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강제추행죄 처벌 범위 확대…'유형력 행사면 충분'
[형사] 강제추행죄 처벌 범위 확대…'유형력 행사면 충분'
  • 기사출고 2023.10.03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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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전합] '항거 곤란' 판례 폐기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상대방의 신체에 유형력을 행사한 것만으로도 강제추행죄에 해당한다는 새로운 판례를 제시했다. 피해자가 항거하기 곤란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고 본 기존 판례를 변경한 것으로, 강제추행죄의 처벌 범위가 넓어지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9월 21일 성폭력처벌법상 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2018도13877)에서 이같이 판시, 강제추행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강제추행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이송했다.

A씨는 2014년 8월 15일 오후 7시 23분쯤 자신의 집 방안에서 4촌 친족관계에 있는 B(15)양에게 "내 것 좀 만져줄 수 있느냐?"며 B양의 왼손을 잡아 자신의 성기 쪽으로 끌어당겼으나 B양이 이를 거부하며 일어나 집에 가겠다고 하자, "한 번만 안아줄 수 있느냐"며 B양을 양팔로 끌어안은 다음 B양을 침대에 쓰러뜨려 B양의 위에 올라타 반항하지 못하게 한 후, B양에게 "가슴을 만져도 되느냐"며 자신의 오른손을 B양의 상의 티셔츠 속으로 집어넣어 속옷을 걷어 올려 왼쪽 가슴을 약 30초 동안 만지고 B양을 끌어안고 자세를 바꾸어 B양이 자신의 몸에 수차례 닿게 했으며, "이러면 안 된다. 이러면 큰일 난다"며 팔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고 방문을 나가려는 B양을 뒤따라가 약 1분 동안 끌어안아 강제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인 보통군사법원 재판부는 강제추행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반면 항소심을 맡은 고등군사법원 재판부는 A씨의 행위가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강제추행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위력을 행사한 경우 범죄로 인정되는 아동 ·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상 위계 등 추행 혐의를 적용해 A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검사는 항소심에서 청소년성보호법상 위계 등 추행 혐의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했다.

형법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은 강제추행죄의 구성요건으로 '폭행 또는 협박'을 규정하고 있는데, 대법원은 폭행 또는 협박이 추행보다 시간적으로 앞서 그 수단으로 행해진 경우(이른바 폭행 · 협박 선행형)에는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하는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요구된다고 판시해 왔다.

대법원은 그러나 종래의 판례 법리를 폐기하고,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은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일 것이 요구되지 아니하고, 상대방의 신체에 대하여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폭행)하거나 일반적으로 보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협박)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강제추행에서 '강제(强制)'의 사전적 의미는 '권력이나 위력으로 남의 자유의사를 억눌러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시키는 것'으로서, 반드시 상대방의 항거가 곤란할 것을 전제로 한다고 볼 수 없고, 폭행 · 협박을 수단으로 또는 폭행 · 협박의 방법으로 동의하지 않는 상대방에 대하여 추행을 하는 경우 그러한 강제성은 구현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피해자의 '항거곤란'을 요구하는 것은 여전히 피해자에게 '정조'를 수호하는 태도를 요구하는 입장을 전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고, 개인의 성적 자유 내지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현행법의 해석으로 더 이상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와 달리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일 것을 요한다고 본 대법원 2012. 7. 26. 선고 2011도8805 판결을 비롯하여 같은 취지의 종전 대법원 판결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모두 변경하기로 했다.

대법원은 "사건 당시 피고인은 방안에서 피해자의 숙제를 도와주던 중 피해자의 왼손을 잡아 자신의 성기 쪽으로 끌어당겼고, 이를 거부하고 자리를 이탈하려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피해자를 끌어안은 다음 침대로 넘어져 피해자의 위에 올라탄 후 피해자의 가슴을 만졌으며, 방문을 나가려는 피해자를 뒤따라가 끌어안았는바, 이러한 피고인의 행위는 피해자의 신체에 대하여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하여 피해자를 강제추행한 것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강제추행죄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보호법익, 근래 재판실무의 변화에 따라 해석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성 등에 비추어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를 '상대방의 신체에 대하여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폭행죄의 폭행)하거나 일반적으로 보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협박죄의 협박)'로 새롭게 정의한 것"이라고 판결의 의의를 설명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