들 정도로 파손되었으나, A씨가 사고 직후 3차로와 갓길 사이에 승용차를 정차시키는 사이 황씨는 사고를 인식하고도 정차하지도 않고 그대로 운전하여 도주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 재판부는 도주치상(인피 뺑소니)과 사고후미조치(물피 뺑소니) 혐의 모두 유죄로 판단,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인피 뺑소니 혐의는 유죄로 보면서도, 교통상의 위험이나 장해가 발생하였음을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며 물피 뺑소니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 벌금 300만원으로 감형했다.

도로교통법 54조 1항은 "차 또는 노면전차의 운전 등 교통으로 인하여 사람을 사상하거나 물건을 손괴한 경우에는 그 차 또는 노면전차의 운전자나 그 밖의 승무원은 즉시 정차하여 사상자를 구호하는 등 필요한 조치, 피해자에게 인적 사항(성명 · 전화번호 · 주소 등을 말한다) 제공의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148조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대법원은 그러나 "사고 충격의 정도, 피해차량 운전자의 사고 직후 상태, 피해 차량이 정차된 위치 등 제반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해차량 운전자가 실제로 피고인의 차량을 추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고로 인한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가 발생하였다고 보이고 피고인으로서는 그러한 위험과 장해를 방지 · 제거하여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고 판단된다"며 "그런데도 이와 달리 피고인에게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방지 · 제거할 의무가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도로교통법 위반(사고후미조치)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1심판결을 파기하고 판결이유에서 무죄로 판단한 원심에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후미조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또 "도로교통법 54조 1항 1호의 취지는 도로에서 일어나는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방지 · 제거하여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서 피해자의 피해를 회복시켜 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이 경우 운전자가 취하여야 할 조치는 사고의 내용과 피해의 정도 등 구체적 상황에 따라 적절히 강구되어야 하고 그 정도는 건전한 양식에 비추어 통상 요구되는 정도의 조치를 말한다"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