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지열 전대법관, '법원사람들' 기고문서 법관들에 당부"'삶의 흐름' 읽어야…어질고 현명한 재판이 참된 재판"
10일 6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손지열 전 대법관이 법관을 선비에 비유하며, "올곧은 자세로 나라와 공동체를 지탱해 오던 선비 정신을 되살려 내야 한다"고 후배 법관들에게 당부했다.손 전 대법관은 법원에서 내부용으로 매달 발간하는 '법원사람들' 7월호에 기고한 '법관과 선비 정신'이란 제목의 글에서 "지도자들의 정신 내지 윤리로 영국에 '신사도', 일본에 '사무라이 정신'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선비 정신'이 있다"며, "오늘날의 이 사회에서 선비 정신을 솔선하여 되살려야 할 이들이 바로 법관이 아닌가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법관의 사명이나 하는 일이 선비의 그것과 비견할 만하며, 법관이 가져야 할 자세도 선비들에게서 배울 바가 많다고 본다"며, ▲깨끗함(淸士) ▲꼿꼿함(志士) ▲배우고 익힘(學士) ▲어짐(현명함 · 賢士)의 네가지 덕목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깨끗함'과 관련해 "오늘날의 법관에게 옛 선비와 같은 청백을 요구함은 무리이고, 또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면서도, "법관은 필요 이상의 부를 탐하고 이재에 신경을 써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그는 또 "(법관은) 언어 행동도 깨끗하여야 한다"며, "잡스런 무리들과 어울려 불미한 언동을 하여서는 신뢰나 존경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래서 법관을 성직에 비유한다는 것이다.
그는 "외압이나 청탁에 맞서 재판의 독립을 지키기 위하여 법관은 옛 선비들과 같은 꼿꼿한 기개와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꼿꼿함'을 강조하고, "다만 재판의 기준이 되는 법관의 정의는 개인적, 주관적인 정의이어서는 곤란하고, 건전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평균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의 즉 사회적, 객관적인 정의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인적인 소신은 자칫 고집에 흐르기 쉽고, 주관적인 정의는 자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항상 스스로의 생각을 갈고 닦아 자신의 정의관념이 객관적인 정의에 부합하도록 노력하여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또 "지식과 강직함만으로 훌륭한 재판이 되지 않는다"며, "인생에 대한 통찰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밑받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의 말을 끝까지 들을 줄 아는 인내와 관용, 나를 내세우지 않고 남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할 줄 아는 겸손과 아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당사자나 관계자의 괴로움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는 사랑이 필요하고, 지식보다는 지혜, 명쾌함보다는 현명함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건 속에서 단순한 '다툼'이 아니라 '삶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재판을 했다는 솔로몬 왕은 기계적인 사실인정과 형식적 법 논리로 재판하지 않았다"며, "아기와 어머니에 대한 깊은 사랑, 인간 심리와 모성에 관한 폭 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어질고 현명한' 재판을 했다"고 소개했다.
이런 재판이 참된 재판이라는 것이다.
손 전 대법관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으며, 제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74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32년간 법관의 길을 걸었으며, 2000년 대법관이 됐다. 법원행정처장을 역임했으며, 지난해 12월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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