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32주 전 태아 성별고지 금지' 위헌 결정
[의료] '32주 전 태아 성별고지 금지' 위헌 결정
  • 기사출고 2024.02.2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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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남아선호사상 쇠퇴…태아 성별 접근 부모 권리"

의료인에게 태아의 성별고지를 금지하는 의료법 조항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1987년 태아의 성별고지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으로 도입된 의료법 조항은 2008년 7월 31일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2004헌마1010)을 받아 2009년 12월 31일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별고지를 금지하는 내용으로 개정되었으나 헌법재판소가 다시 위헌 결정을 내려 효력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2월 28일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별고지를 금지하고 있는 의료법 20조 2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2022헌마356, 2023헌마189, 1305)에서 재판관 6대 3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의료법 20조 2항은 "의료인은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나 임부를 진찰하거나 검사하면서 알게 된 태아의 성을 임부, 임부의 가족, 그 밖의 다른 사람이 알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를 위반하면 면허정지와 형사처벌 등의 제재를 받게 되나 의료법 20조 2항이 위헌 결정으로 무효가 된 것이다.

재판부는 "과거 성비불균형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을 당시에는, 형법상 낙태죄만 가지고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를 방지하는 것이 어렵다고 보아 태아의 성 감별 및 고지 자체에 낙태의 개연성이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금지하는 것이 타당할 수 있었으나, 그동안의 사회적 변화를 고려할 때, 심판대상조항이 임신 32주 이전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행위를 태아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행위로 보고, 태아의 생명을 박탈하는 낙태 행위의 전 단계로 취급하여 이를 제한하는 것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2009년 의료법의 관련 조항이 심판대상조항으로 개정된 이후 15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는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과 함께 양성평등의식이 상당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국민의 가치관 및 의식의 변화로 전통 유교사회의 영향인 남아선호사상이 확연히 쇠퇴하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출산 순위별 출생성비는 모두 자연성비의 정상범위 내로서, 셋째아 이상도 자연성비의 정상범위에 도달한 2014년부터는 성별과 관련하여 인위적인 개입이 있다는 뚜렷한 징표가 보이지 않는다.

또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21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공임신중절 시기가 의료인이 초음파로 태아의 성감별이 가능한 최소 임신주수인 16주를 기준으로는 97.7%, 고위험군 산모로 산전 기형아 검사를 하여 태아의 유전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최소 임신주수인 10주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89.8%가 그 이전에 인공임신중절을 하였으므로, 90% 이상은 태아의 성별을 모른 채 인공임신중절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신 10주 이후에 인공임신중절을 한 경우를 대상으로 그 이유를 조사하였지만, 태아성감별 가능 시기를 기다린 경우는 없었다. 헌재 재판부는 따라서 태아의 성별과 낙태 사이에 유의미한 관련성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태아의 성별고지를 금지하는 심판대상조항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의료인으로부터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별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지만 검찰총장의 사실조회회신에 따르면 심판대상조항을 위반한 경우 적용되는 형사처벌조항에 따라 검찰 고발 또는 송치된 건수 및 기소 건수는 10년간 한 건도 없다"고 지적하고, "이는 심판대상조항이 행위규제규범으로서의 기능을 잃었고 사문화되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출산 순위와 상관없이 출생성비가 모두 자연성비에 도달한 것은 국민의 가치관과 의식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므로, 심판대상조항은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수단으로서 실효성이 없고, 그 존치의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된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부모가 태아의 성별을 알고자 하는 것은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욕구로 태아의 성별을 비롯하여 태아에 대한 모든 정보에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는 부모로서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라며 "심판대상조항은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적합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태아의 성별 정보에 대한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필요 이상으로 제약하여 침해의 최소성에 반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종석 헌소장과 이은애, 김형두 재판관은 "우리 사회에서 성별을 이유로 한 낙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으므로, 비록 과거보다 그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하더라도 국가는 이러한 낙태로부터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책임을 소홀히 하여서는 안 되고, 태아의 성별고지를 제한할 필요성은 계속 존재한다고 할 것"이라며 "심판대상조항에 대하여 잠정적으로 적용하는 헌법불합치결정을 하고 입법자로 하여금 낙태죄에 관한 형법 개정안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태아의 성별고지 제한 시기를 앞당기는 것으로 개선입법을 하도록 함으로써, 태아의 부모에 대한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면서도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수단에 관하여 법적 공백이 없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헌법소원을 낸 청구인 4명은 모두 변호사로, 임신한 임부 또는 임부의 배우자들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