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을 상대로 한 구체적 현안의 해결이 전제되지 않은 포괄적인 자문계약을 맺고 편의제공에 대한 대가로 보수를 지급받았더라도 특가법상 알선수재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알선수재죄의 판단기준을 처음 제시한 의미있는 판결이다.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A씨는 수리온 헬기, 고등훈련기, 경공격기 등을 제조 · 납품하는 방위사업체인 B사로부터 '사업 수주 등과 관련하여 회사 애로사항을 군 관계자에게 설명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달라'는 취지로 군 관계자에 대한 로비를 요청받고, 2015년 4월 1일경 B사와 경영자문위원 위촉계약을 체결했다. 이어 2015년 4월 21일경부터 2016년 3월 21일경까지 약 1년간 사업 수주와 의무후송헬기 물량 조정 및 수리온 헬기 납품대금 지급 등과 관련하여 12차례에 걸쳐 자문료 명목으로 매월 약 300만원 합계 3,600여만원을 지급받고, 같은 기간 활동비 명목으로 사용한 법인카드 대금 1,900여만원을 대납받는 등 B사로부터 5,500여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가 B사와 맺은 계약에 따르면, 보수는 실 수령액 기준 월 300만원으로 하고 월 150만원의 한도에서 자문활동비를 실비 정산하도록 되어 있으며, A씨는 계약 체결 이후 국방부 군수관리관 등 B사의 현안에 관련된 담당공무원들과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A씨는 또 기능성 전투화 업체 C사로부터 C사의 제품이 계속하여 군에 납품될 수 있도록 군 관계자에 대한 로비를 요청받고 C사와 컨설팅계약을 체결한 다음, 2016년 2월 3일경부터 5월 9일경까지 4차례에 걸쳐 자문료 형식으로 합계 1,900여만원을 지급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A씨가 정상적인 자문계약이 아닌 군 관계자에 대한 로비 대가로 돈을 받았다고 보고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를 적용해 A씨를 기소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3조는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하여 금품이나 이익을 수수 · 요구 또는 약속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B사, C사로부터의 금품 수수 모두 알선수재죄가 성립한다고 보고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추징금 7,500여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제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그러나 12월 28일 B사로부터의 금품 수수는 알선수재로 볼 수 없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2017도21248). 법무법인 한신이 A씨를 변호했다.
대법원은 먼저 특가법 제3조의 알선수재죄는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을 알선한다는 명목'으로 금품이나 이익을 수수 · 요구 또는 약속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로, 여기서 '알선'이라 함은 "일정한 사항에 관하여 어떤 사람과 그 상대방 사이에 서서 중개하거나 편의를 도모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의뢰 당사자가 청탁하는 취지를 공무원에게 전하거나 의뢰 당사자를 대신하여 스스로 공무원에게 청탁하는 행위, 공무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의뢰 당사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이 이루어지도록 돕는 등의 행위가 모두 위 조항에서 말하는 '알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이 의뢰 당사자를 위하여 공무원의 직무에 속하는 사항에 관한 일정한 행위를 하고 그 대가를 수수하기로 하는 등으로 타인의 사무에 관하여 자문 · 고문 · 컨설팅계약 등을 체결하는 경우, 그 계약이 구체적인 현안의 직접적 해결을 염두에 두고 체결되었고 피고인이 의뢰 당사자와 공무원 사이에 서서 중개하거나 편의를 도모하는 것에 대한 대가로서 보수를 수령하는 것이라면, 이는 알선수재행위에 해당할 수 있으나, 이와 달리 그 계약이 구체적인 현안을 전제하지 않고, 업무의 효율성 · 전문성 · 경제성을 위하여 피고인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에 바탕을 둔 편의제공에 대한 대가로서 보수가 지급되는 것이라면, 통상의 노무제공행위에 해당하여 알선수재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전제하고, "알선수재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는 당사자가 붙인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자문 등의 계약이 체결된 경위와 시기가 어떠한지, 의뢰 당사자가 피고인에게 사무처리를 의뢰하고 그 대가를 제공할 만한 구체적인 현안이 존재하는지, 피고인이 지급받는 계약상 급부가 의뢰 당사자와 공무원 사이를 매개 · 중개한 데 대한 대가인지, 현안의 중요도나 경제적 가치 등에 비추어 자문료 등 보수의 액수나 지급조건이 사회통념 · 거래관행상 일반적인 수준인지, 보수가 정기적 · 고정적으로 지급되는지 등 종합적인 사정을 바탕으로 계약의 실질에 따라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B사와 맺은 자문계약(이 사건 계약)은 그 내용에 비추어 경영일반에 관한 자문용역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지급받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일반적 자문 · 고문계약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 사건 계약이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여 A가 공소사실과 같은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하여 금품을 수수한 것이라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A는 육군 장성 출신으로 오랜 기간 군에 복무하였고, 국방부에서 군수 및 전력자원 관리에 관한 고위 간부로서 근무한 경험도 있는바, B사로서는 A의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 업무의 경제성 · 효율성 · 전문성을 도모할 유인이 있었고, 이 사건 계약이 구체적인 현안의 직접적 해결을 염두에 두고 체결되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공소사실에 기재된 현안은 매우 포괄적이고 광범위하여 사실상 B사가 수행하는 사업 전반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유죄의 증거로 검사가 제출한 문건의 내용들에 의하더라도 A는 그의 전문성이나 인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B사의 입장이나 의사를 객관적으로 전달하거나 해당 현안에 관한 정보 · 설명을 제공하였다고 보일 뿐이고, 이러한 행위는 B사의 통상적이고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보조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B사로부터 수령한 보수액은 1년간 5,500여만원정도인데, 이는 B사 내부의 임원 인사관리 규정에서 정한 일반 자문계약의 보수액에 해당하고, 한편 위 보수액은 대관업무를 수행하던 기존 군 출신 임원들이 지급받았던 금액에 비추어 현저히 적은 금액이며, 공소사실 기재 현안들의 중요도나 경제적 가치를 고려하면 공무원에 대한 알선을 통한 현안의 해결에 대한 대가라고 보기에도 사회통념상 과소한 금액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 "A가 담당 공무원들과 접촉한 사실이 인정되기는 하나 알선에 이르지 않는 적법한 영업 보조활동을 넘어 공무원들에게 청탁 또는 알선을 하였다고 볼 만한 자료는 나타나 있지 않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원심으로서는 이 사건 계약의 내용과 실질, 계약 체결의 경위와 목적, A가 수행한 업무의 내용 등을 살펴 A가 경영전반에 관한 일반적 자문을 하고 그에 대한 보수를 수령한 것이 아니라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에 관하여 알선을 의뢰받고 그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것에 해당한다고 볼 사정이 있는지에 대하여 더 심리하여 보았어야 했다"며 "그런데도 원심이 이 부분 공소사실(B사로부터의 금품 수수)을 유죄로 판단한 데에는 특가법 위반(알선수재)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다만, C사로부터의 금품 수수는 알선수재가 맞다고 인정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