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초 홍콩 10대 부호 중 한명인 쉬스쉰(許世勛, Hui Sai Fun)이 97세의 일기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리자청(李嘉誠, Li Ka Shing)이나 리자오지(李兆基, Lee Shau Kee)만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기업가는 아니지만, 미스홍콩 출신의 여배우 리자신(李嘉欣, Michelle Reis)의 남편인 쉬진헝(許晋亨, Julian Hui)의 부친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또한 경마에서 최초로 100승 이상을 거둔 홍콩 최대의 마주로도 유명하다.
재산 절반, 신탁 · 보험에 넣어
사람들은 쉬스쉰의 남아있는 유일한 아들인 쉬진헝과 리자신이 얼마나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을 것인지에 관심이 쏠렸는데, 이후 언론을 통하여 단편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쉬스쉰은 죽기 전에 이미 재산상속에 관한 방안을 마련해두었고, 약 420억 홍콩달러(한화 약 6조원)에 이르는 재산 중 절반은 자선사업에, 절반은 가족신탁기금과 보험에 넣었다고 한다. 결국 쉬진헝과 리자신 부부는 직접 재산을 상속받지는 못하고, 매달 200만 홍콩달러(한화 약 2억 9,000만원)의 생활비를 기금으로부터 받게 된다고 한다.
일반인들에게는 매달 200만 홍콩달러도 천문학적인 금액이지만, 총재산이 420억 홍콩달러라는 점을 고려하면, 200만 홍콩달러는 확실히 구우일모(九牛一毛)이다. 누군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이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전부 받으려면 1750년이 걸린다고 했다.
그렇다면 쉬스쉰이 준비한 상속방안은 어떠한 것이며, 왜 그는 그러한 상속 플랜을 마련한 것일까.
쉬씨 집안의 재산은 쉬스쉰의 부친인 쉬아이저우(許愛周, Hui Oi Chow)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1881년 광저우시 잔장(湛江)에서 태어났는데, 이 지역이 프랑스에 조차되자 즉시 이를 사업기회로 여기고 선박을 구매하거나 임대하여 해상운송업에 뛰어들어 큰 돈을 벌었다. 그 후 1950년대에 홍콩으로 옮겨와서 빠오위강(包玉剛, Pao Yue Kong), 동하오윈(董浩雲, C. Y. Tung), 차오원진(曹文錦, Wen King Tsao)과 함께 홍콩의 4대 선박왕 중 한 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해운업 이외에 광산, 부동산 등 여러 분야에 투자하여 재산을 늘렸다.
재산 모두 가족신탁기금에 넣어
쉬아이저우에게는 아들이 3명 있었는데, 가족재산이 희석되고 분산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재산을 모두 가족신탁기금에 넣고, 아들 3명에게 각각 사업 한 분야씩을 맡게 했다. 장남에게는 해운업을, 차남에게는 광산업을, 그리고 삼남인 쉬스쉰에게는 부동산업을 경영하게 하였다. 그 후 부친과 형 두 명이 차례로 사망하면서, 쉬스쉰이 쉬씨 집안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게 되었다. 쉬스쉰은 뛰어난 사업재능을 보여주었다. 특히 1987년에 가업이었던 해운업을 모두 매각한 후, 그 돈으로 부동산 등 여러 분야에 투자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쉬스쉰에게는 두 아들과 딸 하나가 있다. 장남인 쉬진첸(許晋乾, Hui Jen Kin)이 2014년에 사망하여 아들은 쉬진헝만 남았다. 그런데 쉬진헝은 어려서부터 공부나 사업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홍콩의 유명한 플레이보이였다. 여러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리다가 마카오의 카지노왕 스탠리 호(Stanley Ho)의 딸인 팬시 호(Pansy Ho, 何超瓊)와 1991년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으나, 2000년 이혼하고 바로 리자신과 재혼했다. 리자신은 포르투갈인 부친과 상해 출신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고, 미스홍콩이 된 후 배우의 길을 걸어 <천녀유혼2>, <동방불패>, <방세옥> 등에 출연하여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는데, 결혼 후에는 연예계를 떠났고, 둘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있다.
아마도 쉬스쉰은 아들 쉬진헝이 회사 경영에 능력도 없고, 흥미도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 리자신의 야망이 지나치게 크다는 것을 눈치챘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가족재산과 가족기업의 영속성을 고려하여, 부친 쉬아이저우가 만든 가족신탁기금제도를 더욱 완벽하게 마련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족신탁기금을 만드는 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지분이 희석되어 가족이 회사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하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반면교사격인 가장 유명한 사례는 싱가포르의 음료회사인 양협성(楊協成, Yeo's)이다. 창업자인 양텐언(楊天恩)이 사망한 후 주식을 가족 7명이 나누어 가지게 되는데, 결국 망하게 된다. 둘째, 가족간의 재산다툼으로 인한 경영 혼란을 막을 수 있다. 반면교사격인 가장 유명한 사례는 대만의 이병철로 불리는 포모사플라스틱(臺塑)의 창업주 왕용칭(王永慶)이 사망한 후, 자녀들 간의 분쟁이 장기간 지속되는 것을 들 수 있다. 셋째, 자식에게 경영능력이나 경영의지가 없는 경우의 해결책이 된다. 완다(萬達)의 왕쓰총(王思聰)은 일찌감치 부친 회사의 업종에는 관심이 없고 투자분야에 관심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자선법상 세제 혜택 있어
또한 쉬스쉰은 재산의 절반을 자선에 사용하도록 하였는데, 이같이 자선기금이나 자선신탁을 운영하는 경우에는 홍콩의 <자선법>상 세제 혜택이 있다. 중국은 2004년과 2013년에 상속세법을 초안한 바 있지만, 아직 상속세법이 정식 발효되지 않았으므로 절세 대책을 마련할 필요는 없지만, 홍콩은 상속세가 과세되므로 세금과 관련한 플랜도 중요한 요소이다.
한편 보험을 활용하고 있는 것도 음미해 볼만하다. 예를 들어 장국영(張國榮)이 사망했을 때, 그는 3억 홍콩달러가량의 재산을 남겼고 상속세가 약 4,000만 홍콩달러에 달했다. 그의 재산은 남자친구 당학덕(唐鶴德)이 상속받았는데, 두 사람은 생전에 거액의 생명보험에 가입해 두었기 때문에, 직전에 가입하여 받지 못한 경우를 제외하고도 상속세를 납부하는데 충분했다고 한다. 홍콩 최고 부자 리자청 같은 경우에도 자식들이 태어나면 1인당 1억 홍콩달러의 보험에 가입해둔다고 한다.
자식 1인당 1억HKD 보험 가입
쉬아이저우와 쉬스쉰이 가족신탁기금과 보험으로 상속 플랜을 만든 것은 뛰어난 상속 플랜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쉬아이저우로부터 아들 셋에게 넘어갈 때도 평온하게 가족재산을 온전하게 유지했고, 상속재산 다툼은 일어나지 않았다. 둘째, 쉬스쉰의 두 형이 사망하였을 때에도 유산상속 문제로 다툼이 일어나지 않았고, 가족재산은 온전하게 보존되었다. 셋째, 쉬진헝이 팬시 호와 이혼할 때에도(팬시 호의 재산이 더 많기는 했지만) 가족신탁기금이나 보험은 재산분할의 대상이 아니어서, 가족재산의 유실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넷째, 쉬진헝이 가족재산을 흥청망청 써버리는 것도 막을 수 있다.
김종길 변호사(법무법인 동인, jgkim@donginlaw.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