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정부 내 다른 부처들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정거래법 사건 처리에 대해 공정위와는 다른 입장을 표명하는 경우가 종종 보도되고 있다. 해운담합 사건 관련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결정에 대해 해양수산부는 법령에 따른 정당한 행위라며 유감을 표명했고, 기업구조조정 목적으로 추진된 항공사 간 기업결합을 조건부로 승인한 공정위의 결정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운수권과 공항슬롯의 과도한 회수가 우려된다는 의견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화로운 관계 정립 필요
육계업체의 신선육 가격 및 출고량 담합행위에 대한 과징금과 검찰 고발 등의 공정위 제재와 관련해서 육계협회는 안정적 수급을 목적으로 시행된 농림축산식품부의 행정지도를 따른 것이라고 호소하였고 농림축산식품부도 육계업체들의 입장에 호응하였다. 과거에도 공정위의 조사와 제재에 대해 해당 산업의 정책을 담당하는 부처가 이견을 제시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현상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부처간 이견 표출이 권한 다툼이나 힘겨루기처럼 언론에서 보도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 그 근저에는 경쟁정책과 산업정책의 관계를 어떻게 조화롭게 정립할 것인가라는 매우 중요한 사항이 놓여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정립과 관련된 논의는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EU나 미국 등 다른 국가에서도 부상되어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산업정책은 한국경제의 성장원동력이었고, 현 정부의 각 부처들도 다양한 산업정책을 추진해 왔으며, 차기정부 당선인도 정책공약에서 중소기업 R&D 지원 및 신산업육성 등 적극적인 산업정책의 추진을 예고한 바 있어, 향후 다양한 산업정책의 도입에 따른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경쟁영역이 확대되면서 이러한 관계 정립에 대한 논의는 점차 확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시점에서 산업정책과 경쟁정책간 조화로운 관계는 어떻게 정립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비록 정확한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려울지라도 현재까지 검토되어 왔던 다양한 논의들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단순히 담당 산업부처의 법령상 명시나 집행 관련 행정절차 개선과 같은 법체계상의 논의보다는 이견 표출의 발생원인과 조화로운 관계정립에 장애가 되는 요인들을 살펴봄으로써 경쟁정책과 산업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일 필요가 있다.
산업정책 통한 학습효과의 구현
기본적으로 한국의 경쟁당국은 소비자 후생 외에 국민경제와 고용 등 사회후생적 측면도 고려하여 판단하며, 기업결합 심사지침에도 이러한 정책방향이 잘 정립되어 있기 때문에 경쟁당국이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경쟁정책적 관점에서 산업정책에 대해 소극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산업보호라는 정책 목적상 해당산업의 실제 경쟁과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산업보호/육성정책의 수혜 기업들의 지대추구(rent seeking) 행위로 인해 해당 산업의 경쟁력이 오히려 약화된다는 주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실증적으로 검증되어 일반이론으로 자리를 잡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70-80년대 대표적인 산업정책 반대론자이자 미국 경제정책에 기여가 큰 경제학자였던 앤 크루거(Ann Krueger) 교수는 60년대 터키 기업들을 대상으로 분석한 연구에서 유치산업(infant industry) 육성정책의 결과, 보호대상 기업들의 생산성이 비보호기업보다 더 낮았다는 점을 입증했다. 이러한 이론과 연구들은 산업정책이 이해관계자를 보호할 뿐, 해당 국가의 소비자보호나 장기적 산업성장과는 거리가 먼 단편적 정책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만드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교수를 비롯하여 유력한 경제학자들은 2000년대에 들어서도 산업정책이 경쟁을 촉진시키는 긍정적 효과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기술개발(R&D)과 생산성 분야에서 대표적 연구자인 필립 아기온(Philippe Aghion) 교수의 연구팀은 1998-2007년 기간의 중국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연구에서 산업정책이 대상기업들의 생산성을 제고시켰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산업정책의 효과는 경쟁적 산업부문에서 면밀하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이 산업정책의 긍정적 효과를 주장하는 최근의 연구들은 산업정책이 경쟁을 회피하고자 하는 기업들을 경쟁상황에 직면하도록 유도하였고 경쟁과정에서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를 통해 정책대상 기업들의 생산성이 증대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이전까지는 간과되었던 학습효과가 산업정책의 긍정적 역할로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 산업정책의 배경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대만과 한국의 반도체 및 리튬 배터리 회사들에게 공장을 미국에 설립하도록 강력히 권고해 왔다. 자유무역론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미국 정부의 정책은 인건비 상승 등 경쟁력 약화와 세제혜택으로 인한 자원배분의 왜곡으로 이어져 80년대 미국이 시행했던 일본산 D램 반도체의 수입규제정책과 같은 실패를 반복할 것이라고 비판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이와 같은 산업정책이 추진되는 배경에는 해당 산업에서의 학습효과를 통해 미국의 산업 생산성을 제고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산업정책이란 금융지원, 세제혜택, 무역장벽과 같은 제도이므로 부당공동행위 사건에서 논란이 되어온 행정지도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정부부처의 행정지도와 관련한 연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제시되었다. 통상적으로 행정지도는 외형적 일치를 유발할 수 있기에 경쟁제한성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우려되어 왔다.
경쟁에 대한 행정지도의 효과
그러나 데이빗 와인스타인(David Weinstein) 교수는 행정지도의 경우에도 대상기업들을 경쟁하도록 유도하여 결과적으로 경쟁제한적 결과를 유도하지 않았다는 실증 결과를 제시한 바 있다. 그는 1957-1988년 동안 일본기업을 대상으로 행정지도로 인해 형성될 수 있는 경쟁제한적 효과에 대해 분석했는데, 행정지도는 기업의 비용절감 효과로 작용하여 가격인상이 높게 나타나지 않도록 제약하였고, 오히려 행정지도 대상 기업의 이윤이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그러한 효과가 나타난 원인에 대해 (1)행정지도로 인해 대상기업들의 가격인상과 생산량 축소 유인이 억제되었고, (2)대상기업간 품질경쟁이 촉진되어 비용상승으로 제품가격은 다소 상승하지만 수익성이 하락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이는 행정지도가 경쟁촉진적 측면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경쟁제한적 효과는 없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러한 일련의 연구들은 통상적으로 이해되고 있었던 바와 달리, 산업정책과 행정지도가 경쟁촉진적인 성격을 갖거나 최소한 경쟁을 제한하지 않을 수 있어 경쟁정책과 보완적 관계일 수 있음을 의미하며, 경쟁정책적 관점에서 산업정책과의 조화의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미래 경쟁에 대한 예측 격차
기업들은 10년 후를 전망하여 기업결합을 결정하는 반면, 엄격한 판단을 요구받는 경쟁당국은 과거 데이터와 입수 가능한 자료를 이용해 경쟁상황을 예측/평가하고 있기에 경쟁당국과 산업내 이해당사자간에는 전망하는 경쟁상황에 있어서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 미국의 시리우스(Sirius)-XM 위성라디오 기업결합 사건(2008)은 그러한 예측 격차의 사례에 해당한다.
우리에게 낯선 위성라디오 방송은 미국에서 인기를 얻은 분야로, 기업결합이 발표됐던 2007년 당시 XM라디오와 시리우스라디오는 각각 170여개 및 130여개의 채널을 보유하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당시 800만명이던 위성라디오 시장의 가입자 수는 3년내 5,500만명 규모(약 7배)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었기에 독점화를 기도하는 기업결합을 미국 경쟁당국 입장에서 허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스마트기기의 보급 등으로 당시의 미디어 환경은 급격하게 변화되어 두 위성라디오의 막대한 손실규모는 매년 증가하고 있었다.
기업결합은 결국 2008년에 어렵게 승인되었으나, 당사자들은 이듬해인 2009년에 수익성 악화로 파산을 신청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미 미디어시장은 과도하게 경쟁적이었기에 위성라디오 분야의 독점기업이라고 하여도 수익성 악화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규제당국으로서는 급성장하던 위성라디오 시장의 독점화를 예상해 허용하기 어려운 기업결합이었던 반면, 미디어환경의 변화로 재무적 위기를 예상해 합병을 시도했던 당사자들로서는 승인받은 이후에도 파산 직전으로 내몰려 새로운 투자자를 겨우 찾아 회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미래의 경쟁상황에 대한 예측 차이에 따라 산업의 운명도 현저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다.
장래의 시장상황에 대한 예측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이러한 논쟁은 여러 사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지멘스/알스톰 기업결합 사건(2019)에서 EU 경쟁당국이 불허로 결정하자 이에 대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국 등 잠재적 경쟁자의 시장진입 용이성을 과소 평가했다는 비평도 그러한 사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들을 고려할 때 과거 한국의 지마켓/옥션 기업결합 사건(2011) 당시 결합후 72~86%에 달하는 당사자측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11번가의 성장성과 네이버 쇼핑플랫폼의 진입효과를 예측해 조건없이 승인했던 공정위의 판단은 기업결합 이후 시장에서 펼쳐진 경쟁상황을 정확히 예측한 돋보이는 평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산업성장을 저해하는 정책의 유형
그렇다면 경쟁정책의 관점에서 볼 때 조화되기 어려운 산업정책은 어떤 성격을 갖고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위에서 논의했던 바를 되새겨 보면, 학습효과를 통한 생산성 제고나 혁신은 기대하기 어려운 반면, 자원배분의 왜곡을 초래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아시아성장연구소(Asian Growth Research Institute)의 하타타츠오(Hatta Tatsuo) 소장은 이러한 유형의 산업정책의 대표적 예시로서 70년대 일본에 도입되었던 대규모점포 출시제한 규제를 들고 있다. 당시 일본에서 대형마트를 출시하기 위해서는 인근 소매점들의 승인을 얻도록 규정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대형마트의 입점은 매우 어려웠는데, 이로 인해 유통부문의 생산성이 정체되어 자원배분상의 왜곡이 발생됨으로써 일본의 고도성장기는 70년대를 기점으로 하락했다고 평가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특히 온라인 플랫폼처럼 급성장하고 있는 시장에 대해 지원과는 관계없이 이해관계자의 이익보호를 위해 도입된 산업정책의 경우에는 우려의 시선을 갖고 바라보게 된다. 온라인 플랫폼 시장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학습효과를 통한 생산성 및 혁신의 제고가 수반되는 특성이 현저할 뿐 아니라 자원의 효율적 배분효과가 큰 비중을 가지고 있는데, 이해관계자의 이익배분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산업정책은 전체 플랫폼 생태계의 성장을 위협할 뿐 아니라 사회내 중요한 인력과 자원이 적재적소로 배치되지 못하도록 하는 왜곡만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습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자원배분의 왜곡을 초래하는 유형의 산업정책에 대해서는 이익보호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사전적으로 부처의 자체적 개선이 선행될 수 있게 권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경쟁정책과 산업정책의 조화 기대
이상에서 논의한 바를 종합하여 평가할 때, 산업의 담당부처들이 경쟁당국에 대해 산업적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경쟁정책을 비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경쟁정책은 시장과 산업의 질서와 제도를 정립한다는 측면에서 시장구성원의 인식과 국가경제에 장기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크며, 경쟁당국은 소비자후생뿐 아니라 이미 사회후생적 측면에서도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고, 과거 기업결합 사건에서 당사자들이 예측한 미래의 경쟁상황과 정확히 일치하는 판단을 한 바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편으로 경쟁당국 입장에서 산업정책을 고려할 경우 경쟁원리에 혼선이 가해져 경쟁정책의 객관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선입견을 갖고 멀리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산업정책은 한번 실행되면, 중단된 이후 30년에 걸쳐 긍정적 효과가 지속된다는 연구가 발표된 바 있으며, 전술한 바와 같이 학습효과라는 긍정적 외부성을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글로벌기업으로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어 거리를 두면서 외면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쪼록 이러한 점들이 고려되어 경제주체들의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면서도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도모하고 기업의 경쟁력과 소비자의 후생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경쟁정책과 산업정책간에 조화와 균형있는 관계가 정립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유치산업보호론이란=유치산업보호론(infant industry argument)이란 규모의 경제를 갖춘 선진 해외기업에 비해 그렇지 못한 초기 산업은 유사한 규모의 경제를 갖출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 주장에 따르면 단기에 소요되는 비용에 비해 장기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혜택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유치산업보호론은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이 1790년에 발간한 제조업 보고서(Report on Manufactures)에서 처음 언급되었으며, 이를 추진하기 위해 수입관세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현종(김앤장 고문, 경제학박사, hyunjong.kim@kimchang.com), 노상섭(김앤장 고문, 전 공정위 시장감시총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