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 "정기선사 해상운임 담합에 공정위 규제권한 없어"
[해상] "정기선사 해상운임 담합에 공정위 규제권한 없어"
  • 기사출고 2024.03.3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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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대만 선사 에버그린 34억 과징금 취소받아

국내외 컨테이너 정기선사들의 해상운임 담합에 대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규제권한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김대웅 부장판사)는 2월 1일 해상운임을 담합했다며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과 33억 9,900만원의 과징금납부명령을 부과받은 세계 7위의 대만 선사 에버그린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취소소송(2022누43742)에서 이같이 판시, "시정명령과 과징금납부명령을 모두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에버그린 등 한국–동남아항로에 취항 중인 23개 국내외 컨테이너 정기선사들은 2003년 12월경부터 2018년 12월경까지 한국–동남아 항로에서의 해운동맹을 위한 단체인 IADA(Intra-Asia Discussion Agreement)와 동남아정기선사협의회 내 회의를 통해 120차례에 걸쳐 한국–동남아 항로에서 컨테이너를 통해 화물을 운송하는 서비스의 기본운임과 각종 부대비용을 모두 포함한 가격을 합의하고, 이를 실행했다. 이에 공정위가 에버그린을 포함한 23개 국내외 컨테이너 정기선사들과 동남아정기선사협의회에게 운임에 관한 공동행위를 금지하는 시정명령과 합계 964억 3천만원의 과징금납부명령을 하면서, 에버그린에게도 공동행위를 금지하는 시정명령과 33억 9,900만원의 과징금납부명령을 내리자 에버그린이 소송을 냈다. 

에버그린은 "해운법 29조 5항 단서는 외항 화물운송사업자들의 공동행위가 부당하게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경우 해양수산부장관이 필요한 조치를 명하고, 이를 공정위에게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바, 설령 이 사건 공동행위에 경쟁법적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규제할 권한은 공정위가 아니라 해양수산부장관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시행되던 구 공정거래법 58조는 "이 법의 규정은 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가 다른 법률 또는 그 법률에 의한 명령에 따라 행하는 정당한 행위에 대하여는 이를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명시, 공정거래법의 적용제외를 규정하고 있다. 물론 허용된 범위를 벗어나거나 필요한 정도를 넘는다면 그러한 행위에 대하여는 공정거래법이 적용될 수 있고 여전히 공정거래위원회가 규제권한을 가지나, 어떤 법령이 자유경쟁의 예외를 구체적으로 인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허용된 범위를 벗어나거나 필요한 정도를 넘는 부당한 경우에 대하여 이를 직접 금지하면서 그 규제권한의 소재와 구체적인 규제의 방법 · 절차까지 별도로 정하고 있다면, 공정거래위원회는 별도의 규제권한을 가지지 않는다.

재판부는 에버그린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해운법상 공동행위에 관하여 보건대, 해운법 제29조(운임 등의 협약)는 외항 '정기' 화물운송사업자들의 운임에 관한 공동행위를 허용함으로써 자유경쟁의 예외를 구체적으로 인정하고, 다만 그 공동행위를 통하여 결정된 운임이 지나치게 높아 부당한 경우에는 해양수산부장관이 필요한 조치를 하되, 이를 공정거래위원회에 통보하도록 하면서, 외항 '부정기' 화물운송사업자들의 운임에 관한 공동행위는 이를 허용범위에서 제외하고, 그 위반에 관하여 별도의 규제방식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고 전제하고, "결국 만일 외항 '부정기' 화물운송사업자들이 운임에 관한 공동행위를 하였다면 공정거래위원회가 해운법에 의하여 허용된 범위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규제권한을 행사할 여지가 있으나, 이와 달리 외항 '정기' 화물운송사업자들의 운임에 관한 공동행위에 관하여는 설령 그 운임이 다소 높다 하더라도 이는 해양수산부장관이 그 부당성 여부를 판단하여 규제할 문제일 뿐, 이에 대하여 공정거래위원회가 해운법에 따라 필요한 정도를 넘는다고 주장하면서 규제권한을 행사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외항 화물운송사업은 선박의 운항 형태에 따라 '외항 정기 화물운송사업'과 '외항 부정기 화물운송사업'으로 나뉘는데, 정기해운(liner shipping)은 화물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사전에 작성 · 공표된 운임(tariff)과 운항일정(sailing schedule)에 따라 특정 항로(route)를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운항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재판부는 "요컨대, 해운법 제29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외항 정기 화물운송사업자들의 운임에 관한 공동행위에 대하여는 해양수산부장관만이 배타적 규제권한을 가진다 할 것이고, 공정거래위원회에게는 이를 규제할 권한이 없다"며 "따라서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이 사건 처분은 원고의 공동행위 가담 여부, 이 사건 공동행위의 경쟁제한성 내지 부당성 여부 등 그 나머지 점에 관하여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위법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해운동맹의 필요성도 인정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일정한 시간마다 규칙적으로 운송서비스를 제공하는 정기선 화물운송사업의 경우, 사업자가 시장에 진입하기 위하여는 상당한 수의 선박을 확보해야 하므로 대규모의 초기자본을 투입해야 하고, 시장에 진입한 이후에도 선박의 유지 · 보수 등을 위해 계속적으로 추가적인 고정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한편 해운산업의 경우 경기변동에 따른 운임의 등락이 심한 특성이 있는데, 이는 호황기에도 선박의 공급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고, 불황기에도 선복을 줄이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인바, 이러한 측면은 정시성이 관건인 정기선 운항의 경우 더욱 심화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수의 선사들이 낮은 운임 등으로 무제한적인 출혈경쟁을 하게 되면, 대부분의 중 · 소규모 사업자들은 결국 도산에 이르고, 소수의 대규모 사업자만이 생존하게 될 우려가 있다. 이는 곧 독과점 사업자의 출현으로 이어져 노선의 제한과 운항의 축소 및 운임의 인상 등을 초래하고, 이로써 직접적 소비자인 화주들의 경제적 피해는 물론 결과적으로 전반적인 국가경제와 원활한 국제운송 등에도 상당한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재판부는 "이른바 해운동맹은 주로 위와 같은 정기선 화물운송사업의 구조적 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결성된 것"이라며 "이를 통하여 정기선 운송사업자들은 상호간 선복을 공유하고 노선을 조정하는 것은 물론 내부적 협약을 통하여 최소한의 운임을 공동으로 결정하였는바,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공동행위는 많은 국가들에서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국제적으로도 그 합리성이 널리 인정되어 왔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율촌이 에버그린을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