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21곳의 전 세계 사무소에 포진하고 있는 HFW의 16명의 건설(Construction) 부문 파트너 중 한국계 파트너는 제가 유일해요. HFW의 다른 업무분야를 다 합쳐 보아도 한국계 파트너는 제가 유일하고요."
영국 로펌 HFW(Holman Fenwick & Willan)의 싱가포르 사무소에서 건설 부문 파트너로 활약하고 있는 이현경(Helen Lee) 뉴질랜드 변호사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건설 분야에서 성공한 '건설 전문 여성 변호사'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장을 잘 알고 현장을 중시하는 변호사', '실용적인(pragmatic) 솔루션이 돋보이는 변호사'가 건설업계에서의 그녀에 대한 평가다.
SK에코플랜트에서 12년간 근무
변호사 18년차인 이 변호사는 전체 변호사 경력의 약 2/3에 해당하는 12년 넘게 한국의 주요 건설사 중 한 곳인 SK건설, 현 SK에코플랜트에서 글로벌 법무담당 부사장으로 임기를 마칠 때까지 사내변호사로 활동했다. 특히 인하우스 로이어로서 클레임 관리부터 계약 체결, 분쟁해결까지 SK건설이 수주한 굵직한 해외건설 공사를 성공적으로 뒷바라지하며 건설사 사내법무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 주인공으로, 그녀의 인터내셔널 로펌행도 건설사 법무실장(General Counsel)으로서의 성공적인 경력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변호사는 "보통 클레임이 걸리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은데, SK건설 법무팀에선 클레임을 걸어 수익을 내고 회사를 살렸다"고 강조하고, "그런 노하우를 SK에코플랜트뿐만 아니라 클레임에 노출된 전 건설사를 상대로 제공하고자 HFW에 합류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지난해 5월부터 HFW 건설 섹터(Sector) 파트너로 바쁘게 자문하고 있는 이 변호사를 싱가포르 현지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지난해 5월 건설 섹터 파트너로 HFW에 합류했는데, 싱가포르 사무소로 로케이션(Location)이 정해졌다.
"싱가포르에 한국의 건설사들이 많이 진출해 여러 의미있는 공사에 참여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마리나 베이 샌즈(MBS)도 한국 건설사 작품이고, 싱가포르의 도시철도(MRT) 건설도 6개 프로젝트를 수행한 SK건설을 비롯해 삼성, GS, 현대 등 한국의 건설사 여러 곳이 참여했다. 내가 부임하기 전엔 HFW 싱가포르에 건설 담당 파트너가 없었다. 싱가포르에 건설 섹터를 만들라는 미션을 주어 나를 보낸 것이다. 코리아 데스크뿐만 아니라 HFW 싱가포르의 건설 업무를 디벨롭(develop)하는 게 나의 역할이다."
-홈페이지의 HFW 소개글에 보면, 맨 앞에 섹터 중심의 로펌(an entirely sector-focused firm)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어떤 의미인가?
130년 전 시작…6개 섹터 중시
"말 그대로 고객의 사업과 그 사업이 가동되는 섹터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으로 무장한 변호사들을 섹터별로 배치해 팀을 구성하고 고객에 자문한다는 내용이다. 자연스럽게 고객의 딜과 분쟁은 물론 전략에 대해서까지 자문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실용적인 솔루션으로 이끌게 된다. HFW는 고객의 이익을 보호하고 강화하는 데 매우 엄격하지만, 우리는 불필요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소송에 시간을 소비하지 않는다. 딜이 공격을 받을 수 있거나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130년 전 런던에서 해상(Shipping) 업무로 시작한 HFW은 특히 해상과 함께 보험과 재보험(Insurance & Reinsurance), 건설(Construction), 에너지(Energy), 국제거래(Commodities), 항공(Aerospace)의 6개 섹터를 중시한다.
-SK에코플랜트 시절 건설사의 사내법무 업무에서 많은 성과와 개선을 도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내용들인가?
"12년 넘게 SK에서 일하면서 건설사가 해외에서 공사를 따 발주처와 프라임계약을 맺는 일부터 현지의 하청업체 등과의 수많은 계약 협상과 체결, 대규모 공사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지체상금과 추가 공사비 관련 클레임, 국제중재와 소송 등 분쟁 대응에 이르기까지 해외건설의 전 과정에 관여하며 회사의 이익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개개의 케이스마다 많은 성과를 냈는데, 2013년 해외 유명 컨설팅사와 1년간 정액(lump sum)으로 계약을 맺고 공사 지연 원인의 분석 등 컨설팅을 받아가며 10건의 급박한 클레임을 처리한 후 관련 업무를 내재화해 이후 법무팀 자체적으로 수행하게 된 것을 잊을 수 없다. 컨설팅 회사와 1년간 정액계약을 맺은 것도 흔한 경우는 아니었지만, 1년간 10건의 클레임을 처리하면서 관련 업무를 배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더 이상 외부 컨설팅사를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내부에 클레임 대응역량을 구축한 것이다. SK건설 법무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SK건설과 함께 조인트벤처로 참여한 한국의 다른 건설사를 상대로 클레임 대응 용역을 제공, 수익을 창출하기도 했다. 법무팀은 원래 비용을 쓰는 부서인데, SK건설에선 제한적이나마 프로핏(profit) 센터가 된 것이다."
이 변호사는 이어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등 그동안 축적된 클레임 대응 노하우를 매뉴얼화했다"며 "법무팀의 구성이 바뀌더라도 법무팀의 클레임 대응 역량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미래를 내다본 장치였다"고 덧붙였다.
FT, 'Innovative Lawyer' 선정
이현경 변호사는 사내변호사로서의 이러한 노력과 성과를 인정받아 2019년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로부터 'innovation in operation; new business and service delivery model' 분야에서 Innovative Lawyer 즉, 혁신 변호사로 선정되었다.
-HFW에선 어떤 일을 하고 있나?
"HFW가 나를 선택한 이유가 건설사 인하우스 카운슬로서의 경험을 똑같이 '복사해 붙이기(copy and paste)'로 한국의 건설사 등 다른 건설사들을 위해 일해 달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동안 사내변호사로서 SK만을 위해 일해왔는데, 그런 노하우를 많은 건설사들을 위해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가슴이 굉장히 두근거리는 의욕을 느꼈다. 서슴없이 HFW를 선택했다. 물론 SK에코플랜트에서의 경험을 복사해 붙이기하며 건설사들을 돕고 있다.
또 HFW가 해상과 건설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 해상풍력 분야에 강한데 나도 관련 업무에 관여하고 있다. 지난 1월 26일 서울 여의도의 전경련회관에서 진행된 HFW와 한국풍력산업협회가 공동 주최한 '해외에서의 해상풍력 분쟁 실사례와 보험 세미나'에 참석해 프레젠테이션했다."
이 변호사는 HFW에 합류한 후 한국의 건설사를 대리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진행 중인 담수 프로젝트와 관련, 여러 건의 딜레이 이벤트(delay event) 분석을 통한 계약적 근거를 마련해 공사 지연이 발주처 사정으로 발생했으니 지체상금을 물려선 안 되고 추가 공사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의 클레임을 제기했다. 방글라데시에서의 공사와 관련해선 또 다른 한국 건설사를 대리해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SIAC) 중재를 수행할 예정이다. 이 변호사의 말대로 건설사 사내변호사의 경험을 살린, 다양한 건설 클레임, 건설 분쟁에서의 활약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 보상 탄원' 공익활동 수행
싱가포르내 한국상업회의소(KOCHAM)의 임원이자 법률위원회 부위원장인 이 변호사는 코로나 팬데믹 때 싱가포르 정부가 싱가포르내 공사를 강제로 중단시켰음에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공사 현장의 노동자나 직원들의 체재비 손실과 관련, KOCHAM이 싱가포르 정부에 제출하려고 하는 보상 탄원서의 초안 작업을 무료로 수행하고 있다. 싱가포르 건설사는 싱가포르 정부가 손실을 보전해 주었으나 한국 건설사들에 대해선 보전해 주지 않은 데 따른 보상 신청으로, 이 변호사가 한국의 건설사들을 위해 일종의 공익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2월 현재 싱가포르에서 한국 건설사들이 수주한 공사가 모두 410건, 수주액은 미화 472억 달러에 이른다. 그만큼 한국 건설사들이 싱가포르 건설시장에 많이 진출해있다.
싱가포르=리걸타임즈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