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대출 받게 해주겠다'는 말에 계좌에 입금된 5000만원 인출해 전달…사기 방조 무죄
[형사] '대출 받게 해주겠다'는 말에 계좌에 입금된 5000만원 인출해 전달…사기 방조 무죄
  • 기사출고 2018.11.26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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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지법] "보이스피싱 범행 인식 인정 어려워"

입출금 내역을 만들어 거래실적을 높여 대출을 받게 해주겠다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말을 믿고, 자신의 계좌에 입금된 돈을 인출하여 전달, 사기방조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허위 거래실적을 만들어 대출을 받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았을 뿐, 보이스피싱 범행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창원지법 형사4부(재판장 장용범 부장판사)는 11월 19일 사기방조 혐의로 기소된 이 모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2018고합182)에서 배심원 평결결과와 달리 무죄를 선고했다. 배심원 평결결과는 무죄가 3명, 유죄가 4명이었다.

이씨는 검침원으로 정상적으로 근무하면서 이전 개인사업 실패로 신용등급이 좋지 않아 대출을 알아보던 2017년 7월 초순경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부터 하나캐피탈 명의로 '신용등급이 낮아도 대출을 해주겠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이에 이씨는 문자를 발송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2000만원의 신용대출을 신청했다. 이씨는 당시 전화를 받은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터 "입출금 거래내역을 만들어 거래실적을 높여 대출을 해주겠다. 이씨 명의의 계좌로 돈이 입금되면 은행 창구직원에게 먼 친척오빠인 원 모씨가 사업자금으로 빌려주는 것이라고 거짓말하고 이를 현금으로 인출하여 직원에게 전달해 달라"라는 말을 듣고, 이를 수락한 뒤 자신 명의의 하나은행 계좌번호를 알려주었다.

한편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7월 13일경 원씨에게 전화를 걸어 현대캐피탈 직원을 사칭하면서 "기존 현대캐피탈 대출금을 변제하고 공증비, 법무비용 등을 입금하면 저금리로 2억 5000만원을 대출해 줄 수 있으니 담당 법무사 계좌로 돈을 송금해라"며 거짓말을 하고, 이에 속은 원씨로부터 이씨 명의의 하나은행 계좌로 2차례에 걸쳐 5000만원을 송금받았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이를 포함해 원씨로부터 이씨 등 5명의 은행계좌로 7월 18일까지 7차례에 걸쳐  8200여만원을 송금하게 했다.

이씨는 7월 13일 오전 10시 32분쯤 김해시에 있는 하나은행 지점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지시에 따라 원씨가 이씨 명의의 하나은행 계좌로 입금한 2000만원을 현금으로 인출하여 하나은행 지점 인근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전달하고, 약 2시간 후인 낮 12시 17분쯤 김해시에 있는 다른 하나은행 지점에서 원씨가 입금한 3000만원을 현금으로 인출하여 다시 이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전달했다. 이씨는 사기방조 혐의로 기소됐다.

이씨는 재판에서 "대출을 해주겠다는 말을 믿고 지시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고 사기 범행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신용대출 신청 당시 전화를 받은 직원으로부터 '통장의 거래실적을 쌓아야 한다. 고위직이 피고인의 통장의 거래실적을 보고 피고인으로부터 대출금의 5%의 리베이트를 받고 대출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시에 따라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라는 말을 듣고, 성명불상자의 지시에 따라 행동한 것일 뿐, 성명불상자가 전화 금융사기를 하는 줄은 몰랐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고 지적하고, "공소사실에도 피고인이 대출을 받기 위하여 허위 거래실적을 만드는 데 이용한다고 인식하고 성명불상자에게 피고인 명의의 은행계좌를 알려주었다고 기재되어 있을 뿐이고, 피고인이 성명불상자의 전화 금융사기 범행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기재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이 대출이 실행되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성명불상자와의 통화를 녹음한 내용을 보면 피고인의 주장에 부합하고, 그 내용 중 피고인이 대출 상담과정에서 성명불상자의 설명에 속아 본인 통장의 비밀번호까지 알려주었던 점, 피고인이 최대한 빨리 대출을 받기 원하였으면서도, 성명불상자가 '입금을 하게 되면 바로 은행업무처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2017년 7월 12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반까지 언제든지 은행 일을 볼 수 있냐'라고 요구하자, 일정상의 이유로 그 다음날인 7월 13일로 대출실행일을 변경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던 점, 피고인이 성명불상자의 지시에 따르면서 성명불상자로부터 대출을 받는 것 외에 대가를 약속받은 사실이 없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의 변소 내용을 쉽사리 배척할 수 없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성명불상자가 피해자를 기망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가 피고인의 은행계좌로 돈을 입금하였다'라는 점과 '피고인의 행위가 성명불상자의 전화 금융사기 범행을 용이하게 한다'라는 점을 미필적이나마 인식하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불법 대출과 전화 금융사기 범행은 범행의 대상과 방법, 내용, 피해법익 등 구성요건이 다르므로, 피고인이 불법 대출을 용이하게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성명불상자에게 자신 명의의 은행계좌를 알려주고, 자신의 은행계좌에 입금된 돈을 인출하여 성명불상자에게 전달하는 행위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피고인이 성명불상자의 전화 금융사기 범행을 방조한 것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