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 "방송사고로 수능 영어 듣기평가 44분 지연 불구 국가에 배상책임 없어"
[손배] "방송사고로 수능 영어 듣기평가 44분 지연 불구 국가에 배상책임 없어"
  • 기사출고 2024.07.03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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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독해문항 먼저 풀고 듣기평가 실시

2022년 11월 17일 시행된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전남 화순고 시험장에서 방송사고로 수능 영어 듣기평가가 44분 지연 실시되어 혼란을 겪은 수험생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으나 졌다.

서울중앙지법 김민정 판사는 6월 19일 수험생 1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23가단5078176)에서 "시험의 실시와 대처 과정에서 관련 공무원들이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고 객관적 정당성을 잃었다고는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2023학년도 수능의 제3교시 영어영역 시험은 13:10에서 14:20까지 70분 동안 실시하되, 13:07에 듣기평가 예비방송을 한 후 13:10부터 13:35까지 25분에 걸쳐 듣기 평가를 하고, 나머지 시간 동안 독해문항을 푸는 순서로 진행되도록 예정되어 있었으나, 2023학년도 수능 당일 화순고 시험장에서 13:07쯤 듣기평가 예비방송을 하던 중 원인을 알 수 없는 방송시스템의 오류로 인해 방송이 시험실(교실)에 송출되지 않았다. 시험장에 상주하던 외부 방송시설 전문가가 방송 송출을 위해 CD 교체, 방송의 수동 전환, 프로그램 OFF/ON을 시도했으나 송출이 되지 않았고, 시험장 책임자인 학교장이 대책회의를 거쳐 13:10쯤 독해문항을 먼저 풀도록 결정했다. 이에 복도감독관이 시험실 감독관들에게 독해문항을 먼저 풀게 하도록 구두로 안내해 시험실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13:12부터 13:14 사이에 전달되었다.

다시 긴급 대책회의를 거쳐 13:14쯤 시험장 책임자가 응시생들에게 4분의 추가 시험시간을 부여하고 13:54에 듣기평가 방송을 송출하기로 결정하여 그 안내가 각 시험실에 전달되었다. 원래 예정 시간보다 47분 지난 13:54에 예비방송을 포함한 듣기평가 방송이 시작되어 14:22경 종료되었고, 영어영역 시험은 시험시간 4분이 추가됨에 따라 14:24 종료되었다.

원고들은 "피고가 시험장에서 2023학년도 수능 영어영역 시험을 실시하면서 방송사고와 그 대처 과정을 통해, 듣기평가를 먼저 실시하고 독해문항을 푸는 학습 루틴대로 준비해 온 응시생인 원고들에게 혼란을 초래하고 시험에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김 판사는 "화순고 시험장(이 사건 시험장)에서 듣기평가 방송이 예정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응시생인 원고들은 당황하거나 혼란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제출된 증거들을 검토하여 볼 때, 이 사건 시험장에서 시험을 준비하고 실시한 공무원들이 그와 관련하여 객관적인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하였다거나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김 판사는 "기존에 대비하여 온 것과 달리 듣기평가 방송이 나중에 진행됨으로써 원고들이 사실적으로는 시험을 치르는 데 영향을 받았을 수 있으나,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영어영역 시험이 듣기평가를 제일 먼저 실시하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법령 상의 근거가 없음은 물론 그와 같이 볼 다른 근거도 찾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오히려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감독관 유의사항'은 방송사고가 있는 경우 듣기평가가 나중에 실시될 수 있음을 예정하고 있고, 이 사건에서처럼 방송사고가 발생하는 것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에는 듣기평가를 나중에 실시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 시험장의 듣기평가 방송과 관련한 공무원들의 준비와 실시, 사고 후 대처가 미진한 면은 있으나, 방송시설 등을 나름대로 철저하게 준비하였고, 방송사고가 발생하자 미리 준비한 지침에 따라 대처 방안에 관하여 신속하게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졌으며 제대로 수행되었다"고 지적하고, "사후적으로 따져 가장 최선의 방법들을 택하지 않았음을 들어 주의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탓할 수는 없고, 객관적 정당성을 잃었다고는 더더욱 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김 판사는 "학창 시절 동안 준비해온 중요한 시험에서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하여 사실적인 불이익을 입은 원고들의 입장은 공감할 수밖에 없지만, 이 사건은 공무원들의 준비와 대처가 완벽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피고가 손해배상책임을 질 정도로 공무원들이 주의의무를 게을리하여 법령을 위반하였는지 이다"라며 시험의 실시와 대처 과정에서 관련 공무원들이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고 객관적 정당성을 잃었다고는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원고들에 대하여 피고가 손해배상책임을 진다는 원고들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부법무공단이 국가를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