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용 유리를 생산하는 일본기업 아사히글라스의 한국 자회사인 AGC화인테크노한국(화인테크노)의 하청업체에 고용되어 화인테크노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TFT-LCD용 글라스 기판 제조 공정 중 일부 업무에 종사했던 근로자들이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화인테크노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받은 것이다.
대법원 제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7월 11일 전 하청업체 근로자 23명이 화인테크노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22다265635, 265642)에서 화인테크노의 상고를 기각하고, "피고는 원고들에게 고용의 의사표시를 하라"고 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은 원고들은 주식회사 A에 고용된 후 A와 도급계약을 체결한 피고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피고로부터 지휘 · 명령을 받으며 피고를 위한 근로를 제공하였으므로 원고들과 피고가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었다고 판단하였다"며 "원고들과 피고가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었다고 한 원심 판단에 근로자파견의 판단 기준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원심을 맡은 대구고법 재판부는 이렇게 판단한 이유로, A사의 현장관리자들의 역할과 권한은 피고 관리자들의 업무상 지시를 근로자들에게 전달하는 정도에 그쳤고, A사의 근로자들은 피고 관리자들의 업무상 지시에 구속되어 그대로 업무를 수행하였다고 밝혔다.
이어 "원고들이 근무한 구미시 소재 이 사건 공장의 공정 중 Cold 공정은 피고가 담당한 선행 Hot 공정과 컨베이어 벨트로 이어져 있어, A사가 담당한 Cold 공정 업무의 작업량과 작업속도는 Hot 공정의 영향을 받았고, Cold 공정에서는 피고가 담당하는 업무와 A사가 담당하는 업무가 전후로 이어져 상호 연동되기도 하였다"며 "A사의 근로자들은 피고의 글라스 기판 제조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Hot 공정은 원재료를 가마에 투입하여 글라스를 넓은 띠 형태로 성형 및 냉각하는 공정이며, Cold 공정은 Hot 공정에서 성형된 글라스를 검사하고, 고객의 요구에 맞게 절단, 포장하여 출하하는 공정을 말한다.
원심 재판부는 또 "A사는 피고가 결정한 인원 배치 계획에 따라 근로자를 채용하여 현장에 배치하였고, A사의 근로자들의 작업 ‧ 휴게시간과 휴가 등은 피고의 생산 계획의 영향을 받았으며, 피고와 A사가 체결한 도급계약의 목적과 내용이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업무의 이행으로 특정되었다고 볼 수 없고, A사의 근로자들이 담당한 업무에 필요한 전문성과 기술성이 높은 수준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A사는 설립 이후 피고로부터 도급받은 업무만을 수행하였고 도급계약이 해지되자 폐업하였으며, 생산 업무에 필요한 시설과 설비를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대법원은 "원고용주가 어느 근로자로 하여금 제3자를 위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경우 그 법률관계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는 당사자가 붙인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제3자가 그 근로자에 대하여 직 · 간접적으로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 · 명령을 하는지, 그 근로자가 제3자 소속 근로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되어 직접 공동 작업을 하는 등 제3자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원 고용주가 작업에 투입될 근로자의 선발이나 근로자의 수, 교육 및 훈련, 작업 · 휴게시간, 휴가,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계약의 목적 이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업무의 이행으로 확정되고 그 근로자가 맡은 업무가 제3자 소속 근로자의 업무와 구별되며 그러한 업무에 전문성 · 기술성이 있는지, 원고용주가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의 요소를 바탕으로 그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 등 참조)"고 밝혔다.
원고들이 소속됐던 A사는 화인테크노로부터 TFT-LCD용 글라스 기판을 제조하는 공정 중 일부 공정에 관한 업무를 도급받아 수행했으나, 화인테크노가 2015년 6월 '관계회사의 사업규모 축소 등으로 인해 관계회사의 직원들을 화인테크노로 전직하게 되었으므로, A사 직원들의 도급업무 수행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A사에 도급계약을 해지한다고 통보, A사가 소속 근로자들을 해고하고 폐업하자 원고들이 소송을 냈다.
법무법인 여는과 법무법인 창조가 1심부터 원고들을 대리했다. 화인테크노는 항소심부터 법무법인 태평양이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