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로공사의 외주사업체 소속 톨게이트 수납원들과 고속도로 안전순찰원들이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되어 한국도로공사 직원으로 인정받은 것과 달리 한국도로공사의 정보통신시설 유지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외주업체 근로자들에게는 한국도로공사와의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15부(재판장 윤강열 부장판사)는 1월 26일 한국도로공사로부터 ITS(Intelligent Transport System, 지능형 교통체계), 통행료수납시스템, 제한차량단속시스템 등 정보통신시설의 유지관리를 위탁받은 외주사업체 소속 근로자 79명이 "한국도로공사와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으므로 근로자 지위를 확인하거나 고용의 의사표시를 하고 고용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기간의 임금 상당 손해를 배상하라"며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2023나2010410, 2014276)에서 이같이 판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외주사업체들이 피고보조참가했다.
재판부는 한국도로공사가 원고들의 업무수행에 '상당한 지휘 ‧ 명령'을 했다는 증명이 부족하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피고가 용역계약 시 외주사업체에 제공한 과업지시서는 정보통신시설의 통일적 · 합리적인 유지관리 업무를 위한 것일 뿐 원고들의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지시가 아니고, 외주사업체는 과업지시서보다 상세하고 구체적인 매뉴얼, 고장수리사례집 등을 자체 제작하여 소속 근로자들에게 배포하였다"고 지적하고, "외주사업체가 피고에 제출한 일일업무일지, 고장수리확인서는 용역업무 수행 여부를 확인하고, 용역대금을 정산하기 위한 증빙자료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피고 내에서 정보통신시설의 유지 · 관리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부서나 인력은 존재하지 않고, 피고 감독원들은 정보통신시설과 관련된 행정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을 뿐이어서, 정보통신시설을 직접 유지 · 보수하는 원고들의 업무와 명확히 구분된다"며 "원고들이 피고 소속 근로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되어 직접 공동작업을 하는 등 피고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외주사업체들은 소속 근로자 선발이나 근로자의 수, 교육 및 훈련, 작업 ‧ 휴게시간, 휴가,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했다. 외주사업체들은 스스로 근무예정지, 급여, 업무, 자격 조건 등을 명시한 채용 공고를 하고, 지원자를 평가하여 소속 근로자들을 채용했으며, 독자적인 인사규정을 마련하고, 소속 근로자들의 내부 업무 분장, 인사이동, 인사평가, 승진 등을 자체적으로 결정 · 시행했다.
재판부는 "외주사업체는 피고 외에도 경찰청, 지방자치단체, 육군, 근로복지공단 등 각종 정부조직이나 공공기관과 용역계약을 체결하여 정보시스템 구축, 유지 · 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여 왔고, 전체 연간매출액 중 피고 용역계약 관련 매출액 비중이 14~16%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외주사업체들은 독립적인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따라서 "원고들이 주장하는 사정이나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원고들이 외주사업체에 고용된 후 피고의 각 지사에 파견되어 피고로부터 상당한 지휘 · 명령을 받고 피고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례(2022. 4. 28. 선고 2021다290160 판결 등)에 따르면, 원고용주가 어느 근로자로 하여금 제3자를 위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경우 그 법률관계가 위와 같이 파견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당사자가 붙인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①제3자가 당해 근로자에 대하여 직 · 간접적으로 그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 · 명령을 하는지, ②당해 근로자가 제3자 소속 근로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되어 직접 공동작업을 하는 등 제3자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③원고용주가 작업에 투입될 근로자의 선발이나 근로자의 수, 교육 및 훈련, 작업 · 휴게시간, 휴가,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④계약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업무의 이행으로 확정되고 당해 근로자가 맡은 업무가 제3자 소속 근로자의 업무와 구별되며 그러한 업무에 전문성 · 기술성이 있는지, ⑤원고용주가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의 요소를 바탕으로 그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
법무법인 현재가 원고들을, 한국도로공사는 법무법인 화우가 대리했다. 또 법무법인 광장과 강남이 피고보조참가한 외주업체들을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