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가 불규칙한 주 · 야간 교대근무 등으로 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급성 심근염 진단을 받고 사망했다면 업무시간이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 기준에 미치지 못해도 업무상 재해로 보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12월 24일 급성 심근염 진단을 받고 사망한 대우조선해양 직원 A(사망 당시 37세)씨의 배우자가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20두39297)에서 이같이 판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법무법인 여는이 1심부터 원고를 대리했다.
2009년 4월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한 A씨는 조선소의 소조취부 현장에서 부재결합, 가용접, 판접 자동용접 등 취부조립과 자동용접 업무를 수행하면서 주 · 야간 교대근무를 하다가 2016년 11월 4일 야간근무 중 갑자기 통증을 느끼고 조퇴하여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다른 병원으로 후송되어 '급성 심근염' 진단을 받고 열흘 뒤 사망했다. 이에 A씨의 배우자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등을 신청하였으나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A씨의 원칙적 근무형태는 주 단위로 주 · 야간 교대근무를 하면서, 1주 평균 4일 근무하며, 주간근무는 중식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08:00부터 17:00까지 매일 8시간씩, 야간근무는 야식시간 1시간과 취침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20:00부터 다음날 05:00까지 매일 7시간씩 근무하는 것이었으나, 사망 전 12주간 거의 매주 10∼40시간씩 야간 근무를 했고 주 · 야간 근무일정도 불규칙적이었다. 또 사망 보름 전인 10월 31일부터 설사, 몸살, 미열 등이 동반된 상기도감염, 장염 등 증상이 있었으나 11월 1일부터 3일까지 3일 연속 10시간씩 야간근무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가 모두 "A의 사망과 그가 수행하던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자 원고가 상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상병 발생 전 업무 시간이 직전 4주 동안 1주 평균 42시간 30분, 12주 동안 1주 평균 45시간 35분으로, 고용노동부가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가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고시한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60시간(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에 미치지 못하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A는 오랜 기간 불규칙적으로 계속되는 주 · 야간 교대제 근무를 하면서 육체노동을 하였으므로, 육체적 · 정신적 피로가 누적되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주 · 야간 교대근무가 취침시간의 불규칙, 수면부족, 생활리듬 및 생체리듬의 혼란으로 피로와 스트레스를 유발하여, 그 자체로 질병을 촉발하거나 또는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가 신체의 면역력을 저하시켜 질병의 발병 · 악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고, 게다가 주 · 야간 교대근무의 일정 및 주기가 불규칙적이라면, 근무자가 받는 피로와 스트레스 등 부정적 영향이 더욱 클 것이라는 점은 쉽게 추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개정된 (고용노동부) 고시에 의하면, A의 업무는 근무일정 예측이 어려운 업무, 교대제 업무,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 등과 같은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업무에 해당하므로, 급성 심근염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52시간에 미달하더라도 업무와 질병 사이의 관련성이 증가한다고 보아야 한다"며 "결국 A는 평소 주 · 야간 교대근무 등으로 인하여 육체 · 정신적 과로가 누적되어 면역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초기 감염이 발생하였고, 그런데도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야간근무를 계속하던 중 초기 감염이 급격히 악화되어 상병이 발병하여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시했다. A의 업무와 상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여지가 커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업무시간은 업무상 과로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서 하나의 고려요소일 뿐, 절대적인 판단기준은 될 수 없다고도 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