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초래 단정 불가"
단체협약을 통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했는데도 근로자들이 이러한 노사합의와 달리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추가 법정수당을 지급하라고 청구하더라도 신의칙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또 나왔다. 대법원 제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4월 23일 윤 모씨 등 한진중공업 근로자와 퇴직자 491명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휴일근로수당과 야간근로수당, 연차휴가수당, 휴업수당 및 퇴직금을 다시 계산해 차액을 추가로 지급하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6다37167)에서 이같이 판시,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신의칙 위반 여부를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원고 측은 법무법인 우리로, 한진중공업은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대리했다.
윤씨 등을 포함한 한진중공업 소속 근로자를 대표하여 단체교섭할 권한을 가진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는 2008년 8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단체협약을 회사 측과 체결했다. 이 단체협약 등에 따라 한진중공업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의 범위에서 제외됨을 전제로 야간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연차휴가근로수당(이상 법정수당), 휴업수당 등을 계산하여 원고들에게 지급했으나, 윤씨 등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법정수당과 휴업수당, 퇴직금을 다시 산정하고 미지급분을 추가로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한진중공업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을 다투면서, "설령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이 인정되더라도 이를 통상임금에 반영하여 각종 법정수당을 추가로 청구하는 것은 노사합의에 어긋나고 피고에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기 때문에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주장, 신의칙 위반 여부가 재판의 주요 쟁점 중 하나가 되었다.
1심 법원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은 인정하면서도 피고의 신의칙 위반 주장을 받아들였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재판부도 1심 법원과 마찬가지로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은 인정했다. 그러나 피고의 신의칙 위반 주장에 대해서는, 미지급 법정수당 즉 미지급 야간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연차휴가근로수당 청구와 퇴직금 · 휴업수당 청구를 나눠, 미지급 법정수당에 대해선, "피고에게 미지급 법정수당의 지급을 명할 경우, 원고들은 당초 합의한 임금수준을 초과하는 예상외의 이익을 얻는 반면, 장기적인 경영난 상태에 있는 피고는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지출을 하게 됨으로써 경영상의 어려움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의 신의칙 위반 항변을 받아들였다.
다만 미지급 퇴직금과 휴업수당 청구에 대해서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여 퇴직금과 휴업수당을 산정한다 하더라도, 노사가 합의한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외의 퇴직금과 휴업수당이 지급된다거나 피고에게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이 생긴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며 신의칙 위반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특히 "통상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기준임금인 평균임금은 실제 지급된 임금을 '사후에 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로자가 연장근로 등을 제공하기 전에 미리 확정되어야 하는 통상임금과는 달리 개별 임금의 평균임금 포함 여부에 관한 노사 간의 사전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고, 특히 이 사건의 경우, 평균임금을 산정하면서 정기상여금을 제외한다는 노사 간의 합의는 없었고, 피고 역시 정기상여금을 평균임금에 포함하여 퇴직금을 지급하였다"며 "노사 간의 합의와 그에 기초한 신뢰의 형성을 전제로 한 신의칙 항변은 원칙적으로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한 퇴직금 청구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퇴직금은 근로자의 통상적인 생활임금에 해당하는 '평균임금'을 기초로 퇴직금을 산정한다. 또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휴업하는 경우에 사용자는 휴업기간 동안 그 근로자에게 평균임금의 100분의 70 이상의 휴업수당을 지급하여야 하며, 평균임금의 100분의 70에 해당하는 금액이 통상임금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통상임금을 휴업수당으로 지급할 수 있다.
대법원은 그러나 미지급 법정수당 청구와 관련해서도 신의칙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법원은 먼저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사용자에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여 신의칙에 위반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고 전제하고,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킴으로써 추가 법정수당을 지급한다고 하여 피고에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그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원고 서 모, 정 모씨를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의 미지급 법정수당 청구가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신의칙 위반 여부에 관한 궁극적인 판단의 기준은 경영상 어려움 또는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지 여부.
대법원은 이와 관련, "서씨 등을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의 제소로 인하여 피고가 부담할 추가 법정수당은 약 5억원 상당으로 보이고, 피고의 매출액이 매년 큰 등락 없이 5조원 내지 6조원 상당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한편, 위 추가 법정수당의 규모는 피고의 연 매출액의 약 0.1%에 불과하다"며 "또한 이는 피고가 매년 지출하는 인건비 약 1500억원의 0.3%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가 매년 보유하는 현금성자산도 상당한데, 사실심 변론종결일에 가장 가까운 2015년 말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800억원 상당에 이르러 피고가 부담할 위 추가 법정수당의 약 160배에 이르고, 피고의 현금흐름을 보더라도, 2015년 이후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 유입이 원활하여 피고가 추가 법정수당을 변제할 재원을 마련하는 데 현저한 어려움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원심 판시와 같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피고 소속 근로자의 통상임금이 약정 통상임금보다 상당히 증가하고 그로 인하여 피고가 지급하여야 할 임금 총액도 상당히 증가하여 당초 예측하지 않았던 새로운 재정적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앞서 본 추가 법정수당 규모 등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사정이 추가 법정수당의 지급으로 인하여 직접적으로 피고에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고 볼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신의칙 위반이란=단체협약 등 노사합의의 내용이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하여 무효인 경우에, 그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되는 권리의 행사라는 이유로 이를 배척한다면, 강행규정으로 정한 입법취지를 몰각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므로, 그러한 주장은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판단이다. 다만 노사합의의 내용이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한다고 하여 그 노사합의의 무효 주장에 대하여 예외 없이 신의칙의 적용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며,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에도 불구하고 신의칙을 우선하여 적용하는 것을 수긍할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그 노사합의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정기상여금에 대해선, 노사합의에서 정기상여금은 그 자체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전제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 산정 기준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전제로 임금수준을 정한 경우, 근로자 측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가산하고 이를 토대로 추가적인 법정수당의 지급을 구함으로써, 사용자에게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추어 신의에 현저히 반할 수 있다는 것이 2013년 12월 18일에 선고된 전원합의체 판결(2012다89399)의 취지.
대법원은 다만 근로관계를 규율하는 강행규정보다 신의칙을 우선하여 적용할 것인지를 판단할 때에는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하여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향상시키고자 하는 근로기준법 등의 입법 취지를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고, 또한 기업을 경영하는 주체는 사용자이고, 기업의 경영 상황은 기업 내 · 외부의 여러 경제적 · 사회적 사정에 따라 수시로 변할 수 있으므로,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로 배척한다면, 기업 경영에 따른 위험을 사실상 근로자에게 전가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고, 따라서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사용자에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여 신의칙에 위반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