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아버지 이임용 선대회장이 남긴 차명 국민주택채권의 반환을 놓고 누나 이재훈씨와 벌인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 제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1월 9일 이 전 회장이 이씨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24다286988)에서 양측의 상고를 모두 기각, "피고는 원고에게 153억 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임용 선대회장은 사망 전인 1996년 9월 '부인과 아들들에게 재산을 나눠 주되 나머지 재산이 있으면 유언집행자인 이기화 사장(이 전 회장의 외삼촌)의 뜻에 따라 처리하라'는 취지의 유언을 남겼다. 딸들에게는 상속재산을 남기지 않았다. 이후 2010~2011년 검찰 수사와 국세청 세무조사를 통해 '나머지 재산'인 각종 차명주식과 국민주택채권 등 차명채권이 발견되었다. 이들 차명재산은 이호진 전 회장이 단독으로 처분했거나 자신의 명의로 실명전환해 갖고 있었다.
선대회장이 사망하기 전부터 창업주 일가의 차명재산을 관리래온 이호진 회장의 어머니는 검찰 수사가 진행되던 2010년 10월 차명재산 중 일부인 차명 국민주택채권증서를 딸 이재훈씨에게 전달했다가 2012년 반환하라고 요청했으나 이씨는 응하지 않았다. 이에 이호진 전 회장이 누나인 이씨를 상대로 국민주택채권의 액면금 상당액인 400억원을 반환의무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으로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이호진 전 회장은 "이임용 선대회장 유언의 '나머지 재산' 부분에 따라, 어머니가 선대회장의 사망 당시 관리하던 차명 국민주택채권(이 사건 상속 채권)을 자신이 단독으로 상속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피고 측은 "선대회장 유언의 나머지 재산 부분은 무효이므로 원고가 이 사건 상속 채권을 단독으로 상속 받았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소송의 핵심 쟁점은 '딸들 빼고 아내와 아들들에게만 재산을 주되, 나머지 재산이 있으면 유언집행자인 이기화 사장의 뜻에 따라 처리하라'고 되어 있는 이임용 선대회장의 유언 중 나머지 재산 부분이 유언의 일신전속성에 반해 무효인지 여부.
항소심 재판부는 이와 관련, "유언은 상대방 없는 단독행위로서 유언자의 의사가 최우선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따라서 유언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계약과는 달리 상대방의 신뢰보호는 중요 고려대상이 아니고,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 내지 현실적 의사가 무엇인지를 파악함이 중요하고, 또한 유언의 해석에 따라 그 효력 유무가 달라질 때에는 유언이 유효하게 될 수 있는 방향으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유언자가 상속재산을 유증할 상대방을 직접 특정하지 않는 채 제3자에게 위임한 경우, 그러한 사정만을 들어 해당 유언을 바로 무효라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고 전제하고, "유언자가 제3자로 하여금 아무런 제한 없이 오로지 제3자 자신의 의사에 따라 유증 상대방을 정하도록 하였다면 이는 유언자의 의사가 사실상 전혀 반영되지 않아 무효라고 볼 여지가 있으나, 이와 달리 유언서의 전체적인 취지를 비롯하여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유언자가 유언을 통하여 그 유증 상대방을 일정한 범위 또는 자격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해석되는 등 유증 상대방의 지정 범위에 관한 유언자의 의사가 확인되고, 그에 따라 제3자가 선정 권한을 행사할 경우에도 그 선정이 유언자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해당 유언의 효력을 부정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안과 관련, "이 사건 유언의 나머지 재산 부분은 다른 조항 등과 함께 볼 때, 나머지 재산의 유증 상대방을 원고가 태광그룹에 대한 경영권을 행사함에 도움이 되거나 지장이 없는 사람으로 지정하라는 취지로 해석되는바, 이를 유증의 상대방이 명확히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유언의 일신전속성에 반한다고 보아 무효라고볼 수 없고, 오히려 이임용 선대회장은 위와 같이 나머지 재산의 유증 상대방의 범위를 일정 정도 한정하였다고 할 것인바, 그에 따라 수증자가 결정될 경우 망인의 의사에 따라 수증자가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며 "따라서 이 사건 유언의 나머지 재산 부분은 유효하다"고 판시했다.
이임용 선대회장 유언의 다른 조항에서는 태광그룹의 경영에 관하여 '이기화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아 전체적인 경영권을 맡아 운영하되, 원고를 사장으로 선임하고, 적절한 시점에 원고에게 경영권을 이양하라.’는 내용과, 유언집행자 규정을 통하여 이기화를 '유언집행자'로 지정하면서 '이임용의 사후 기업 경영에 대하여는 물론 가족들 사이의 인화에 불협화음에 없도록 정직과 성의로써 다스려 주어야 한다.'는 것과 함께 '상속재산 처리 및 모든 사항을 관장하여 슬기롭게 풀어주기를 바란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고, 또한 '피고를 비롯한 딸들에게는 별도의 재산상속을 하지 아니한다.'라고 되어 있다.
400억원 청구했으나 153억원만 인정
재판부는 다만, "원고 제출의 증거만으로는 국민주택채권증서의 금액이 15,350,000,000원을 초과하여 원고 주장금액인 40,000,000,000원에 이른다는 점이 증명되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153억 5천만원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에선 400억원 전부에 대해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었으나 항소심에서 246억 5천만원이 감액 인정된 것이다.
대법원도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 유언의 해석과 효력 및 유언 집행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판단누락, 이유불비, 석명의무 위반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율촌이 1심부터 이호진 전 회장을 대리했다. 이재훈씨는 법무법인 태평양이 항소심부터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