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지법] "신의칙상 고지의무 위반"
새로 입주한 아파트 인근 야산에 분묘가 있고, 일부는 아파트 동 사이에 있어 아파트 내부에 분묘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줄 경우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입주한 입주자가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박대준 부장판사)는 2월 15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의 경남아너스빌을 분양받거나 이전받은 하 모씨 등 180명이 "인근에 분묘가 있는 사실을 모르고 분양받아 손해를 보았다"며, 시행사인 대아레저산업(주)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10가합16705)에서 40%의 배상책임을 인정, 하씨 등 입주자 75명에게 1인당 1800여만원에서 290여만원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이 아파트 인근 야산에 모두 9기의 분묘가 존재하고, 각 동에서 25~133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일부 세대에선 거실과 침실 등에서 신경을 쓰지 않아도 육안으로 가까이 보이는 분묘가 많으나 시행사인 피고는 2007년 1월 분양 당시 입주자들에게 이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이에 뒤늦게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된 입주자들이 "무덤의 존재를 알았으면 분양받지 않았을 것"이라며 피고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먼저 "분묘들이 대규모 공동묘지와 달리 불과 9기밖에 되지 않고 관리상태가 양호하여 보는 사람에 따라 느끼는 호불호의 정도가 다를 것으로 판단되는 점, 일부 분묘는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어 문화재로서의 가치도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수분양자 원고들 제출의 증거들만으로는 이 사건 분묘들이 수인 불가능한 정도의 혐오감이나 공포감을 준다거나 스산한 분위기를 명백히 조성하는 혐오시설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분묘들이 혐오시설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분묘는 우리 사회의 통념상 사람들의 주거환경과는 친하지 않은 시설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지적하고, ▲일반적으로 아파트 단지와 맞닿은 야산에 다수의 분묘가 아파트 단지를 마주보고 존재할 수 있다고 예상하기는 쉽지 아니한 점 ▲아파트 단지 배후에 야산이 있다면 수분양자들은 산림의 조망을 기대하며 분양계약을 체결하였을 것이고, 산림 대신 분묘가 아파트 단지 내부에까지 들어와 있고 위 분묘를 근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는 장소에서 일상생활을 하기를 바라거나 기대하리라고 볼 수는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분묘들의 존재는 주거의 근거지로서의 이 사건 아파트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서 분양계약의 교섭 단계에 있는 수분양자 원고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사항이라 할 것이고, 수분양자 원고들이 아파트를 분양받을 당시 분묘들의 존재에 관해 고지를 받았더라면 그 각 분양계약을 체결하지 아니하였을 것임이 명백하므로, 분양회사인 피고로서는 수분양자 원고들에게 분묘들의 존재 사실을 고지할 신의칙상 의무를 부담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가 수분양자 원고들에게 분묘들의 존재를 고지하여야 할 신의칙상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분양계약 체결을 위해 입주자 모집을 공고하는 과정에서나 실제 분양계약을 체결할 당시 수분양자 원고들에게 분묘들의 존재에 관하여 고지하지 아니한 이상, 피고는 부작위에 의하여 신의칙상 고지의무를 위반하였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고지의무 위반은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로서 불법행위에 해당하므로, 피고는 수분양자 원고들에게 그로 인해 입은 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다만, ▲수분양자 원고들은 이 사건 아파트의 입주자모집공고 혹은 공급계약서에 의하여 현장 확인 의무가 있었던 점 ▲분양계약 당시 이 사건 아파트를 비롯한 인근의 유사 단지 근처 야산에는 이 사건 분묘들을 포함하여 많은 수의 분묘가 산재해 있었던 점 ▲이 사건 아파트는 그 대지가 채권병행 입찰제로 낙찰된 까닭에 당시 주변 아파트의 시세나 분양가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에 분양되었고, 1억원 내지 2억원의 프리미엄까지 형성되었던 점 ▲수분양자 원고들이 이 사건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납입한 분양가는 2007년 1월경의 시가는 물론 금융위기 등으로 인해 부동산시장이 침체된 2010년 12월경 이후의 시가보다도 낮은 점 등을 고려해, 공평의 원칙상 피고의 책임을 각 손해액의 40%로 제한했다.
재판부가 인정한 손해배상액은 분묘의 존재 자체로 인한 단지 전체의 일률적인 시가 하락액과 분묘들이 보이는 정도에 따른 세대별 시가하락액의 합계액.
원고 측은 법무법인 율현, 피고 측은 법무법인 충정이 대리했다.
이은재 기자(eunjae@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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