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건형]
한국의 중재시장이 전 세계의 이목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ICC(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법원이 지난 해 11월에 홍콩 지부를 설립했는가 하면, 지난 한 해, 싱가포르 국제중재센터(SIAC)와 홍콩 국제중재센터(HKIAC)가 기관 홍보 성격의 설명회를 서울에서 개최한 바도 있다.
경제규모에 비해 중재시장이 아직까지 발달되지 못하고 있는 일본과 중국의 중재기관들, 예를 들어 일본중재협회(JCAA), 대련중재위원회 등과 베트남 법무부의 고위공무원들이 대한상사중재원을 방문하여 한국의 중재시장과 대한상사중재원이 발전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방문조사를 하기도 하였다.
올 6월 서울서 APRAG 총회
2006년에는 ICC 국제중재법원이 대한상사중재원과 서울에서 국제중재 컨퍼런스를 공동으로 개최하는가 하면, 영국의 런던 국제중재법원(LCIA)이 대한상사중재원과 2008년 4월 공동으로 국제심포지엄을 서울에서 개최하기도 하였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중재기관들이 주축이 된 APRAG (Asia Pacific Regional Arbitration Group)은 올 6월 21일부터 23일까지 제3차 총회 및 컨퍼런스 개최지를 서울로 선정해 현재 대한상사중재원과 국제중재실무회가 공동으로 개최준비를 하고 있고, 6월 21일에는 LCIA와 공동으로 심포지엄도 개최할 예정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중재인과 실무가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불과 3~4년 전만 해도 ICC 중재에서 중재지로 서울이 지정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지만, 현재 서울에서 진행되는 ICC 중재가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한국의 중재인이 중립중재인(단독 또는 의장중재인)으로 추천되는 일도 지난해부터 시작된 현상이다.
또한 ICC 국제중재법원 사무국의 아시아-태평양 중재팀의 담당변호사(Counsel)였던 호주 출신의 James Morrison이 5월 1일부터 국내의 한 대형 로펌의 국제중재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참고로 사무국에는 아시아-태평양팀 외에도 프랑스-아프리카팀, 이탈리아팀, 남미팀, 미국팀, 독일팀, 러시아팀 등 7개팀이 존재한다.
이 또한 전 세계 국제중재 커뮤니티에서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여기고 있다. 이 뉴스와 관련해서, 필자는 친분이 있는 다양한 국가의 중재인과 변호사들로부터 놀랍다는 의견을 e메일을 통해 많이 받고 있다. 한국의 중재시장의 잠재력에 대해서는 전 세계의 관련 중재 전문가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ICC 국제중재법원 홍콩지부에 현재 계류 중인 사건은 80건이 조금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ICC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 중 싱가포르 당사자가 관련된 사건이 가장 많고, 한국과 홍콩 당사자 관련 사건이 그 뒤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건의 분쟁규모나 질에 있어서는 한국 당사자 관련 사건이 단연 눈에 띈다고 한다.
예보 국제중재 2년에 마무리
국내에서 단군 이래 최대 송사라는 삼성자동차 채권단 분쟁의 규모가 5조원이다. 2006년 ICC에 접수되었던 예금보험공사와 한화그룹 간의 대한생명 M&A 관련 중재사건은 분쟁규모가 1조원이 넘는다. 현재는 분쟁금액이 5조원이 훨씬 넘는 또 다른 한국의 대기업 관련 사건도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예금보험공사 사건이 사건의 복잡성과 규모가 엄청난데 비해 중재판정까지 걸린 기간이 2년에 불과했을 만큼 신속하게 해결되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기업 인수 · 합병( M&A) 및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건설 및 플랜트, 선박건조 그리고 연예인 전속관련 분쟁을 포함한 영화, 방송 · 통신, 미디어, 광고,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관련 분쟁사건은 중재절차의 대외비나 신속성 그리고 첨단적인 전문성에 비추어 볼 때 중재적합성이 가장 돋보이는 분야인 것으로 생각된다.
엔터테인먼트 중재활성화 기대
특히 공정거래위원회는 고(故) 장자연씨 자살사건을 계기로 신인 연예인과 기획사 간의 불공정계약의 폐해를 시정하고자 연예인 전속표준계약서의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연예매니지먼트협회와 연예제작자협회는 공정위에 표준약관 심사를 위해 제출한 자체 표준계약서에 중재조항을 넣고 있을 만큼 향후 연예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중재활성화도 기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각 기업들도 점점 더 중재제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 대기업그룹 법무실의 한 인사는 "국제계약뿐 아니라 국내 계약에서도 분쟁해결 방법으로 중재를 규정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중재제도 이용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최근 몇 년 사이에 퍼지기 시작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 국내 굴지의 자동차회사 법무실의 한 담당자도 "특히 국제계약의 경우 분쟁해결은 중재를 원칙으로 하고 있고, 특별한 반대이유가 없는 한 대한상사중재원의 국제중재규칙을 계약상 중재규칙으로 수용토록 협의, 유도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대기업들의 중재제도에 대한 선호 현상이 다른 대기업 및 중소기업들에게 전파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로 보이기까지 한다.
국내 대기업들도 중재 선호
향후 블루오션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한국의 중재시장이 법률시장 개방 이후 독일과 같이 외국의 로펌들에 잠식되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국내의 로펌과 변호사들은 중재제도와 중재실무에 대해 미리미리 심도 깊은 연구와 공부로 철저한 대비를 하여야 할 것이다. 기회는 기다리는 자에게 절대 오지 않는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올 뿐이다.
WBC의 한국야구팀, 세계 피겨계와 골프계의 여제 김연아, 신지애 등과 같이 전 세계 국제중재 커뮤니티에서 한국의 중재인과 변호사들이 세계를 호령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안건형 과장 (대한상사중재원, copy7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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