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녀와 사이에서 난 혼외자에게 자신이 사망하면 유산을 증여하기로 각서를 썼더라도 생전에 철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인증여에도 유증의 철회에 관한 규정이 유추적용된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다.
A씨는 내연관계에 있던 B씨와의 사이에서 출생한 혼외자 C군에게 자신이 사망할 경우 자산 소유분 중 40%를 넘긴다는 내용의 각서를 2012년 1월 작성하고, 1년쯤 지난 2013년 4월 현재 소유한 토지의 일부분 중 20억원 정도 금액을 C군에게 상속한다는 두 번째 각서를 작성했다. A씨는 이후 두 번째 각서에 기한 채무를 담보하기 위해 2013년 5월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목장용지 762㎡와 동물관련시설(계사), 도로 102㎡, 밭 781㎡ 등에 관하여 B씨 앞으로 채권최고액 15억원의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마쳐 주었다.
그러나 이후 A와 B씨의 관계는 파탄되었고 A씨와 C군 사이의 관계도 단절되었다. A씨는 2015년 2월 B씨와 C군을 상대로 친생자관계존재확인소송을 내 'A씨가 C군을 A씨의 친생자로 인지하고, B씨를 C군의 친권자와 양육자로 지정하며, A씨는 B씨에게 C군의 양육비로 2015년 12월부터 C군이 성년이 될 때까지 월 200만원을 지급하고 A씨의 C군에 대한 면접교섭권을 인정하는 내용'의 조정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A씨는 그 후 사인증여를 철회한다고 주장하며 B씨를 상대로 위 근저당권설정등기의 말소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모두 "B씨는 A씨에게 근저당권설정등기의 말소들기절차를 이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A씨와 C군 사이에 각서 작성을 통해 사인증여계약이 성립되었고, B씨 명의 근저당권은 A씨의 C군에 대한 사인증여로 인한 채무를 담보하기 위한 것인데, A씨의 사인증여 철회로 이 근저당권의 피담보채무가 소멸했으므로 원고의 청구를 인용한 것이다.
B씨의 상고로 열린 상고심(2017다245330)에서 대법원 제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도 7월 28일 "유증의 철회에 관한 민법 제1108조 제1항은 사인증여에 준용된다"며 B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사인증여는 증여자의 사망으로 인하여 효력이 발생하는 무상행위로 그 실제적 기능이 유증과 다르지 않으므로, 증여자의 사망 후 재산 처분에 관하여 유증과 같이 증여자의 최종적인 의사를 존중할 필요가 있고, 또한 증여자가 사망하지 않아 사인증여의 효력이 발생하기 전임에도 사인증여가 계약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법적 성질상 철회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볼것은 아니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증의 철회에 관한 민법 제1108조 제1항은 사인증여에 준용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민법 562조는 "증여자의 사망으로 인하여 효력이 생길 증여에는 유증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고 규정하고, 1108조 1항은 유증자는 그 유증의 효력이 발생하기 전에 언제든지 유언 또는 생전행위로써 유증 전부나 일부를 철회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유증의 철회를 인정한 민법 제1108조 제1항을 사인증여에 준용하여 사인증여의 철회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학설의 대립이 있을 뿐 대법원이 명시적으로 판시한 적이 없다"며 "이번 판결을 통해 사인증여와 유증의 실제적 기능이 다르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인증여의 철회가 허용된다는 법리를 처음으로 판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