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2021년 11월 22일 인터넷 중기거래 사이트에 자신 소유의 두산 굴삭기를 판매희망가격 6,500만원으로 하여 매물로 등록했다. 보이스피싱 사기범인 B는 같은 날 A에게 연락해 이 굴삭기를 살 것처럼 행동하면서 인터넷 판매사이트에 올린 굴삭기 판매글을 내리게 하고, 이후 A로부터 굴삭기와 건설기계등록증 · 양도증명서, 인감증명서 사진, 은행계좌번호 등을 휴대전화 문자로 받았다.
한편 B는 11월 30일 A를 사칭하면서 C에게 연락해 굴삭기를 5,400만원에 매도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같은 날 C의 직원에게 전화해 굴삭기를 매도하기로 구두상 약정했다. C의 직원은 다음 날인 12월 1일 오전 9시쯤 B에게 전화해 굴삭기에 대한 매매계약을 확정하고, 같은 날 오후 3시 50분쯤 B로부터 A의 금융계좌와 인감증명서, 등록증원본, 이전서류 등을 사진으로 전달받았다. 이후 C는 B의 요구에 따라 굴삭기에 대한 매매대금 명목으로 같은 날 오후 4시쯤 5,400만원을 A 명의의 금융계좌에 송금했다. 5,400만원이 이체된 직후 B는 A에게 전화해 "세금신고 문제가 있어 내 통장에 거래금액이 찍혀야 한다며, 5,000만원을 자신이 지정하는 계좌로 다시 보내주면 바로 6,100만원을 송금하겠다"고 말했고, 이에 A는 5,000만원을 B가 지정한 은행 계좌로 이체했다.
그러나 이후 B는 연락이 두절되었다. 그대신 대금을 완납했으니 굴삭기를 가져가겠다고 하는 C의 직원과 매매대금을 받지 못했으니 굴삭기를 인도할 수 없다는 A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다. C와 A는 그제서야 B의 사기범행을 인지하게 되었다. C는 "법률상 원인 없이 5,400만원을 지급받았으므로 이를 부당이득으로 반환하라"며 A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제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월 25일, 1심에서 인용된 400만원의 부당이득반환과 별도로 A는 C에게 불법행위 과실 방조로 인한 손해배상으로 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과실 방조에 의한 불법행위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2023다288703). 1심 재판부는 A가 B의 요청으로 이체한 5,0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400만원만 C에게 부당이득으로 반환하라고 판결했으나, C가 항소하며 불법행위 과실 방조에 대한 5,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를 예비적 청구로 추가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이중 일부를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먼저 "타인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과실에 의한 방조로서 공동불법행위의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방조행위와 불법행위에 의한 피해자의 손해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하며,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할 때에는 과실에 의한 행위로 해당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사정에 관한 예견가능성과 아울러 과실에 의한 행위가 피해 발생에 끼친 영향, 피해자의 신뢰 형성에 기여한 정도, 피해자 스스로 쉽게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책임이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대법원 2015. 1. 29. 선고 2014다214038 판결 등 참조)"고 밝혔다.
이어 "피고(A)는 성명불상 사기범의 말에 속아 굴삭기를 매도할 목적으로 굴삭기 사진, 건설기계등록증 사진, 인감증명서 사진, 건설기계양도증명서 사진, 피고 명의 은행계좌번호 등을 휴대전화 문자로 전송해 준 피해자로 볼 수 있고, 피고가 이와 관련하여 어떠한 대가를 받지도 않았다"고 지적하고, "피고가 굴삭기를 매수할 것처럼 행세하는 성명불상 사기범의 요청에 따라 위와 같이 굴삭기 사진 등을 전송해 준 것은 굴삭기 매매과정에서 굴삭기의 상태나 정당한 등록 및 소유권 확인 등을 위하여 필요한 자연스러운 일일뿐 거래상 이례적이거나 비정상적인 일로 보이지 않고, 당시 피고로서는 원고(C)나 성명불상 사기범과 전혀 모르는 사이로서 사기범이 굴삭기 사진 등을 피싱 범행에 이용하리라는 것을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 있었다고 볼 만한 자료도 없다"고 밝혔다.
또 "원고는 성명불상 사기범에게 기망당하여 5,400만원을 피고 명의 은행계좌에 송금함으로써 위 돈을 처분하는 행위를 이미 한 것이고, 피고는 그 후 매수인이자 위 돈의 송금인으로 알고 있는 성명불상 사기범의 요청에 따라 위 돈을 다른 계좌로 이체해준 것에 불과하다"며 "당시 피고가 원고 등에 대한 관계에서 위와 같은 이체행위를 하지 말아야 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로서는 아직 성명불상 사기범에게 굴삭기의 소유권이전등록에 관한 서류를 교부하거나 위 굴삭기를 인도해 주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위와 같은 이체행위가 매도인으로서 이례적이거나 비정상적인 거래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고, 당시 피고가 위 이체행위로써 위 편취금이 성명불상 사기범에게 귀속하게 된다는 사정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위와 같은 사정을 앞서 본 법리에 따라 살펴보면, 이 사건에서 피고에게 성명불상 사기범의 불법행위에 대한 예견가능성이 있었다거나 피고의 행위와 불법행위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그런데도 피고의 과실 방조에 의한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한 데에는 과실 방조의 불법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다만, 부당이득 400만원의 반환 부분에 대해선 원심의 판단에 잘못이 없다며 그대로 확정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