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원격의료를 전면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의사가 병원이 아닌 곳에서 원격으로 CT(전산화단층촬영) 영상을 판독했더라도 이에 대한 급여비용 청구는 적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A씨는 외부의 영상의학과 전문의와 계약을 맺고 2011년 5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5년 넘게 병원 내 전산화단층 촬영장치로 촬영한 영상을 전송해주어 판독받고 판독비로 매월 50만원을 지급했다. A씨는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현지조사 결과에 따라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2011년 5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실제 요양기관에 출근하여 근무하지 않는 등 의료영상 품질관리 업무를 총괄하거나 감독하는 등의 업무를 수행하지 않고 병원으로부터 전달받은 영상자료를 원격으로 판독하는 업무만 하였음에도 비전속 인력으로 신고하고 전산화단층 영상진단료로 요양급여비용 140,727,490원을 청구했다'는 등의 이유로 보건복지부로부터 70일의 요양기관 업무정지처분과 30일의 의료급여기관 업무정지처분을, 국민건강보험으로부터 144,773,770원의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 서울 성동구청으로부터 2,546,650원의 의료급여비용 환수처분을 각각 받자 이들 처분을 모두 취소하라며 소송을 냈다.
A씨는 재판에서 "담당 전문의가 병원에 출근하지 않았으나, 원격으로 영상 판독 업무를 하는 등 의료영상 품질관리 업무를 수행하였으므로 특수의료장비관리규칙상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업무를 수행한 것"이라고 다투었다.
1심 재판부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으나, 항소심 재판부가 "국민건강보험법 57조 1항, 98조 1항 1호, 의료급여법 23조 1항, 28조 1항 1호의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에 의하여 급여비용을 받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요양기관 업무정지처분과 의료급여기관 업무정지처분,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 의료급여비용 환수처분을 모두 취소하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자 피고들이 상고했다.
대법원 제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도 7월 9일 피고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2020두35790, 35806).
대법원은 "원심은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의료기관에 출근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특수의료장비의 의료영상 품질관리 업무의 총괄 및 감독, 영상화질 평가 등의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고, 원고가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영상판독을 거쳐 품질관리 적합판정을 받은 등록된 전산화단층 촬영장치를 활용한 전산화단층 영상진단료 등을 요양급여비용 또는 의료급여비용으로 청구하였다면 이를 국민건강보험법 57조 1항, 98조 1항 1호, 의료급여법 23조 1항, 28조 1항 1호의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에 의하여 급여비용을 받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원고에 대한) 요양기관 업무정지처분 등은 위법하다고 판단하면서 이 사건 각 처분을 취소하였다"며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의료법상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업무 범위 해석, 국민건강보험법 및 의료급여법에서 정한 요양급여 · 의료급여의 기준과 부당이득징수 · 업무정지의 대상, 재량권 일탈 · 남용 여부, 행정처분의 일부 취소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의료영상 품질관리 업무의 총괄 및 감독 업무 수행 등에 관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이 1심부터 상고심까지 A씨를 대리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에 앞서 "의료법 38조 1항의 위임을 받은 특수의료장비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특수의료장비규칙)에서 정한 의료영상 품질관리 업무가 반드시 특수의료장비 설치 장소에 대한 물리적 확인을 전제로 한 것이라 볼 수 없고 의료영상의 품질관리 업무의 원격 수행의 가능성도 배제되지 아니하므로, (A씨의) 병원의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해당 기간 중 전산화단층 촬영장치가 설치된 의료기관에 출근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특수의료장비의 영상 품질관리 업무의 총괄 및 감독, 영상화질 평가 등의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이 사건 각 처분은 모두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9년 4분기 기준으로 전국의 영상의학과 전문의는 3,774명에 불과한 것에 반해 CT 등 특수의료장비는 총 6,983대가량이 설치되어 있어, 각 장비가 있는 병원마다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상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정보통신 수단의 발달로 CT는 대부분 원격의료영상정보시스템으로 판독되고 있다. 1심부터 이 소송에 관여한 법무법인 태평양의 박상현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법리적 문제뿐만 아니라,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역할을 재정립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특수의료장비규칙은 특수의료장비를 설치 · 운영하는 의료기관의 개설자나 관리자로 하여금 그 의료기관에 전속된 의사 중 설치된 장비에 관하여 전문 지식이 있는 자 또는 방사선사 1명을 특수의료장비의 관리자로 선임하도록 하면서, 해당 특수의료장비의 관리자가 '특수의료장비에 대한 인력 · 시설관리, 정도관리항목에 따른 관리, 기록관리, 팬텀영상관리, 임상영상관리'의 업무를 수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 전산화단층 촬영장치에 대한 최소 인력은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 1명, 전속 방사선사 1명으로 규정하고, 영상의학과 전문의는 특수의료장비의 의료영상 품질관리 업무의 총괄 및 감독, 영상화질 평가, 임상영상 판독 업무를, 방사선사는 특수의료장비의 취급, 정도관리항목 실행, 그 밖의 품질관리에 관한 업무를 각각 수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