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등의 이유로 임시후견인이 선임된 사람이라도 일정한 의사능력이 있다면 유효한 유언장을 남길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12월 1일 A씨가 "사망한 고모할머니 B의 유언 효력을 확인해달라"며 B의 조카인 C씨 가족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22다261237)에서 이같이 판시, "B가 작성한 자필유언증서는 그 유언의 효력이 있음을 확인한다"고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B는 생전에 중등도의 치매를 앓았는데, 이에 B의 조카 C(B의 오빠의 차남으로 A에게는 작은아버지)의 가족이 2016년 10월 B에 대한 성년후견인 지정을 청구, 법원이 같은해 12월 '위 성년후견개시 사건의 심판이 확정될 때까지 변호사 아무개를 B의 임시후견인으로 선임하고, B는 임시후견인의 동의 없이 재산의 처분, 채무의 부담, 예금의 인출행위를 할 수 없다(임시후견인이 동의권을 행사하는 경우 법원의 사전허가를 받아야 함)'는 내용의 사전처분을 하고, 2018년 1월 B에 대한 성년후견을 개시했다.
그런데 B가 성년후견이 개시되기 전인 2017년 3월 24일 본인 소유의 정기예금을 오빠의 장손인 A에게 유증한다는 취지의 유언장을 자필로 작성하고, 작성연월일, 주소, 성명을 자서한 후 날인한 후 2020년 사망했다. 이에 C의 가족이 "B가 임시후견인의 동의 없이 유언장을 작성했다"며 유언이 무효라고 주장, A가 유언의 효력을 확인하는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B의 유언이 무효라고 보았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B가 유언능력까지 제한된 성년후견 단계는 아니었다며 B의 유언장이 효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유언장을 작성할 무렵 B가 중등도의 치매로 의사능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이를 넘어서서 유언장의 의미나 결과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 또는 지능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유언장 작성 이전부터 오빠의 장손인 원고 부부와 그 아들에게 재산관리, 부양 및 사후 제사, 묘소 관리 등을 일임하는 대신 자신의 재산을 모두 증여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였고, 유언장 역시 위와 같은 의사를 확인하는 의미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여 B의 평소 의사와 부합하는 점, 유언장 작성 당시를 촬영한 영상에 의하더라도 B는 자신의 의사에 따라 유언장을 작성하고 이를 원고의 처에게 교부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들이 제출하는 증거들만으로 B가 유언장 작성 당시 의사무능력상태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항소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민법 제1060조는 '유언은 본법의 정한 방식에 의하지 아니하면 효력이 발생하지 아니한다'고 정하여 유언에 관하여 엄격한 요식성을 요구하고 있으나, 피성년후견인과 피한정후견인의 유언에 관하여는 행위능력에 관한 민법 제10조 및 제13조가 적용되지 않으므로(민법 제1062조), 피성년후견인 또는 피한정후견인은 의사능력이 있는 한 성년후견인 또는 한정후견인의 동의 없이도 유언을 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위와 같은 규정의 내용과 체계 및 취지에 비추어 보면, 후견심판 사건에서 가사소송법 제62조 제1항에 따른 사전처분으로 후견심판이 확정될 때까지 임시후견인이 선임된 경우, 사건본인은 의사능력이 있는 한 임시후견인의 동의가 없이도 유언을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하고, 아직 성년후견이 개시되기 전이라면 의사가 유언서에 심신 회복 상태를 부기하고 서명날인하도록 요구한 민법 제1063조 제2항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원심은, B의 이 사건 유언장에 의한 유언이 민법 제1066조 제1항에서 정한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으로서 법정요건을 갖추었기에 유효하다고 판단하였는바,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 가사소송규칙 제32조 제4항의 위법성, 민법 제1063조의 해석, 변론주의 및 공정한 재판의 원칙, 석명권의 한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