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사무장 병원 임금체불, 병원장 아닌 사업주 책임"
[노동] "사무장 병원 임금체불, 병원장 아닌 사업주 책임"
  • 기사출고 2020.05.14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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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실질적 근로관계가 기준"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의사를 고용해 월급을 지급하고, 그 의사 명의로 개설한 이른바 '사무장 병원'에서 근로자들에게 임금 등의 지급의무를 부담하는 사람은 병원장인 의사일까, 실질적인 사업주일까.

대법원 제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4월 29일 최 모씨 등 충남 서천군에 있는 한 사무장 병원의 전 근로자 16명이 "2015년 4월과 6∼8월 임금 등 4개월분 체불임금을 지급하라"며 이 병원의 사업주인 정 모씨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8다263519)에서 정씨에게 임금 등의 지급의무가 있다고 판시, 최씨 등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박왕규 변호사가 1심부터 원고들을 대리했다.

정씨는 제약회사를 퇴사한 후 경매를 통해 부인 명의로 매수한 충남 서천군의 건물에 의료장비 등 의료시설을 갖추고, 평소 알고 지내던 이 모씨 등 의사 2명을 고용한 다음 2014년 9월 이씨 명의로 'K병원'이라는 상호로 의료기관 개설허가를 받아 2015년 8월까지 병원을 운영했다. 그러나 정씨의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했으나 2015년 4월 임금과 6∼8월 임금을 받지 못한 최씨 등이 체불임금을 지급하라며 정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에 이어 항소심 재판부가 "의료인 아닌 사람이 의료인을 고용하여 그 명의로 의료기관 개설신고를 하고, 의료기관의 운영 및 손익 등이 의료인 아닌 사람에게 귀속되도록 하는 내용의 약정은 강행법규인 의료법 33조 2항에 위반되어 무효"라는 이유로 최씨 등에 대하여 임금 및 퇴직금 지급의무를 부담하는 사람은 이씨이지 정씨는 아니라고 보아 최씨 등의 청구를 기각하자 상고했다.

대법원은 먼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약의 형식과는 관계없이 실질에 있어서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하고, 반대로 어떤 근로자에 대하여 누가 임금 및 퇴직금의 지급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인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계약의 형식이나 관련 법규의 내용에 관계없이 실질적인 근로관계를 기준으로 하여야 한다"고 전제하고,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월급을 지급하기로 하고 의료인을 고용해 그 명의를 이용하여 개설한 의료기관인 이른바 '사무장 병원'에 있어서 비록 의료인 명의로 근로자와 근로계약이 체결되었더라도 의료인 아닌 사람과 근로자 사이에 실질적인 근로관계가 성립할 경우에는 의료인 아닌 사람이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 및 퇴직금의 지급의무를 부담한다고 보아야 하고, 이는 이른바 사무장 병원의 운영 및 손익 등이 의료인 아닌 사람에게 귀속되도록 하는 내용의 의료인과 의료인 아닌 사람 사이의 약정이 강행법규인 의료법 33조 2항 위반으로 무효가 된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피고는 (충남 서천군에 있는) K병원의 총괄이사라는 직함으로 활동하였고, 이씨 명의로 개설된 병원 수입 · 지출 계좌의 통장과 이씨의 인장을 소지하면서 위 계좌로 입금된 보험급여 등 병원 수익금을 사용하여 병원의 물적 설비를 구입하고, 인력관리를 위해 노무법인과 고문계약을 체결하는 등 병원을 실질적으로 경영하였다"고 지적하고, "원고 등은 이씨를 사용자로 하여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였지만, 실제 피고가 원고 등을 비롯한 병원의 직원들을 채용하였고, 업무수행 과정에서 직원들을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지휘 · 감독하였으며, 직원들에게 급여를 지급하였고, 이씨 등에게도 매월 약정된 급여를 지급하였다"고 밝혔다.

이어 "K병원은 의료인이 아닌 피고가 의사인 이씨의 명의를 빌려 개설한 이른바 사무장 병원에 해당하고, 원고 등은 형식적으로는 의사 이씨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였지만, 피고가 병원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원고 등을 직접 채용하고, 업무와 관련하여 원고 등을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지휘 · 감독하면서 직접 급여를 지급한 사정을 감안하면, 원고 등과 피고 사이에 실질적인 근로관계가 성립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하고, "따라서 피고가 원고 등에 대하여 임금 및 퇴직금 지급의무를 부담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와 같이 원고 등과의 근로계약에 따른 임금 및 퇴직금 지급의무는 처음부터 피고에게 귀속되는 것이지 K병원의 운영과 손익을 피고에게 귀속시키기로 하는 이씨와 피고 사이의 약정에 따른 것은 아니므로, 위 약정이 강행법규인 의료법 33조 2항에 위반되어 무효가 된다고 하더라도 피고가 원고 등에 대하여 임금 및 퇴직금 지급의무를 부담하는 데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씨는 K병원의 실경영자로서 최씨 등에 대한 임금을 체불한 혐의(근로기준법 위반)로 기소되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확정되었다. 의사 이씨도 피고와 동일한 근로기준법 위반의 범죄사실로 기소되었지만, 누가 임금지급의무를 부담하는지는 실질적인 근로관계를 기준으로 판단하는데, 피고가 실질 사용자이고, 이씨는 피고용자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2016년 9월 무죄가 선고되어 확정됐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