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해외건설 프로젝트에도 발주자의 공사중단 지시, 통행금지로 인한 현장 셧다운 등 엄청난 파장을 야기하고 있다. 건설사 관계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기자재의 제작과 조달 지연, 인근 지역 이동제한으로 인한 근로자와 장비 운전원의 결근 등 현장에서의 어려움은 물론 정부예산 삭감 등을 포함한 긴급조치로 공사계약의 해지가능성이 대두되고, 공사지연에 따른 매출 감소와 수금지연으로 인한 자금흐름 악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이슈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그렇지 않아도 분쟁이 많은 해외건설 현장에 코로나19로 인한 수많은 클레임이 예상되고, 실제로 대부분의 건설사에서 발주자를 상대로 공기연장과 추가공사비 보상 클레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국제건설에너지법연구회 긴급 화상좌담회 개최
이런 가운데 국제건설에너지법연구회(회장 정홍식 중앙대 로스쿨 교수)가 4월 2일 저녁 "코로나19–해외건설 프로젝트에 미치는 영향 및 법적 대응방안"이란 주제로 긴급 화상좌담회를 개최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좌담회는 정 교수의 사회로 패널들이 줌(Zoom)이라는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각자의 사무실에서 접속한 가운데 화상을 보며 진행되었으며, 피터앤김(Peter & Kim)의 김갑유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의 박기정 영국변호사, 김앤장의 임병우 변호사 그리고 건설사 법무임원 3명과 재보험사 대표 등이 패널로 참여했다.
좌담회에서는 6가지 세부주제를 다루었다. 첫째, 계약상 불가항력(force majeure) 조항이 있다면 코로나19 사유는 불가항력 사유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효과는 무엇이고, 건설사들이 이 조항에 기대기 위해 취해야 할 조치들은 무엇인가? 둘째, 많은 국가의 정부가 취하고 있는 입국금지, 여행금지, 봉쇄 등의 여러 행정명령 조치 혹은 권고사항이 해외현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이를 건설계약에 들어가는 'Change in Law' 조항 상의 법령변경에 해당하는가? 그렇다면 그 효과는 무엇인가? 그리고 불가항력과 법령변경 조항에 기댄 클레임이 동시에 가능한가? 셋째, 위 두 가지 근거에 따른 클레임 이외에 시공자가 준거법상 기대어 클레임 할 수 있는 법리들이 있다면 무엇인가? 넷째, 하도급업체들과 벤더들이 제기할 클레임에 대한 대응방안은 무엇인가? 다섯째, 코로나 사태를 공사보험으로 커버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질병을 커버할 보험상품은 무엇이 있는가? 여섯째, 이 사태가 장기화되고 클레임 중 일부가 국제중재로 이어진다면 그 양상과 전망은 어떻게 될 것인가? 외국입국 및 그 반대상황이 어려운 가운데 국제중재 절차 진행의 난관이 예상되는데 그 해결책은 어떻게 되는가? 등이다.
이 주제들은 물론 해외건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이 국제거래에 적용될 수 있는 중요한 이슈들이다. 약 3시간 동안 심도 있는 내용으로 진행된 좌담회 논의 결과를 요약해 소개한다.
여러 패널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결과 도출한 핵심 결론은 첫째,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이기 때문에 불가항력 사유로 간주될 소지가 크기는 하나, 그러기 위해 우선 시공자는 계약상 요구된 통지요건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 사태라는 원인 사유가 공사의 주경로(critical path)에 영향을 미쳐 공기지연이 발생했다는 그 인과관계의 증명이 아주 중요하다는 데 패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코로나19의 영향을 최소화하거나 회피하기 위한 여러 경감조치를 취해야 하고 이를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공자가 일정 기간 동안 이행불능에 빠지게 되면, 그 기간 동안 공기연장을 받아 지연기간 동안의 지체상금 부과를 면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인과관계 증명 중요
둘째, 국제건설계약상 'Change in Law' 조항이 불가항력 조항과 별도로 존재하는 경우, 그 조항에 따른 추가적인 클레임을 고려할 수 있다. 많은 국가의 중앙정부 혹은 지방정부가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가지 유형의 행정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Change in Law 조항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이런 행정명령에 따른 공기지연의 결과로 인해 발생한 추가공사비의 보상청구가 가능할 수는 있으나 넘어야 할 부분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즉, 발주자 입장에서 불가항력 클레임을 수용하여 공기연장은 해줄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Change in Law 조항에 따른 추가공사비 보상까지 해줄지는 의문이라는 견해가 존재한다. 또한 행정명령이 해외 특정 공사현장이나 건설업계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고, 해당 국가에 전국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기에 과연 발주자가 이러한 추가공사비 클레임에 대해서까지 수용할 것인지도 미지수이다. 패널들은 "Change in Law 쟁점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논란이 있을 것 같다"고 지적하고, "그렇지만 시공자는 불가항력 조항과 Change in Law 조항이 계약상 대부분 따로 존재하기에, 일단 양쪽 모두에 기대어 클레임을 제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셋째, 이들 조항 이외에 추가로 발주자를 상대로 구할 수 있는 구제로는 계약의 준거법상 허용할 수 있는 사정변경원칙, 즉 계약준수원칙의 예외로서 주로 대륙법계에서 인정되는 원칙에 따라 계약조항의 재협상 및 수정을 구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이는 각기 계약의 준거법마다 그 요건과 효과가 다르기 때문에 해당 준거법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고, 계약의 준거법이 영국법인 경우, 시공자가 계약목적 좌절(frustration of purpose)의 법리에 의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이 법리는 계약목적이 좌절되었기 때문에 계약관계를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지, 이 법리를 통해 공기연장이나 추가공사비를 보상받으면서 계약관계를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 코로나 사태가 계약 목적 자체를 좌절시킬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넷째, 하도급업체나 기자재 공급업체들의 클레임들에 대해 그 클레임의 적법성이나 요건 준수만 가지고 판단할 것이 아니고, 발주자에 대한 클레임을 포함하여 전체 프로젝트의 여러 사항들을 전사적이고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대응해야 할 것으로 정리되었다.
다섯째, 현행 사용되는 조립보험이나 공사보험으로는 코로사 사태로 인한 순수 재정손실을 커버하기는 어려우나, 공사중단에 따른 suspension coverage를 보험계약에 포함하는 경우 공사중단시에도 조립보험이나 공사보험의 효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계약별로 위험배분 어떻게 했는지 따져봐야
여섯째, 국제중재의 양상과 전망에 대해서는 중재인들조차 이 사태를 몸소 겪어 그 어려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불가항력 인정여부에 대한 쟁점에서 다소 후한 판정이 나올 여지는 있어 보인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Change in Law에 대한 판단까지는 확실하게 논의되지는 못했으나, 결국 개개의 계약마다 위험배분을 어떻게 하였느냐에 달려있다고 보아야 한다.
나아가 패널들은 현장이 소재하고 있는 나라의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중재 제기가능성까지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고 불확실하나, 한국인들만을 대상으로 차별적인 입국금지 등의 조치를 취한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 판단해 볼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마지막으로 중재절차에 대해서는 각 국제중재기관이 심리를 비디오 컨퍼런스를 활용하려 하고 있어, 앞으로 이 방식을 통한 중재절차가 진행될 것이어 국제중재 자체가 좀 더 수월해질 수 있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이 외에도 좌담회에서 여러 세부적인 쟁점이 많이 다루어지고 논의되었다. 화상좌담회의 녹화영상은 주제별로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6개의 파일로 나뉘어 유튜브의 "국제거래TV" 채널(https://www.youtube.com/channel/UCaUhVLlomTH_YsZwXPWo2TQ)에 올려져 있다.
리걸타임즈 이은재 기자(eunjae@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