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장남 아니라도 부모 제사주재자 될 수 있어"
[가사] "장남 아니라도 부모 제사주재자 될 수 있어"
  • 기사출고 2022.10.0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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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법] "차남에게 모친 시신 인도하라"

장남이 아니어도 제사주재자로서 부모의 시신을 모셔갈 수 있다는 법원 결정이 나왔다. 상속인 간 협의가 되지 않으면 장남이 제사주재자가 된다는 게 대법원 2008. 11. 20. 선고 2007다27670 전원합의체 판결의 입장이지만, 재판부는 사회 인식이 바뀐 만큼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울서부지법 민사21부(재판장 임정엽 부장판사)는 8월 12일 어머니 A씨의 시신을 인도해달라며 A의 장남인 B씨가 대학병원 장례식장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고, 독립당사자참가한 차남 C씨에게 시신을 인도하라고 결정했다(2022카합50323). 생전에 어머니가 장남과 불화를 겪고, 차남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점 등을 감안해 내린 결정이다.

2022년 5월 숨진 A의 장례과정에서 장지를 둘러싸고 A의 자녀 6명 간에 다툼이 발생, A의 발인이 중단되었고, A의 시신은 다시 장례식장에 안치되었다. 장남인 B 등 2명은 강원도 D군의 아버지가 매장되어 있는 묘터를 매장장소로 주장했으나 차남인 C 등 다른 형제 4명은 원주시의 묘터를 매장장소로 주장했다. 이에 B가 "장남으로서 제사주재자가 되므로 어머니의 시신을 인도받을 권리를 가진다"며 가처분 신청을 냈다. C 등 4명은 독립당사자로 소송에 참여, "C가 제사주재자가 되어야 하므로 어머니의 시신은 C에게 인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7다27670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르면, 공동상속인들이 있는 경우에는 그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협의에 의해 제사주재자가 정해져야 한다. 그러나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망인의 장남(장남이 이미 사망 한 경우에는 장남의 아들, 즉 장손자)이 제사주재자가 되고, 공동상속인들 중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망인의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된다. 또 사람의 유체 · 유골은 매장 · 관리 · 제사 · 공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유체물로서, 분묘에 안치되어 있는 선조의 유체 · 유골은 민법 제1008조의3 소정의 제사용 재산인 분묘와 함께 그 제사주재자에게 승계되고, 피상속인 자신의 유체 · 유골 역시 위 제사용 재산에 준하여 그 제사주재자에게 승계된다.

재판부는 그러나 "공동상속인들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 제사주재자는, 법원이 개별 사건에서 당사자들의 주장의 당부를 심리하여 인정되는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위 전원합의체 판결 중 상속인들 간 협의가 되지 않는 경우 장남 또는 장손자, 아들이 없으면 딸 순으로 제사주재자가 된다는 부분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로, "제사나 제사용 재산의 승계제도가 조상숭배를 통한 부계혈족 중심의 가계계승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오늘날에는 그와 같은 가계계승의 의미가 상당 부분 약화되었고, 망인에 대한 추모의 성격이 더 강해졌다고 볼 수 있고, 우리 법질서는 호주제도의 폐지, 형제자매 간의 동등한 상속분 인정, 여성의 종중원 자격 인정 등 가족관계 내에서 개인의 의사와 가치가 존중되고 양성평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변화되어 왔다"고 지적하고, "현재 우리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상속인들 간 협의가 되지 않는 경우에 장남 등이 당연히 제사주재자가 된다는 점에 관한 인식이 널리 용인되고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성별이나 나이와 같은 형식적인 요소를 우선적인 기준으로 삼게 되면 가족 구성원들이 수긍하기 어려운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커진다"며 "그러므로 개별 사안에서 당해 가족관계의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하여 '제사주재자로 가장 적절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제사주재자를 정하는 것은 분쟁을 종국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과 관련, "A는 생전에 C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B와는 불화를 겪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 A는 B보다는 C가 제사주재자가 되기를 더 원하였을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는 점, A는 자신을 D군 묘터에 매장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원주시 묘터에 매장하고, 망부(亡夫)의 유체도 원주시 묘터로 옮겨주기를 바라는 의사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는 점 등을 종합하면, A의 제사주재자는 C로 정하는 것이 타당하므로 C가 A의 유체를 인도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세종이 장남을, 차남 측은 법무법인 율성이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