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인이 임대차계약 갱신거절 의사를 밝히지 않아 묵시적으로 임대차계약이 갱신되었다면, 임차인이 전세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했어도 채권자인 카드사가 임대인을 대위하여 임차인을 상대로 아파트의 인도를 요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임차인에게 유리한 판결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를 임차해 거주하고 있던 A씨는 2015년 11월 롯데카드로부터 대출기간을 2015년11월 18일부터 2017년 11월 17일까지 2년으로 정해 전세자금 7,130만원을 대출받으면서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 7,130만원을 담보로 제공하는 근질권설정계약을 맺었다. A씨와 롯데카드 간 근질권설정계약서에는 '대출기간의 종료로 대출금을 즉시 변제해야 할 때는 LH의 요구가 있는 경우 아파트를 임대인인 LH에 즉시 명도한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아파트를 임대인에게 넘기고 임대차보증금을 회수하게 해 이 임대차보증금으로 대출금을 갚게 하려는 취지였다. 임대차기간을 2013년 12월 23일부터 2016년 1월 31일까지로 정해 거주해온 A씨는 2016년 2월 LH와 임대보증금을 73,274,000원으로 증액하고, 임대기간을 2016년 2월 1일부터 2018년 1월 31일까지로 변경하는 내용으로 임대차계약을 갱신했다.
그러나 A씨가 2017년 11월 롯데카드와의 대출약정 만기일이 지난 후에도 대출금을 변제하지 않자 롯데카드가 이듬해인 2018년 3월 A씨에게 대출금 원리금 합계 75,725,294원의 변제를 최고하고, 근질권설정계약서에 명시한 대로 아파트를 LH에 인도하고 대출금을 반환하라며 A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A씨에게 대출금 원리금 합계 75,725,294원의 대출금 변제를 명하면서 아파트도 LH에 인도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앞서 소송계속 중 원고와 LH와의 사이에 "피고 한국토지주택공사는 A씨로부터 임대차 부동산을 인도받음과 동시에 71,300,000원에서 A씨가 연체한 차임, 관리비 등 임대차관계에 따른 채무액을 공제한 나머지 돈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화해권고결정이 확정되었으며, 1, 2심 재판부는 "임대차계약은 2018. 1. 31. 기간만료로 종료하였고, 질권자인 원고는 민법 353조 1항에 따라 질권의 목적이 된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을 제3채무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에게 직접 청구할 수 있으며, 위 채권의 보전을 위하여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하여 임대인인 한국토지주택공사를 대위하여 임차인인 피고에게 아파트의 인도를 구할 수 있으므로, 임차인인 피고는 임대인인 한국토지주택공사에 아파트를 인도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제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그러나 7월 9일 원심판결 중 아파트 인도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2020다223781).
대법원은 먼저 A씨와 LH와의 임대차계약이 2018년 1월 31일 기간만료로 종료되었다는 원심의 판단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민간임대주택법의 적용을 받는 민간임대주택에 관하여 주택임대차보호법 6조 1, 2항에 따라 임대차계약이 묵시적으로 갱신되는 경우 당사자가 별도로 임대차기간을 2년 이상으로 정하기로 약정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임대차기간은 2년이 된다고 보아야 하고, 임대인은 민간임대주택법 시행령 35조 내지 임대차계약의 갱신거절 등에 관한 표준임대차계약서 해당 조문의 각 호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가 존재하는 경우라야 그 임대차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하거나 임대차계약의 갱신을 거절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아니한 경우에는 임차인이 임대차계약의 갱신을 원하는 이상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임대인이 임대차계약의 갱신을 거절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고 전제하고, "나아가 임대인에게 임대차계약의 갱신을 적법하게 거절할 수 있는 사유가 존재하더라도, 임대인이 반드시 임대차계약의 갱신을 거절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며, 임대인에게 임대차계약의 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 권한이 발생한 뒤에라도 임차인은 임대인이 실제로 그러한 의사표시를 하기 이전에 갱신거절의 사유를 해소시킴으로써 임대인의 갱신거절 권한을 소멸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임대차기간이 2018. 1. 31.까지로 정해진 이 사건 임대차계약을 갱신하기 위하여 재계약에 따른 증액보증금의 납부 및 계약체결을 피고에게 요청하였고, 당시 보증금 증액을 조건으로 임대차계약 갱신의사를 가지고 있었던 사실, 피고 역시 2018. 1. 31.이 지난 후의 기간분에 대해서도 한국토지주택공사에 차임을 지급한 바 있고, 2019년 무렵에는 미납된 증액보증금과 관리비를 납부하기 시작한 것을 비롯하여 2019. 3. 29. 한국토지주택공사 앞으로 2,034,200원 및 191,720원을 각 송금하였으며, 1심 변론종결일인 2019. 4. 10.을 기준으로 피고가 미납한 증액보증금 및 관리비가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된 사실, 피고는 원심 변론종결일인 2019. 12. 6.까지도 이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고,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발급한 2018. 7. 13.자 계약사실확인원에는 (피고와 LH가 맺은) 임대차계약에 따른 피고의 임대차기간이 2018. 2. 1.부터 2020. 1. 31.까지이고 피고는 입주자격을 충족하여 갱신계약이 진행 중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하고, "위와 같은 사실관계에 의하면,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원심 변론종결일까지 임차인인 피고를 상대로 민간임대주택법 시행령 35조 내지 임대차계약의 갱신거절 등에 관한 표준임대차계약서의 해당 조문에 나오는 각 호의 사유를 제시하면서 임대차계약의 갱신을 거절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한 바가 없고, 오히려 임대차계약이 2018. 2. 1.부터 갱신되어 여전히 존속 중임을 전제로 증액보증금 등의 납부를 피고에게 구하였을 뿐이며, 피고는 이러한 청구에 따른 이행을 이미 마친 상태라고 할 것이어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임대인으로서 2018. 1. 31.부로 종료될 예정이던 임대차계약에 대한 갱신거절을 더 이상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또 "채권자대위권은 채무자의 제3채무자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므로, 제3채무자는 채무자에 대하여 가지는 모든 항변사유로써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으나, 채권자는 채무자 자신이 주장할 수 있는 사유의 범위 내에서 주장할 수 있을 뿐, 자기와 제3채무자 사이의 독자적인 사정에 기한 사유를 주장할 수는 없다"며 "이 사건 임대차계약에 관하여 갱신거절이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없고, 이는 임대차계약이 기간만료로 종료된 것임을 전제로 한국토지주택공사를 대위하여 아파트의 인도를 구하는 원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임대차계약이 갱신되지 아니한 채 2018. 1. 31. 기간만료로 종료되었다고 보아 이 사건 아파트의 인도청구를 인용한 원심 판단엔 잘못이 있다"고 판결했다. 임대차계약이 갱신되었으므로 채권자인 롯데카드도 A씨에게 아파트의 인도를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