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소유한 밭에 무단으로 건물을 신축했더라도 재물손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1월 30일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2022도1410)에서 이같이 판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건물을 신축한 행위가 토지의 효용을 해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A씨는 경기 파주시에 있는 다른 사람 소유의 밭 2,343㎡ 중 일부에 건물을 지었다가 토지 소유자들로부터 건물을 철거하고 토지를 인도하라는 민사소송을 제기당해 패소 판결이 확정되었다. A씨는 강제집행을 당해 건물이 철거되자 2020년 4월 초순경 그 자리에 무단으로 새 건물을 다시 신축했다. 이 토지는 20여명이 공유하고 있었는데, A씨는 지분이 없고 A씨의 사실혼 배우자만 토지 중 2/54 지분을 취득했을 뿐, 다른 공유자는 A씨의 건물 신축에 동의하지 않았다. 검사는 A씨의 건물 무단 신축을 부지의 효용을 해한 것으로 보고 재물손괴 혐의로 A씨를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해 A씨에게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뒤집어 무죄로 판결했다. A씨가 건물을 신축한 행위가 토지의 효용을 해한 것으로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본인이 한 행위에 대해 민사적인 책임을 지면 된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항소심의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재물손괴죄(형법 제366조)는 다른 사람의 재물을 손괴 또는 은닉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한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로, 행위자에게 다른 사람의 재물을 자기 소유물처럼 그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용 · 처분할 의사(불법영득의사)가 없다는 점에서 절도, 강도, 사기, 공갈, 횡령 등 영득죄와 구별된다"고 전제하고,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본래의 용법에 따라 무단으로 사용 · 수익하는 행위는 소유자를 배제한 채 물건의 이용가치를 영득하는 것이고, 그 때문에 소유자가 물건의 효용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더라도 효용 자체가 침해된 것이 아니므로 재물손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의 행위는 이미 대지화된 토지에 건물을 새로 지어 부지로서 사용 · 수익함으로써 그 소유자로 하여금 (토지의) 효용을 누리지 못하게 한 것일 뿐 토지의 효용을 해하지 않았으므로, 재물손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재물손괴죄의 구성요건인 재물의 효용 침해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대상 재물이 토지인 경우 (토지의 객관적 가치나 효용을 저하시킨 것이 아닌) 토지소유자에 대한 이용방해 행위는 재물손괴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선언한 최초의 사례"라고 설명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