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취임 자체가 사법부 개혁 상징""좋은 재판 실현, 최우선 가치 삼겠다"
제16대 대법원장,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했다. 김 대법원장의 취임은 그가 취임사에서 말한 것처럼 사법부의 변화와 개혁을 상징한다. 김 대법원장은 9월 26일 취임하면서 "저의 대법원장 취임은 그 자체로 사법부의 변화와 개혁을 상징하는 것"이라며 "오늘 그리고 내일의 사법부는 수직적이고 경직된 관료적 리더십이 아니라 경청과 소통, 합의에 기반을 둔 민주적 리더십으로의 전환을 마주하고 있다"고 사법부의 대전환을 예고했다.일선 판사로 있으면서도 법원 내 주요 현안에 줄곧 개혁적인 입장을 취해 온 그는 법원 내 대표적인 개혁파, 진보인사로 분류된다. 또 대법관을 역임하지 않고, 사법연수원 기수도 상대적으로 낮은 그의 대법관 임명은 '기수파괴', '경력파괴' 인사로 풀이되며 사법부의 구조와 문화, 판결 등에 지각변동을 예고해 온 것이 사실이다.
문 대통령, "국민들 기대 크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식 하루 전인 25일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국민들은 우리 정치도 또 사법부도 크게 달라져야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며 "국민들도 그렇고 사법부 내부에서도 신임 대법원장께 아주 기대가 큰 것 같다"고 거듭 기대감을 나타냈다. 또 "정치를 개혁하는 것은 대통령과 정부, 국회가 담당해야 될 몫인데 사법개혁은 사법부가 정치적 중립과 독립기구로서 독자적으로 해야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문 대통령에게 "국민의 기대를 잘 알고 있다"고 사법개혁 의지를 분명히 한 김명수 대법원장이 구현할 새 사법부는 어떤 모습일까.
김 대법원장은 적지 않은 분량의 취임사를 통해 주요 사법 현안에 대한 입장을 매우 소상하게 밝혔다. 취임사에 그의 사법에 대한 철학과 향후 추진방향이 상세히 나와 있다.
그는 먼저 사법부의 민주적 운영을 내세웠다. "권력분립의 이념 아래 국민의 헌법적 결단에 따라 대법원장에게 부여된 권한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대법원장의 권한 행사는 한 사람의 고뇌에 찬 결단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과 사법부 구성원의 의사가 반영되는 투명하고 민주적인 절차와 방식에 의하여야 한다"며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정점에 홀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늘 구성원들과 어울려 함께 소통하는 모습에서부터 사법부의 새로운 변화는 시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법원장의 권위를 앞세우기보다는 국민과 사법부 구성원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항상 살피고 유념하겠다"고 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동안 사법부가 이루어 온 훌륭한 성과들은 계승을 통해 더욱 발전시켜 나가고, 낡고 잘못된 관행이 있다면 찾아서 바꾸겠다"고 했다.
일선 판사로만 31년 근무
사법행정을 다루는 법원행정처 재직 경력은 없고, 일선 판사로만 31년 넘게 근무한 그는 또 '좋은 재판'의 실현을 최우선의 가치로 제시했다. "사법의 본질적 역할은 사회적 갈등을 법치주의의 틀 안에서 공정하고 평화롭게 해결하는 것"이라는 취임사 표현에 그가 법관으로서 재판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잘 나와 있다. 그는 "사법부가 국민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보답은, 독립된 법관이 공정하고 충실한 심리를 통하여 정의로운 결론에 이르는 '좋은 재판'"이라고 거듭 확인하고, "우리 모두가 행복하고 보람된 마음으로 '좋은 재판'을 실현하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좋은 재판이란 어떤 재판일까? 첫째 법관의 독립이다. 김 대법원장은 "사회적 갈등이 나날이 첨예해지고 격화되면서 대립되는 입장 사이의 간극은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고,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적 사고와 진영을 앞세운 흑백논리의 폐해는, 판결에 대한 합리적 비판을 넘어 급기야 법관마저도 이념의 잣대로 나누어 공격의 대상으로 삼기에 이르렀다"고 우려하고, "대법원장으로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고, 사법부의 독립을 확고히 하는 것이 국민의 준엄한 명령임을 한시도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나아가 "국민들은 법관이 사법부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로부터도 온전히 독립하여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심판하기를 원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 법관 개개인의 내부로부터의 독립에 대하여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제도개선에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적정, 충실한 재판 훼손 안 돼"
신속한 재판과 함께 충실한 재판, 재판의 적정도 김 대법원장이 추구하는 '좋은 재판'의 내용에 들어 있다. 그는 "우리의 재판이 속도와 처리량에만 치우쳐 있지 않은지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한다. 효율적이고 신속한 재판도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가치이지만, 이로 인해 적정하고 충실한 재판이라는 본질적인 가치가 훼손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라며 "성심을 다한 충실한 재판을 통해 국민들이 절차와 결과 모두에 수긍하고 감동할 수 있는 사법을 구현하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법관 및 재판지원 인력의 증원 등 좋은 재판을 위한 인적, 물적 여건 조성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현재의 어려운 여건 아래에서도 정의의 선언을 지연시키지 않으면서도 충실한 재판을 이룰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데에 지혜를 모아 달라"고 법원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김 대법원장은 전관예우의 우려 근절, 공정한 재판도 주문했다. 그는 "전관예우가 없다거나 사법 불신에 대한 우려가 과장된 것이라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재판의 전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여러 불신의 요인들을 차단할 방안을 강구하고, 보다 수준 높은 윤리기준을 정립하겠다"고 했다. 법관의 책임성을 강화하여 사법 불신을 조장하는 모든 것과 결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김 대법원장은 "그리하여 사법 불신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우리의 굳은 의지와 노력이 국민들에게 높이 평가되고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상고심 제도의 개선도 사법신뢰 회복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과제다. 그는 "대법원은 최종심이자 법률심으로서 사회의 규범적 가치기준을 제시하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하여 먼저 대법원 판결에 사회의 다양한 가치가 투영될 수 있도록 대법관 구성 다양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그가 제청할 대법관 임명에서 법관 일색이 아닌 다양한 경력의 법조인이 물망에 오를 것으로 기대된다.
'대법관 임명 다양화' 강조
그는 또 "우리의 실정에 알맞은 상고제도를 만들고 정착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이라며 "현재 급증하는 상고사건을 해소하고 상고심의 기능을 정상화하기 위해 상고허가제, 상고법원, 대법관 증원 등 여러 방안들을 보다 개방적인 자세로 검토하고 사회 각계의 의견을 두루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행정도 재판의 지원이라는 본래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재판 중심의 사법행정을 실천하겠다"고 했다. 법원행정처 등 사법행정 조직과 기능의 변화가 예상된다. 또 "사법행정에 관한 의사결정 및 집행과정에서 수평적이고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인 개선을 추진하겠다"며 "이와 함께 법관의 영광은 재판에 있음을 다시 한 번 새기면서 재판 중심의 인사제도가 구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취임식 하루 전인 9월 25일 첫 출근길에 기자들에게 "(사법부 블랙리스트 추가 조사 여부는) 오늘부터 시작되는 제 임기 중에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며 "잘 검토해서 국민이 걱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해결할 생각"이라고 말해 조사 결과가 주목된다. 김 대법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답변에서 (블랙리스트가) 만약 존재한다면 법관의 양심과 독립을 아주 현저하게 해치는 일이라고 했으나, 취임사에선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블랙리스트 조사' 가능성
김 대법원장은 "이제 사법부의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그러나 변화는 그 결과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 있어서도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그는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사법부 구성원 모두의 지혜와 뜻을 모아 나가겠다"고 했고, "더딜 수는 있지만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국민을 위한 올바른 방향으로 법원구성원 모두 쉼 없이 정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국민을 제대로 사랑하는 사법부, 국민에게서 진심으로 사랑받고 신뢰받는 사법부를 반드시 만들어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사법부의 역사를 물려주자는 것이 그가 취임사 끝에서 밝힌 대법원장으로서의 소명이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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