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태아가 피보험자인 상해보험도 유효"
[보험] "태아가 피보험자인 상해보험도 유효"
  • 기사출고 2019.04.0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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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분만 중 다쳤다면 보험금 지급해야"

태아를 피보험자로 한 상해보험도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태아가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상해를 입었다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제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3월 28일 현대해상화재보험이 분만 과정에서 아이가 뇌 손상을 입은 임 모(여)씨를 상대로 보험금 지급의무가 없다며 낸 소송의 상고심(2016다211224)에서 이같이 판시, 현대해상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확정했다.

2011년 8월 현대해상에 피보험자를 뱃속에 있는 아이로, 수익자를 자신으로 하는 보험에 든 임씨는 이듬해인 2012년 1월 28일 낮 12시 14분쯤 경주시에 있는 산부인과에서 흡입분만을 통하여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두개골 골절, 저산소성 허혈성 뇌손상 등의 상해를 입어 두 눈의 시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2년 후 시력장해로 영구장해 진단을 받았다. 이에 현대해상이 신생아질병입원일당 특별약관 등에 따라 임씨에게 1031만여원의 보험금을 지급했으나, 임씨는 가입금액 1억원의 보통약관, 상해후유장해(80%이상) 특별약관(가입금액 1000만원) 등에 따라 1억 2200만원의 보험금을 청구했다. 현대해상이 지급을 거절하고 보험금채무 부존재확인 소송을 냈다.

현대해상은 재판에서 "사람은 출생시부터 권리 ·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고, 사람의 출생시기는 태아가 모체로부터 전부 노출된 때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므로, 분만 중의 태아의 경우에는 상해보험의 피보험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상해보험은 피보험자가 보험기간 중에 급격하고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인하여 신체에 손상을 입는 것을 보험사고로 하는 인보험이므로, 피보험자는 신체를 가진 사람(人)임을 전제로 하나(상법 737조), 상법상 상해보험계약 체결에서 태아의 피보험자 적격이 명시적으로 금지되어 있지 않고, 인보험인 상해보험에서 피보험자는 '보험사고의 객체'에 해당하여 그 신체가 보험의 목적이 되는 자로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을 의미하며,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는 태아의 형성 중인 신체도 그 자체로 보호해야할 법익이 존재하고 보호의 필요성도 본질적으로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보험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이처럼 약관이나 개별 약정으로 출생 전 상태인 태아의 신체에 대한 상해를 보험의 담보범위에 포함하는 것이 보험제도의 목적과 취지에 부합하고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에게 불리하지 않으므로 상법 663조에 반하지 아니하고 민법 103조의 공서양속에도 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따라서 계약자유의 원칙상 태아를 피보험자로 하는 상해보험계약은 유효하고, 보험계약이 정한 바에 따라 보험기간이 개시된 이상 출생 전이라도 태아가 보험계약에서 정한 우연한 사고로 상해를 입었다면 이는 보험기간 중에 발생한 보험사고에 해당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원고와 피고가 맺은) 보험계약의 특별약관에서 태아는 출생 시에 피보험자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보험계약의 당사자인 원고와 피고는 이 약관의 내용과 달리 약정하여 약관 규정의 구속력을 배제할 수 있고, 또한 이 보험계약은 상해보험계약으로서 원고와 피고는 개별 약정으로 보험계약 체결 당시 태아였던 아이를 상해보험의 피보험자로 삼을 수 있다"며 "원고와 피고는 보험계약 체결 당시 보험대상자인 아이가 태아임을 잘 알고 있었고, 보험사고의 객체가 되는 아이가 태아 상태일 때 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체결일부터 보험료를 지급하여 보험기간을 개시하였으며, 이처럼 보험계약을 체결하게 된 동기와 경위, 절차, 보험기간, 보험계약에 의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당사자 사이에 특별약관의 내용과 달리 출생 전 태아를 피보험자로 하기로 하는 개별 약정이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현대해상과 임씨가 맺은 보험계약 청약서의 피보험자 정보란과 계약 전 알릴의무의 피보험자란에는 '태아'라고 명시적으로 기재되어 있다. 현대해상은 임씨와 보험계약을 체결한 날에 임씨로부터 1회 보험료를 납부받았고, 보험증권에 보험기간 개시일을 보험계약 체결일이자 1회 보험료를 지급받은 2011년 8월 25일로 기재하였다.

따라서 태아의 피보험적격을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고, 현대해상은 임씨에게 보통약관 등에 따른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결론이다.

현대해상은 또 "보험계약 약관에서는 '피보험자의 출산'으로 인하여 보험금 지급사유가 발생한 경우 보험금 지급의무가 면책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보험계약 보통약관에 면책사유로 규정된 '피보험자의 출산'은 피보험자가 출산의 주체가 되는 경우만을 의미하는 것이지 피보험자가 출산의 대상이 되는 경우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없다고 판단한 원심에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