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온라인 숙박예약 플랫폼인 '부킹닷컴(Booking.com)'에 내린 환불불가 조항 사용금지 명령은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환불불가 조항은 숙박업체와 고객간 숙박계약에 포함되는 내용이어, 고객과 숙박업체를 중개하는 플랫폼 사업자는 환불불가 조항과 관련해 약관법상 사업자가 아니고, 환불불가 조항이 불공정 약관도 아니라는 이유다.
서울고법 행정6부(재판장 이창형 부장판사)는 5월 20일 네덜란드의 온라인 숙박예약 서비스 플랫폼인 부킹닷컴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취소소송(2019누38108)에서 이같이 판시, "환불불가 조항에 대한 수정 · 삭제 · 사용금지 시정명령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김앤장이 부킹닷컴을 대리했다.
암스테르담에 주소를 두고 있는 부킹닷컴은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플랫폼)을 통해 세계 각국의 숙박업체와 숙박업체를 이용하려는 고객에게 숙소 게시, 검색, 숙박예약, 결제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온라인 숙박예약 서비스를 40여개 언어로 제공하고 있다. 부킹닷컴은 자신의 플랫폼에서 검색된 숙소 목록의 '객실유형' 중 '조건' 또는 '선택사항' 항목에 '환불불가'라는 조건(환불불가 조항)을 게시하여 고객에게 제시한다. 고객이 환불불가 조항이 기재된 객실을 예약하였다가 취소할 경우, 예약 취소시점부터 숙박예정일까지 남은 기간을 불문하고 미리 결제한 숙박대금을 환불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에 공정위가 환불불가 조항이 고객에게 부당하게 과중한 손해배상 의무를 부담시키는 약관 조항이라는 이유로, 부킹닷컴에 시정권고를 받은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해당 조항을 수정하도록 권고하였으나, 부킹닷컴이 환불불가 조항을 계속 사용하자, 공정위는 시정권고 불이행으로 인하여 다수의 고객에게 피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현저하다는 이유로 환불불가 조항을 수정 또는 삭제하고 사용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고, 이에 부킹닷컴이 불복해 소송을 냈다.
원고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첫 화면의 하단에 "당사는 홈, 아파트 등 개성 넘치는 숙박 옵션 629만개를 포함해 2,910만 개의 숙박 옵션을 227개 국가/지역 내 여행지 15만 곳에서 제공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다.
재판부는 먼저 "원고가 국내에 영업소를 두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원고는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국어로 된 플랫폼을 운영하고 국내 인터넷 검색포털 사이트 광고를 통해 영업활동을 하며, 숙박업체는 원고를 통해 국내에서 광고 등 영업활동을 하고, 대한민국의 소비자가 국내에서 원고의 플랫폼을 이용하여 숙박상품을 검색하고 숙박예약의 청약 및 결제를 하는 등 계약체결에 필요한 행위를 하고 있으므로, 그 플랫폼 이용계약 및 숙박계약은 국제사법 27조의 보호대상이 되는 '소비자계약'에 해당하여 강행규정인 약관법의 적용을 받는다"며 "환불불가 조항은 약관법상 약관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환불불가 조항은 숙박계약에 포함되는 내용이고 숙박계약의 당사자는 숙박업체와 고객이므로, 원고는 숙박계약의 한쪽 당사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환불불가 조항을 숙박조건에 포함시킬지 여부는 숙박업체가 결정하므로, 환불불가 조항은 숙박업체의 약관이지 원고의 약관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원고는 엑스트라넷에 숙박업체가 숙박조건을 입력할 수 있는 틀(도구)을 제공할 뿐 숙박조건 자체를 결정하지 않으므로, 원고가 숙박계약의 내용 중 하나로 환불불가 조항을 마련하였다고 볼 수 없고, 원고는 자신의 플랫폼에서 고객으로 하여금 환불불가 조항이 포함된 숙박상품을 검색하고 숙박예약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숙박계약을 중개하면서 숙박업체를 대신하여 숙박업체가 결정한 환불불가 조항을 제안하는 차원이므로, 원고는 고객에게 자신의 약관으로서 환불불가 조항을 제안하는 자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원고가 숙박업체와 숙박시설 등록 계약을, 고객과 플랫폼 이용계약을 체결하였고, 이와 별도로 고객이 원고의 플랫폼에서 숙박예약을 완료함으로써 숙박업체와 숙박계약을 체결한 것이므로, 원고, 숙박업체, 고객 사이에 각각 3개의 개별계약이 성립하였을 뿐 3면계약이라는 하나의 계약이 성립하였다고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따라서 원고는 환불불가 조항과 관련하여 약관법상 사업자가 아니므로, 환불불가 조항을 수정 · 삭제하고, 사용을 금지하라는 피고의 처분은 위법하고, 환불불가 조항이 부당하게 과중한 손해배상 의무를 부담시켜 불공정하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므로, 이러한 점에서도 피고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중개업자, 통신판매업자인 통신판매중개자로서 책임을 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의 특수성으로 인한 전자상거래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통신판매중개의뢰자, 통신판매업자의 책임을 연대하여 지거나 대신하여 지도록 하는 것일 뿐 이를 통해 통신판매중개의뢰자, 통신판매업자의 계약당사자 지위 자체를 취득하는 것이 아니고, 숙박업체가 통신판매중개의뢰자, 통신판매업자라고 하더라도, 전자상거래법상 책임 규정만으로 원고가 숙박업체의 계약당사자 지위 자체를 취득한다고 볼 수 없다"며 "약관법은 사업자의 요건으로 계약의 한쪽 당사자일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원고가 전자상거래법상 일정한 책임을 진다고 하여 곧바로 숙박계약의 한쪽 당사자가 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약관법상 환불불가 조항에 관한 사업자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거듭 밝혔다.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약관법) 2조 2호는 "사업자란 계약의 한쪽 당사자로서 상대 당사자에게 약관을 계약의 내용으로 할 것을 제안하는 자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