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협약에서 근로자의 사망으로 지급되는 퇴직금을 유족에게 지급하기로 정한 경우 이는 상속재산이 아닌 유족의 고유재산으로 보아야 한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농협은행 직원 A씨가 숨지자 A씨의 부인과 두 자녀가 사망퇴직금 1억 800여만원을 상속재산목록에 포함시켜 한정승인심판을 청구, 사망퇴직금이 포함된 채로 한정승인신고가 수리되었다. 한편 A씨의 사망 당시 농협은행은 A씨에 대해 1억 500만원, 농협생명보험은 7,600여만원, 한국씨티은행은 6,300여만원의 채권을 각 보유하고 있었는데, 농협생명보험 등 세 채권자는 이 사망퇴직금 지급채권에 대해 가압류 또는 압류와 추심명령을 받았다.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는 농협은행은 A씨의 사망퇴직금 중 1/2에 해당하는 5,400여만원을 공탁했다. 이 공탁금은 배당기일에 채권 비율에 따라 농협은행에 2,300여만원, 농협생명보험에 1,700여만원, 한국씨티은행에 1,300여만원이 각 배당되었다. 농협은행은 사망퇴직금 중 나머지 5,400여만원에 대하여는 A씨의 부인 등이 이를 수령할 경우 단순승인이 된다는 이유로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A씨의 부인 등이 사망퇴직금 전부가 상속인들의 고유재산이라고 주장하며 농협생명보험 등 채권자 3곳을 상대로 부당이득이니 반환하라며 소송을 냈다. 농협은행의 단체협약과 퇴직금 규정엔 "사망으로 인한 퇴직자의 퇴직금은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유족에게 지급한다"고 되어 있다.
대법원 제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11월 16일 이 소송의 상고심(2018다283049)에서 사망퇴직금은 상속재산이 아닌 유족의 고유재산이라며, 원심과 마찬가지로 이미 피고들에게 배당된 사망퇴직금은 (근로기준법상 최선순위 유족인) A씨의 부인에게 반환하고, 나머지 5,400만여원도 A씨의 부인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퇴직급여법)은 사용자가 퇴직한 근로자에게 지급하여야 할 퇴직금의 액수, 지급 방법 등에 관하여 규정하였으나, 사망퇴직금의 수령권자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정하지는 아니하였다"며 "단체협약에서 근로자의 사망으로 지급되는 퇴직금(이하 '사망퇴직금'이라 한다)을 근로기준법이 정한 유족보상의 범위와 순위에 따라 유족에게 지급하기로 정하였다면, 개별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이와 다른 내용의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한 수령권자인 유족은 상속인으로서가 아니라 위 규정에 따라 직접 사망퇴직금을 취득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경우의 사망퇴직금은 상속재산이 아니라 수령권자인 유족의 고유재산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일반적으로 퇴직금은 후불적 임금으로서의 성격과 공로보상적 성격 외에도 사회보장적 급여로서의 성격을 함께 가지므로(대법원 2014. 7. 16. 선고 2013므2250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사망퇴직금은 사망한 근로자의 생전 근로에 대한 대가로서의 성격 외에 근로자의 사망 당시 그에 의하여 부양되고 있던 유족의 생활보장과 복리향상 등을 위한 급여로서의 성격도 함께 가진다고 볼 수 있다"며 "따라서 단체협약에서 근로자의 재직 중 사망으로 말미암아 생활보장이 필요한 유족에게 사망퇴직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정하는 것은 사망퇴직금의 성격에도 부합한다"고 밝혔다. 또 "단체협약은 헌법이 직접 보장하는 기본권인 단체교섭권의 행사에 따른 것이자 헌법이 제도적으로 보장한 노사의 협약자치의 결과물이므로 법원의 후견적 개입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대법원 2020. 8. 27. 선고 2016다248998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즉,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단체협약으로 유족의 생활보장과 복리향상을 목적으로 하여 근로기준법이 정한 유족에게 사망퇴직금을 지급하도록 정하였다면, 이는 그 자체로 현저히 합리성을 결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가급적 존중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에 앞서 이 사건 사망퇴직금 청구권은 근로기준법상 유족의 고유재산에 해당하고, 단체협약과 근로기준법 82조 등의 해석상 A씨의 부인이 최선순위 유족으로서 사망퇴직금의 정당한 수급권자라고 보았다. 이어 사망퇴직금 중 강제집행이 되지 않은 부분, 즉 농협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5,400여만원은 A씨에게 지급하고, 사망퇴직금 중 강제집행이 된 부분은 피고들이 A씨의 부인에게 각자 집행절차에서 배당받은 금액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망퇴직금은 A씨 부인의 고유재산으로서 피고들에 대한 책임재산이 될 수 없는바, 책임재산이 될 수 없는 재산에 대하여 강제집행절차가 종료된 후에는 집행채권자를 상대로 부당이득의 반환으로 실제로 추심한 금전 부분에 관하여 그 상당액을 반환을 구할 수 있으므로(대법원 2005. 12. 19.자 2005그128 결정 등 참조), 피고들은 부당이득반환으로 A씨의 부인에게 위 배당절차에서 추심한 각 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사망퇴직금이 A씨 부인의 고유재산에 해당한다는 원심의 판단에 사망퇴직금의 법적 성질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판단을 누락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법무법인 아이앤에스가 1심부터 원고들을 대리했다. 농협은행은 1, 2심에선 법무법인 하나로, 상고심은 법무법인 화우가 대리했다. 농협생명보험은 1심부터 상고심까지 법무법인 한별이 대리했다. 한국씨티은행은 1심에선 법무법인 한결이 대리했으나, 항소심부터는 대리인이 없이 소송을 진행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