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외국변호사의 기술⑨ 외국변호사의 필살기: 영어 리걸라이팅
[특별연재] 외국변호사의 기술⑨ 외국변호사의 필살기: 영어 리걸라이팅
  • 기사출고 2023.06.02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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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잘 하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의 한국 로펌 진입 주목

2009년 한국에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후 10여 년 동안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다수 배출되면서 한국 로펌 업계의 지형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국제법무를 다루는 한국 로펌의 중요한 한 축을 구성하는 외국변호사들도 이로 인해 미묘한 영향을 받고 있다.

로스쿨 도입 전후로 나뉘어

필자는 1998년 IMF 외환 위기 시절부터 외국변호사로 한국 로펌에서 일하고 있다. 초기 10여 년간은 사법시험 출신 한국변호사들과 같이 일했다. 로스쿨이 도입된 후 2010년대 초부터는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로스쿨 출신 한국변호사들과도 같이 일하고 있다. 25년 넘게, 로스쿨 도입을 기준으로 나뉘는 두 시대를 거치며 외국변호사의 관점에서 로펌 현장의 달라지는 분위기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은정 외국변호사
◇은정 외국변호사

내가 근무하는 법무법인 김장리는 대형 로펌은 아니지만, 한국 최초의 로펌으로서 외국 고객 기반이 탄탄하고, 영어 업무 수요가 끊이지 않아 외국변호사로 활동하기에 적합한 업무환경이다. 필자는 외국변호사 채용 등의 인사 업무에도 깊숙이 관여해 한국 로펌이 필요로 하는 외국변호사 인재상을 잘 이해하고 있다. 비즈니스 소셜미디어인 LinkedIn(#theforeignlawyerinkorea)에서 외국변호사의 로펌 생활 및 커리어에 대해 활발히 글을 쓰면서 알게 된 대형 로펌 소속 어소 한국변호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한국 로펌의 외국변호사가 로스쿨 시대에서도 의미있는 커리어를 만들어 가는 것이 지속가능한지, 그리고 로펌 업계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외국변호사의 가장 중요한 기술, 즉 '필살기'는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 문제는 궁극적으로 "한국 로펌은 왜 외국변호사를 쓰는가?"라는 질문에 귀결된다. 당연히 그 이유는 한국변호사만으로는 취급하기 어려운 국제법무를 원활히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고급 영어구사능력 때문이다.

다른 비영어권 국가에 비해 한국 로펌 업계는 외국변호사의 활용도가 유난히 높다. 외국변호사들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한국 로펌의 국제화와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고급 영어, 특히 숙련된 영어 리걸라이팅(English legal writing)(이하 "리걸라이팅")이 가능한 외국변호사들은 국제법무를 수행하는 한국 로펌의 필수적인 존재로, 협업과 분업을 통해 한국변호사들을 지원하며 한국 로펌의 업무에 폭넓게 관여해왔다.

외국변호사 활용도 높은 한국 로펌

필자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1998년부터 10여 년 정도는 사무실의 외국변호사 의존도가 다방면으로 높은 편이었다. 영어로 수행되는 회의나 컨퍼런스 콜 또는 영어로 작성되는 계약서나 의견서는 물론 소소한 문서나 이메일 작성까지도 상당 부분 외국변호사들에게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외국변호사들의 업무범위가 큰 편이었고, 개인적인 역량에 따라 보조적인 역할을 넘어 훨씬 큰 역할을 수행하는 외국변호사들도 더러 있었다.

그런데 2010년대 이후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한국 로펌에 진출하면서 다양한 학부 전공자들이 유입되고 있고, 이들 중에는 영어에 능통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드물기는 하지만 외국에서 학부과정을 마치고 한국 로스쿨에 진학하는 학생도 꾸준히 늘고 있다. 영어에 능통한 로스쿨 세대 한국변호사들은 한국 로펌에서 그동안 주로 외국변호사들이 처리하던 외국 고객과의 회의나 컨퍼런스 콜 또는 영어 문서나 이메일 작성 등 영어가 필수적인 업무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몇 년 전에 만난 로스쿨 출신 주니어 한국변호사로부터 "저희 펌이 외국변호사가 부족해 저도 '영어 요원'으로 분류돼 영어로 하는 자문 업무에 투입되고 있어요"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대형 로펌에 다니던 이 변호사는 어렸을 때 미국에서 몇 년간 산 적이 있어 영어에 능통했다.

보완관계 vs 대체관계

한국변호사의 한국 법률 업무와는 달리 외국변호사가 수행하는, 지원 성격의 영어 업무는 영어구사 능력 외엔 진입장벽이 없기 때문에 영어에 능통한 한국변호사들은 외국변호사들이 전통적으로 하던 업무를 잠식하면서 한국 로펌에서 외국변호사와 '보완관계'가 아닌 '대체관계'가 될 가능성도 있다. 영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지 못한 외국변호사들은 영어가 능통한 한국변호사들에 의해 역할이 축소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 현상은 로펌 현장에서 벌써 일어나고 있다.

영어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소속 로펌에서 외국 고객에게 보내야 하는 참고용 문서의 번역이나 사건현황 보고메일 작성 등 영문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많이 하느라 한국변호사 본연의 소송이나 자문업무를 충분히 배우지 못하고 있다는 염려를 필자에게 토로하는 한국변호사들도 있다. 이렇게 영어에 능통한 한국변호사들은 과거 외국변호사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영어 업무 영역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외국변호사들이 완전히 대체되기는 어렵다. 예전에 비해 영어를 잘하는 한국변호사들이 많이 늘기는 했지만 영어가 공용어가 아닌 한국에서 그 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한국에서 거의 모든 교육을 받은 한국변호사들의 영어실력이 고도로 숙련된 외국변호사들을 완전히 대체할 만한 수준에 오르기도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 로펌의 외국변호사 수요는 줄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갈수록 정교한 영어 업무가 늘어나고 있어 실력있는 어소급 외국변호사는 품귀 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한국 로펌 업계에서 수요가 굉장히 크다. 여기서 말하는 '실력'이란 주로 외국변호사 본연의 가장 핵심적인 기술인 리걸라이팅 실무 능력을 의미한다.

실력 있는 외국변호사 수요 큰 한국 로펌 업계

웬만한 한국변호사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수준 높은 고급(high-end) 영어 커뮤니케이션 영역, 즉 고급 리걸라이팅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외국변호사는 대체될 가능성이 없고 오히려 그 역할이 점점 커질 것이다.

결국 외국변호사의 필살기는 리걸라이팅이다. 한국 로펌에서 어소급 외국변호사를 채용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기술은 미국법 지식이나 리서치 능력이 아니라 영어로 법률문장을 얼마나 잘 쓸 수 있는지, 즉 리걸라이팅 실력이다. 영어로 사건현황 보고 등에 관한 이메일은 물론 복잡한 의견서나 계약서 등을 자유자재로 작성할 수 있다면 소속 로펌에서 중용될 수밖에 없고, 파트너의 첨삭지도를 많이 필요로 하지 않으면 금상첨화다.

리걸라이팅 실력을 쌓기 위해서는 먼저 학부 시절 일반적인 영어작문 실력(general writing skills)을 키운 후 영미권 로스쿨에서 영어 법률문장 작성의 기초를 쌓아야 한다. 일반적인 영어작문 실력이 약하면 나중에 영어 법률문장 실력이 느는 데 한계가 있어 막상 한국 로펌에서 실무를 수행할 때 외국변호사 커리어가 제대로 꽃피지 못할 수도 있다.

로스쿨 시대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한국 로펌의 외국변호사들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간단한 커뮤니케이션이나 소소한 번역 등의 부수적인 영어 업무만 주로 하는 커리어라면 별 매력이 없다. 한국 로펌의 외국변호사는 필살기인 날이 선 리걸라이팅으로 하이엔드 영역에서 진검승부를 하면서 커리어를 펼쳐 나가야 한다.

은정 외국변호사(법무법인 김장리, jun@kimchangl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