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트(전공의)가 장폐색 의심 환자에게 대장 내시경 검사를 위한 장정결제 투여를 처방하면서 부작용 유무를 확인하면서 소량씩 투여하게 하지 않았다가 80대 환자가 숨졌다. 레지던트는 장정결제 투여의 위험성과 부작용에 대해 환자 측에 설명도 하지 않았다. 이 경우 레지던트를 지도 · 감독하는 주치의인 대학병원 교수도 책임이 있을까.
대법원 제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12월 1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대학병원 임상조교수 A씨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금고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2022도1499). 같은 혐의로 함께 기소된 레지던트 B씨는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C(82)씨는 뇌경색 등을 이유로 이 대학병원 신경과 진료를 받던 중 2016년 6월 24일 복부 X-ray와 CT 촬영 등을 통해 '회맹판을 침범한 상행 대장 종양', '마비성 장폐색(腸閉塞), 회맹장판 폐색에 의한 소장 확장'이 의심된다는 내용의 영상판독 소견을 받게 되자 대장암 치료 등을 위해 다음날인 6월 25일 토요일 소화기내과 위장관 파트로 전과되었고, 이에 따라 A씨가 C씨에 대한 주치의로 지정되었다. 레지던트인 B씨는 A씨의 지도 · 감독하에 C씨의 진료를 함께 담당하게 되었다. B씨는 C씨가 소화기내과로 전과된 당일 09:00경, A씨는 12:00경 회진 과정에서 C씨의 가족들에게 "대장암이 있는지 여부는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해 봐야 정확히 알 수 있는데, 대장 내시경 검사는 쉬운 검사가 아니고, C씨가 고령인 데다 현재 뇌경색 증상이 있으며 혈액 응고방지제인 아스피린 등을 복용하고 있으므로, 약을 끊고 기력이 회복되는지 등을 보아가며 결정하겠다. 어디까지 치료를 받을 것인지 가족들이 상의해서 일요일까지 알려 달라"는 취지로 말했다.
그런데 B씨는 6월 26일 일요일 09:00경 진찰을 하면서, 전날과 마찬가지로 C씨에게 복부 팽만이나 압통이 없으며 배변이 되고 있다는 이유로 다음날인 월요일에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한 후, 당시 집에 있던 A씨에게 전화로 위 사실과 C씨와 가족들의 동의도 받았다고 보고했고, 이에 A씨는 C씨에 대한 대장 내시경 검사와 장정결제(腸淨潔劑)인 쿨프렙(coolprep) 투여를 승인했다. 그러나 당시 B씨는 C씨와 그 가족들에게 "대장 내시경 검사가 아니라 간단한 생체조직 검사를 실시한다"는 취지의 말만 했을 뿐 월요일 오전에 대장 내시경 검사를 실시한다는 사실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이후 B씨는 '2016. 6. 26.(일) 저녁 C씨에게 쿨프렙 2L를 30분 간격으로 4회에 나누어 투여하고, 다시 다음 날 05:00경 같은 요령으로 2L를 추가 투여하되, 쿨프렙 복용 시 환자를 반드시 앉혀서 aspiration(사레 걸림) 되지 않도록 하라'는 내용의 처방(오더)을 한 후 11:00경 퇴근했다. B씨의 처방에 따라 위 병원 간호사 등이 6월 26일 20:00경부터 약 3시간에 걸쳐 C씨에게 장정결제를 투여했다. 그러나 C씨는 장정결제 투여로 인한 가스와 장내 분변 등이 제대로 체외로 배출되지 못한 채 대장 내 팽압 증가로 장벽이 엷어지면서 6월 27일 01:00경 이후 장천공이 발생, 장내 분변 등이 복강 내로 유출되었고, 이에 따라 호흡곤란, 혈액 내 산소포화도 감소 등의 부작용이 발생해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사망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A, B씨에게 모두 업무상 과실치사 유죄를 인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 B씨가 C씨와 가족들에게 장정결제 투여의 위험성과 부작용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과실과 장정결제 투여 과정에서 환자의 상태를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과실 등을 인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장폐색이 의심되는 환자에게 대장 내시경을 시행하는 경우 1L 정도 소량씩 장정결제를 투여하여, 부작용의 유무를 조심스럽게 확인한 후 만일 폐색이 더 진행되거나 흡인성 폐렴 등이 의심되면 이를 중단하고 더 이상의 장정결제를 투여하지 말아야 함에도, 피고인들은 적어도 부분 장폐색 상태일 가능성이 높은 피해자에 대한 쿨프렙 투여 과정에서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업무상 과실이 있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또 "피고인들이 피해자나 그 가족들에게 위와 같은 피해자의 상태와 이에 따른 쿨프렙 투여의 위험성 및 부작용을 설명하였더라면, 피해자나 그 가족들은 쿨프렙 투여 자체를 거부하거나, 통상적인 방법에 의한 투여 방법 대신 부분 장폐색 환자에게 적절한 보다 더 조심스러운 방법으로 피해자에게 쿨프렙을 투여하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는 결과를 막을 수 있었다고 보인다"며 "피고인들은 설명의무를 위반하였고, 이러한 설명의무 위반과 피해자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그러나 A씨에겐 C씨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종전의 대법원 판결(2005도9229)을 인용, "수련병원의 전문의와 전공의 등의 관계처럼 의료기관 내의 직책상 주된 의사의 지위에서 지휘 · 감독 관계에 있는 다른 의사에게 특정 의료행위를 위임하는 수직적 분업의 경우에는, 그 다른 의사에게 전적으로 위임된 것이 아닌 이상 주된 의사는 자신이 주로 담당하는 환자에 대하여 다른 의사가 하는 의료행위의 내용이 적절한 것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감독하여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고, 만약 의사가 이와 같은 업무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환자에게 위해가 발생하였다면 주된 의사는 그에 대한 과실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전제하고, "이때 그 의료행위가 지휘 · 감독 관계에 있는 다른 의사에게 전적으로 위임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는 위임받은 의사의 자격 내지 자질과 평소 수행한 업무, 위임의 경위 및 당시 상황, 그 의료행위가 전문적인 의료영역 및 해당 의료기관의 의료 시스템 내에서 위임 하에 이루어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고 실제로도 그와 같이 이루어져 왔는지 여부 등 여러 사정에 비추어 해당 의료행위가 위임을 통해 분담 가능한 내용의 것이고 실제로도 그에 관한 위임이 있었다면, 그 위임 당시 구체적인 상황 하에서 위임의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사정이 존재하고 이를 인식하였거나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볼 만한 다른 사정에 대한 증명이 없는 한, 위임한 의사는 위임받은 의사의 과실로 환자에게 발생한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의료행위에 앞서 환자에게 그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여야 하는 주체는 원칙적으로 주된 지위에서 진료하는 의사라 할 것이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다른 의사를 통한 설명으로도 충분하다(99다10479 판결 참조)"며 "따라서 이러한 경우 다른 의사에게 의료행위와 함께 그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한 설명까지 위임한 주된 지위의 의사의 주의의무 위반에 따른 책임을 인정하려면, 그 위임사실에도 불구하고 위임하는 의사와 위임받는 의사의 관계 및 지위, 위임하는 의료행위의 성격과 그 당시의 환자 상태 및 그에 대한 각자의 인식 내용, 위임받은 의사가 그 의료행위 수행에 필요한 경험과 능력을 보유하였는지 여부 등에 비추어 위임의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에 해당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피고인 A가 직접 관여한 부분은 피해자의 상태에 대한 진단 및 대장 내시경 검사의 필요성 여부 판단과 그 시행 여부 결정 부분에 한정되고, 그 판단 및 결정에 따른 구체적인 준비절차로서 장정결제 투여 조치와 그에 관한 설명은 대장 내시경 시행을 맡은 피고인 B에게 위임하였을 뿐 이에 직접 관여한 적은 없고, 나아가 원심의 사실인정과 같이 피고인 B의 피해자측에 대한 설명 중 기망적인 요소가 일부 포함되었다는 부분에도 피고인 A가 관여한 부분이 없음은 마찬가지"라고 지적하고, "피고인 A가 피해자에 대한 장정결 시행 등의 의료적 처치를 피고인 B에게 위임 · 분담하는 것이 특별히 불합리하다고 볼 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그렇다면 B가 분담한 의료행위에 관하여 A에게도 주의의무 위반에 따른 책임을 인정하려면, 원심으로서는 부분 장폐색 환자에 대한 장정결 시행의 빈도와 처방 내용의 의학적 난이도, B가 내과 2년차 전공의임에도 소화기내과 위장관 부분 업무를 담당한 경험이 미흡하였거나 기존 경력에 비추어 보아 적절한 업무수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여부 등을 구체적으로 심리하여 B에게 장정결 처방 및 그에 관한 설명을 위임한 것이 합리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 있었는지를 판단하였어야 한다"며 "그럼에도 원심은 A가 B를 지휘 · 감독하는 지위에 있다는 사정만으로 직접 수행하지 않은 장정결제 처방과 장정결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에 관한 설명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고 단정하고 말았으니, 거기에는 의사의 의료행위 분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제대로 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이 피고인들을 변호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