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시장이 다시금 뜨겁다. 2017년 말부터 2018년 초에 걸쳐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암호화폐 열풍이 꺼지면서, 당시 개당 2,500만원을 넘나들던 비트코인 가격은 2019년 초에 300만원대까지 추락했다. 이후 비트코인 가격은 일시적인 등락을 반복하면서 어느 정도 가격을 회복하여 작년까지 1,000만원대 중반 수준을 유지해 왔는데, 그간 꾸준히 진행된 암호화폐 산업 기반 성장, COVID-19 국면과 맞물린 전 세계적인 유동성 증가, 글로벌 기관들의 암호화폐 투자시장 진입 등 여러 요인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올해 들어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암호화폐 가격은 다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4월에 이르러 비트코인 가격은 개당 7,000만원을 돌파했고,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14곳의 하루 거래액(약 20조 8,830억원)이 코스피 거래액(약 14조 5,300억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거래액, 코스피 추월
이와 같은 분위기에 편승해 소액 개인투자자들도 암호화폐 투자에 가세하면서 암호화폐 시장 과열, 버블 붕괴와 패닉셀, 이에 따른 투자자 피해 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급기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 질의응답에서 암호화폐는 투기성이 강하고 내재가치가 없는 가상자산에 불과하므로 제도적으로 보호하기 어렵고 제도권에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그 여파로 비트코인 가격이 6,000만원 밑으로 떨어지는 등 주요 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하기도 했다. 마치 3년 전의 데자뷔 같다. 그런데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우리 사회는 암호화폐, 넓게는 블록체인 산업을 법과 제도의 테두리에 적절히 수용하여 규율하기 위한 준비를 그간 착실하게 진행해 왔다고 볼 수 있을까?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마쳐야
주지하는 것처럼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이 개정되어 2021. 3. 25.부터 시행되고 있다. 개정 특금법은 암호화폐를 비롯한 "가상자산"의 범위를 정하고 있고, 가상자산과 관련한 영업을 하고자 하는 자는 2021. 9. 24.까지 금융당국에 가상자산사업자 신고를 마쳐야 한다.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시 주요 심사항목은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인증, 은행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발급, 대표자 및 주요 임원의 자격요건 충족 등이다. 가상자산사업자가 특금법 규제 대상이 됨에 따라 가상자산사업자는 앞으로 다른 금융회사와 마찬가지로 의심거래 보고, 고액 현금거래 보고, 고객 확인의무 등 일반적인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이행해야 하고, 가상자산 거래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추가적인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가령 암호화폐 거래소가 자신의 고객과 다른 암호화폐 거래소의 고객 간 암호화폐 매매 · 교환을 중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이른바 '다크코인'과 같이 이전 시 전송기록을 식별할 수 없게 하는 기술이 내장된 암호화폐를 취급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처럼 개정 특금법이 가상자산사업자와 가상자산에 대해 일정한 규제 근거를 마련한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통신판매업 신고만 하고 수많은 개인을 상대로 하루 수조원에 달하는 규모의 영업을 해 오던 암호화폐 거래소들을 제한적이나마 규제의 틀 내로 끌어들여 사업자 신고와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법적 안정성과 거래 투명성을 제고하여 관련 시장의 안착과 발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業 자체 규율' 법률 아니야
그렇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와 같은 규제의 방향성이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특금법은 금융거래를 이용한 자금세탁행위와 테러자금 조달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금융회사 등에게 의심스러운 거래나 고액 현금거래 보고, 고객 확인, 자금세탁방지 관련 내부 업무절차 정비 등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법률이다. 즉, 금융업과 같이 특정한 업(業) 자체를 규율하는 법률이 아니라, 해당 업(業)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자금세탁행위를 규제 ·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이다. 암호화폐 등 가상자산을 이용한 거래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불법적인 거래나 자금세탁행위를 추적 · 방지하기 위해 특금법에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규제 근거를 두고 금융회사에 준하여 자금세탁방지의무를 부과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앞서 살펴본 대로) 가상자산사업자가 ISMS,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등 몇 가지 요건만 갖추어 금융당국에 사업자 신고를 하고 자금세탁방지 의무만 이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제는 해묵은(그렇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논의가 되었지만, 개정 특금법 역시 아래 의문들에 대해 별다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암호화폐가 자본시장법상 증권(특히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하기 위한 기준이 무엇인지, 근래 각광받고 있는 스테이블코인[가격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법정화폐에 페그(peg)되어 발행되는 암호화폐]의 가치저장이나 결제기능을 법적으로 어떻게 평가할지, ICO는 여전히 (관련 법령상 근거는 없지만) 금지되는 것인지,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왕왕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소위 작전세력의 '펌핑'을 어떻게 규제하고 소액투자자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인지(이와 관련해서 거래소 차원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무엇이 있을지), 여전히 시장참여자들은 안개 속을 걷고 있다.
암호화폐 등장 초기에는 여러 논란과 부침이 있었지만 시행착오와 혁신, 그리고 경쟁을 통해 새로운 서비스가 출시되면서 암호화폐 관련 산업은 계속 진화해 왔다. 단순히 거래소를 통한 투자뿐만 아니라, 암호화폐나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거래나 사업은 더 이상 극소수 매니아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최근에는 디파이(Decentralized Finance, 탈중앙화 금융), 즉 법정화폐의 개입 없이 (주로 이더리움이나 스테이블코인을 담보로, 또는 이를 매개로) 스마트 컨트랙트에 기반하여 작동하는 금융서비스도 등장했다. 아직 불완전한 점도 많고 제도권 금융과 경쟁하기에는 시기상조이지만 향후 발전 가능성 면에서 주목을 받으며 꾸준히 시장규모를 늘려 가고 있다.
3년 전 소극적 입장에서 벗어나야
이와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이 암호화폐나 관련 산업을 제도권 금융상품(금융업)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금세탁 방지나 과세 등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만 규제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3년 전 암호화폐가 처음 부상했을 때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정부가 취했던 소극적 입장에서 이제는 과감히 벗어나 암호화폐 산업을 제도권으로 인정하고 적극적인 규제 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구체적인 방법론에 있어서는 자본시장법, 전자금융거래법 등 금융 관련 법령에 특칙을 마련하자는 의견, 암호화폐의 기술적, 거래적 특성을 감안하여 독자적인 업권법(業圈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 등이 제시되고 있다. 적어도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가상자산사업자들 중 암호화폐 거래소들에 대해서는 보다 세밀한 진입규제(자본금, 인적 · 물적 요건, 지배구조 등), 영업행위 규제, 이용자 보호 및 공시규제가 우선 도입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암호화폐를 누구나 쉽게 접하고 투자하는 시대가 되었다. 암호화폐 산업에서의 국가경쟁력과 같은 거창한 담론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암호화폐를 단순히 무분별한 투기나 범죄 수단으로 치부할 시기는 지났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암호화폐에 대한 관점의 변화와 이를 둘러싼 사회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업계의 의견도 충분히 청취하여 암호화폐를 제도권에 받아들여 적정하고 합리적인 규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을 때다.
유정한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jhyoo@jipy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