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수 교수, "행동법경제학의 지평" 논문에서 주장기업들은 근시안적 투자행태, 과신 · 쏠림편향 보여
많은 중소기업들이 손실을 본 가운데 상품을 판매한 은행과의 사이에 소송이 진행중인 키코(KIKO)계약과 관련, 투기적 성질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의 고학수 교수는 2월 11일 제3회 위공(爲公)법경제학상 수상을 기념해 발표한 "행동법경제학의 지평"이란 논문에서 "흔히 키코계약을 헷지를 위한 통화옵션계약이라 하는데, 키코계약은 구조상 헷지계약의 성질과 투기(speculation)적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분류와 호칭에 있어서 "키코계약이 투기계약 또는 최소한 투기와 헷지가 결합된 계약으로 명시적으로 설명되었다면, 기업들이 계약체결에 있어 좀 더 신중한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고 교수는 이어 "특히 구조화(framing)의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손실기피(loss aversion)라는 일반적인 행위자의 특성상 키코계약이 일정부분은 투기계약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기업들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신중한 결정을 하도록 유도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상품과 관련된 정보공개 및 설명과 관련해서도, "많은 기업들이 소송을 통해 적합성의 문제나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 주장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법리적 판단과 별개로 정보공개나 설명에 대한 개선책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정책적인 이슈를 제기했다.
그는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는 것 자체로 충분하지 않고 어떤 형태나 방식으로 정보를 제공하느냐 하는 것이 실제로는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키코계약의 경우 녹인 및 녹아웃 상황을 포함하여 환율변동에 대한 몇 가지 긍정적 시나리오와 부정적 시나리오를 준비하여 각각의 경우에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지에 관해 간략한 표를 준비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명시적으로 수치를 계산하여 제시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마치 식품에 대해 간략한 표를 만들어 영양성분을 표시하는 것과 유사하게 키코 등 소비자 금융상품에 대해 간략한 표를 통해 주요사항들을 일목요연하고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정리해 제공하는 방안을 강구해 보자는 것이다.
고 교수는 키코에 가입한 기업들에 대해서도 행동법경제학적인 분석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먼저 "많은 국내외 연구기관들이 원화가치의 안정 및 점진적 상승을 예측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의 순수 헷지계약에 비해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체결할 수 있는 키코계약에 기업들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환율의 변동에 대해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실제로 발생한 경우와 같이 환율이 급격하게 절하될 경우에는 기업이 파산에 빠질 정도로 손실액이 커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의 커다란 위험을 무릅쓰고 키코계약을 체결한 것까지 합리적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불분명하다는 게 고 교수의 판단. 그는 또 "키코계약이 모든 규모나 유형의 수출기업이 아닌 일정 규모의 중소기업 사이에서 특히 인기가 많았던 것도 흥미로운 이슈"라고 분석했다.
고 교수는 "이럴 때 일정부분 보완적 설명을 제공해 주는 게 행동법경제학"이라며, 투자자에 해당하는 기업들의 근시안적 투자행태(investor myopia)와 과신편향(overconfidence bias), 쏠림현상(investor herd behavior) 등 세가지를 지적했다.
근시안적 투자형태란 말 그대로 투자자가 정보를 처리하고 판단을 함에 있어 먼 과거에 관한 정보보다는 최근의 정보에 더 큰 가중치를 부여하는 것으로, 고 교수는 "키코계약을 맺은 기업들이 환율변동의 추세와 관련, 1997년 이후의 급격한 환율변동은 예외상황으로 치부하고 2006년과 2007년 그리고 그 이전 수년 동안의 안정성에 특히 주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근시안적 투자행태는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 자신의 기억에 쉽게 떠오르는 정보에 크게 의존하여 판단하는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을 활용한 판단방법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며, "이런 방식은 판단에 소요되는 시간이나 비용 등은 절감할 수 있는 반면 편향이 있는 정보에 기초하여 그릇된 판단을 가져올 위험성이 높은 추론 및 판단방식"이라고 주의를 환기했다. 이어 "근시안적 투자행태는 닻내리기 효과(anchoring effect)에 기인한 면도 있을 수 있는데, 기업들이 2003년경부터 수년간 겪어 온 안정적이고 점진적인 환율변동이 판단과정에서 일종의 닻으로 작용하여 급격한 환율변동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하도록 유도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 교수가 두번째로 지적한 과신편향은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긍정적인 사건의 가능성은 과대평가하는 한편 부정적인 사건의 가능성은 과소평가하는 편향으로, 그는 "키코계약을 체결한 기업들의 기업내 대리인 문제나 지배구조 문제, 상품시장에서의 경쟁도 등이 과신편향의 발현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키코상품이 처음 시장에 소개된 것은 2005년이었으나 광범위하게 계약이 체결된 것은 2007년이었고, 그 해에 많은 중견 중소기업들이 급작스럽게 유행처럼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며, "이는 키코가입에 있어 일종의 쏠림현상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 컬럼비아대 로스쿨(J.D.)을 졸업했으며,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미국변호사 자격을 갖추고 있으며, 미국와 국내 로펌에서 근무한 데 이어 2005년 교수가 되어 주로 법경제학, 협상론 등을 강의한다.
Copyrightⓒ리걸타임즈(www.legaltime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리걸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