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사람이 비폭력주의 · 반전주의 신념 등을 이유로 현역병 입영을 거부한 경우도 무죄라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지난 2월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사람이 비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예비군훈련 등을 거부한 사안에서 무죄를 선고했는데, 이번에는 현역병 입영 거부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대법원 제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6월 24일 비폭력주의 · 반전주의 신념과 신앙을 이유로 현역병 입영을 거부하여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A씨에 대한 상고심(2020도17564)에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대한성공회 교인으로서 비폭력주의 · 반전주의 신념과 기독교 신앙 등을 병역거부 사유로 주장했으나, 법원은 A씨가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닐 뿐만 아니라 단순히 기독교 신앙(교리)만을 근거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므로, 기존의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 사안과는 구별해서 보았다.
A씨는 2017년 10월 16일 서울지방병무청장 명의의 현역 입영통지서를 전달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로부터 3일이 경과한 11월 17일까지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되었고,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이 선고되자, "종교적, 정치적 신념을 기초로 한 양심에 따라 입영을 거부한 것으로, 병역법 88조 1항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가 있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에 따르면, 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획일적인 입시교육과 남성성을 강요하는 또래 집단 문화에 성소수자로서 반감을 느끼며 사회의 기존 가치체계에 의문을 품게 된 A는 정의와 사랑을 가르치는 기독교 신앙에 의지하게 되었고 2007년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는 여러 선교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A는 2009년 무렵부터 사회참여적 선교단체에 소속되어 '이스라엘의 무력침공을 반대하고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염원하는 기독교단체 긴급기도회', '용산참사 문제 해결 1인 시위', '한국전쟁 60주년 평화기도회 반대 시위',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 기지 반대 운동'과 '수요시위' 등에 참여하면서 사회적 약자에게 가장 큰 고통을 안기는 전쟁과 타인에 폭력을 가할 것을 전제로 존재하는 군대가 약자를 포용하며 생명을 존중하는 기독교의 교리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학생활 도중 다양성과 평등을 핵심가치로 여기는 페미니즘을 접하게 된 A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페미니즘을 더 깊이 탐구하였고, 스스로를 '퀴어(성소수자) 페미니스트'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A는 차별과 이분법적 성별 인식을 지양하고 공존을 강조하는 페미니스트로서 다양성을 파괴하고 차별과 위계로 구축되는 군대체제 및 생물학적 성으로 자신을 표준남성으로 규정짓는 국가권력을 용인할 수 없다고 느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사랑과 평화를 강조하는 기독교 신앙과 소수자를 존중하는 페미니즘의 연장선상에서 비폭력주의와 반전주의를 옹호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의 신앙과 신념이 피고인의 내면 깊이 자리 잡혀 분명한 실체를 이루고 있고, 이를 타협적이거나 전략적이라고 보기 어려워 피고인이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므로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다"며 1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대한성공회 종교단체의 견해를 신앙의 일부분을 받아들여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기독교 사상에 기초하여 미리 병역거부에 대한 의사를 굳힌 뒤, 그러한 의사와 성소수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온건적인 입장인 대한성공회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원심의 판단에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