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운전기사들이 다음 운행 전까지 대기하는 시간에 청소, 검차 등을 했더라도 식사를 하거나 TV 시청 등 자유롭게 휴식을 취했다면 대기시간 전부를 근로시간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8월 12일 버스운전기사 6명이 "운행준비와 정리시간, 대기시간, 가스충전시간 등 초과 근로시간에 대한 초과 근로수당을 지급하라"며 안양교통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9다266485)에서 이같이 판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대기시간 전부를 근로시간으로 본 것은 잘못이라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원고들 중 1명은 피고에게 채용되어 운전기사로 근무하다가 2014년 2월 정년퇴직하였고, 나머지 원고들은 현재도 운전기사로 근무 중이다.
안양교통이 소속된 서울시 버스운송사업조합은 원고들이 소속된 전국자동차노조연맹 서울시버스노조와 매년 임금협정을 체결, '주간 5일은 기본근로 8시간, 연장근로 1시간을 포함한 9시간으로 하고, 근무시간 중에 휴식시간을 준다. 연장근로에 대하여 시급의 150%를 지급한다'고 약정했다. 원고들은 그러나 "1일당 20분의 운행준비와 정리시간, 대기시간, 가스충전시간을 근로시간에 포함할 경우 임금협정에서 정한 약정 근로시간을 초과하므로, 위 초과 근로시간에 대하여 약정 시급의 150%에 해당하는 초과 근로수당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피고 측은 "운행준비 및 정리시간 중 청소 및 차량 내외부 점검, 차량 내 유실물 확인, 차량 이상 유무 인수인계, 실명제 카드 교체는 근로자들이 하지 않고 피고가 지시한 적도 없으며, 운행준비 및 정리시간은 지극히 짧은 시간이 소요되며, 또한 대기시간은 배차기준표에 의하여 고정된 휴식시간으로서 근로자들이 피고의 지휘 · 감독 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므로 근로시간에서 제외하여야 한다"고 맞섰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버스운행시간, 가스충전시간은 물론 운행준비와 정리시간, 대기시간 모두 근로시간에 포함된다고 보고 운행준비와 정리시간을 1일당 20분으로 인정,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1, 2심 재판부는 "원고들이 대기시간을 실질적으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원고들이 버스운행을 마친 후 다음 운행 전까지 대기하는 시간에는 근로시간에 해당하지 않는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하므로, 대기시간 전부가 근로시간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 대기시간에 대해 판단을 달리했다.
대법원은 "피고가 소속된 조합과 원고들이 소속된 노동조합은 임금협정을 체결하면서 1일 근로시간을 기본근로 8시간에 연장근로 1시간을 더한 9시간으로 합의하였는데, 이는 당시 1일 단위 평균 버스운행시간 8시간 외에 대기시간 중 일부가 근로시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원고들은 대기시간 동안 청소, 검차 및 세차 등의 업무를 수행하기도 하였으므로 대기시간 전부가 근로시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나, 원고들이 임금협정을 통해 근로시간에 이미 반영된 시간을 초과하여 위와 같은 업무를 하였는지,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 동안 위와 같은 업무를 하였는지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피고가 대기시간 내내 원고들에게 업무에 관한 지시를 하는 등 구체적으로 원고들을 지휘 · 감독하였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고, 오히려 원고들은 대기시간 동안 식사를 하거나 이용이 자유로운 별도의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등의 방법으로 휴식을 취하였으며, 종래 피고 소속 버스운전기사들은 대기시간을 휴게시간이라고 불러 왔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도로 사정 등으로 배차시각을 변경하여야 하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피고가 소속 버스운전기사들의 대기시간 활용에 대하여 간섭하거나 감독할 업무상 필요성은 크지 않았고, 대기시간이 다소 불규칙하기는 하였으나 다음 운행버스의 출발시각이 배차표에 미리 정해져 있었으므로, 버스운전기사들이 이를 휴식을 위한 시간으로 활용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판결(2016다254009 판결 등)에 따르면, 근로자가 작업시간 도중에 실제로 작업에 종사하지 않는 휴식시간이나 대기시간이라 하더라도 근로자의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되지 않고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 · 감독을 받는 시간은 근로시간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또 근로계약에서 정한 휴식시간이나 대기시간이 근로시간에 속하는지 휴게시간에 속하는지는 특정 업종이나 업무의 종류에 따라 일률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고, 이는 근로계약의 내용이나 해당 사업장에 적용되는 취업규칙과 단체협약의 규정, 근로자가 제공하는 업무 내용과 해당 사업장의 구체적 업무 방식, 휴게 중인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의 간섭이나 감독 여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휴게 장소의 구비 여부, 그 밖에 근로자의 실질적 휴식이 방해되었다거나 사용자의 지휘 · 감독을 인정할 만한 사정이 있는지와 그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개별사안에 따라 구체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법무법인 클라스가 상고심에서 안양교통을 대리했다. 원고들은 법무법인 여는이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