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캐디가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숨진 사건과 관련, 대법원이 직장 내 괴롭힘을 한 상급자의 불법행위에 대한 사용자책임을 인정해 골프장 운영사 측에도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제2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5월 17일 숨진 골프장 캐디 A(여)씨의 어머니와 언니가 A씨가 일하던 파주시에 있는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는 학교법인 건국대학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상고심(2024다207558)에서 건국대 법인의 상고를 기각, 건국대 법인과 직장 내 괴롭힘을 한 상급자 B씨의 책임을 50% 인정해 "건국대 법인과 B씨는 연대하여 원고들에게 1억 7,2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A는, 이 골프장에서 '캡틴'이라고 불리며 경기보조원(캐디)들을 통솔, 관리하는 업무를 수행한 '경기팀' 직원 B로부터 공개적으로 질책하는 발언을 자주 들었다. B는 다른 캐디들도 들을 수 있는 무전으로 지시를 하면서 A에게 "뚱뚱해서 못 뛰는 거 아니잖아. 뛰어"라거나 "오늘도 진행이 안 되잖아, 오늘도 또 너냐"라는 등의 발언을 했다. 캐디들은 B로부터 질책을 받으면 '네 또는 죄송합니다'라고만 대답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추가로 질책 또는 벌칙을 받게 되므로 A가 B에게 항의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 골프장 기숙사에서는 룸메이트 사이에 분쟁이 있으면 방을 옮기는 사람이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인식되었는데, A는 2020년 7월경 룸메이트와 분쟁이 있었고 이에 B로부터 방을 옮기라는 지시를 받은 뒤 모텔에서 거주했다. A는 같은해 8월 28일 경기중 경기팀 소속 직원과 분쟁이 있었다. 이 일로 인해 B로부터 질책을 받았고, A는 그날 저녁 캐디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렸으나 곧바로 글이 삭제되고 캐디 인터넷 카페에서도 탈퇴되어 사실상 이 골프장에서 일할 수 없게 되었다. 위 인터넷 카페에는 캐디가 근무하는 데 필요한 자료, 근무수칙, 출근표 등이 게시되므로, 캐디로서는 인터넷 카페에 접속하지 못하면 근무할 수 없다. A는 9월 14일 기숙사에서 자신의 짐을 찾아가면서 B를 만나 사직원을 작성 · 제출했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의 언니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고양지청에 'A가 골프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는 취지로 진정하여 노동청 조사가 개시되었고,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은 A의 언니에게 '이 골프장 소속 B가 A에게 행한 일부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고 사료되나, A는 골프장 캐디로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아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규정을 직접 적용할 수 없고, 다만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건국대 법인에게 해당 사건에 대한 조사와 적절한 조치,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등을 권고하고 재발방지와 피해자 보호 등 예방체계를 구축하도록 시정지시했다'고 회신했다. 또 A의 아버지가 근로복지공단에 A의 사망으로 인한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 근로복지공단 산하 경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정했다.
1심에 이어 항소심 재판부는 B와 건국대 법인의 책임을 50%로 인정하고,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B는 캐디들을 총괄, 관리하는 지위상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A에게 신체적 · 정신적 고통을 주고 근무환경을 악화시켰다고 볼 수 있으므로, B는 민법 제750조에 기한 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건국대 법인에 대해서도, "①피고 법인 소속 경기팀 직원인 B는 경기 진행 중에 무전으로 A에게 모욕적인 발언이나 공개적 질책을 하였으므로 다른 경기팀 직원이나 캐디들도 이를 들어 알 수 있었던 점, ②A는 B로부터 질책을 받고 특히 기숙사에서 퇴실할 무렵에는 동료 캐디들에게 B에 대한 감정이나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였으며 2020. 8. 28.경에는 B에게 항의하는 취지의 인터넷 게시판 글까지 남겼던 점, ③그럼에도 피고 법인은 A를 위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피고 법인 소속 직원은 A가 인터넷 게시판에 쓴 글을 삭제하고 A를 인터넷 카페에서 탈퇴시킨 점 등의 사정이 인정되는 한편, 피고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교육은 A의 사망 이후에야 비로소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인정될 뿐, 그 이전에도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교육이 있었다거나 캐디들을 위한 건의함이 실질적으로 운영되었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한바, 피고 법인이 B의 사무감독에 상당한 주의를 하였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피고 법인은 B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사용자책임을 부담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골프장 캐디는 특수형태근로자로 사업주인 피고(건국대 법인)는 골프장의 경기보조원이었던 A를 보호할 의무가 있었고(산업안전보건법 제5조, 제77조, 같은 법 시행령 제67조 참조) B의 불법행위를 알 수 있었음에도 A가 사망에 이르기까지 A를 위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점, 그러나 한편, 피고의 피용자로서 B가 A에게 경기를 신속히 진행하라는 등으로 지시한 것은 정당한 사무집행의 범주에 해당하거나 골프장 운영행태상 불가피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점, B는 캐디들을 총괄 관리하는 지위에서 A와 기숙사를 함께 이용하던 룸메이트 사이, A와 다른 경기팀 직원 사이에 발생한 분쟁을 조정 · 해결하여야 하는 책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 제반사정을 모두 종합하여 B와 피고의 책임을 50%로 제한했다.
대법원도 "상고인의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은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에 해당하여 이유 없음이 명백하다"며 심리불속행 기각했다.
윤지영, 강은희 변호사가 1심부터 원고들을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