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도시개발조합장이 체비지대장 명의 임의로 말소했어도 배임 무죄"
[형사] "도시개발조합장이 체비지대장 명의 임의로 말소했어도 배임 무죄"
  • 기사출고 2022.11.1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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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체비지 양수인 권리는 채권적 청구권"

도시개발조합장이 환지처분 전 체비지를 양도하고 그 양수인은 다시 피해자에게 매도하여 피해자가 체비지대장에 최종 취득자로 등재된 상태에서, 체비지대장에 등재된 소유권 취득자의 명의를 임의로 말소했더라도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체비지는 도시개발 사업비를 충당하기 위해 사업시행자가 취득해 처분하거나 매각할 수 있는 토지를 말한다.

A씨가 조합장으로 있는 B도시개발조합은 2006년 9월 C사와 포항시 북구 흥해읍 성곡리 도시개발사업에 대한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2012년 8월과 2014년 2월 C사, D사와 위 개발사업에 대한 도급변경계약을 체결했다. 위 도급계약에 의하면, B조합이 D사에 체비지를 기성금으로 지급해야 해, D사는 2013년 8월 체비지인 위 개발사업 12블럭 1롯트(312.5㎡)를 기성금 명목으로 지급받고 체비지대장에 소유권 취득자로 등재되었다. E씨는 D사로부터 위 체비지를 3억 5,000만원에 매수해 체비지대장에 소유권 취득자로 등재되었다.

A씨는 그러나 D, C사에 과도하게 지급된 공사비의 반환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하면서 승소할 경우 채권을 확보하기 위해 2015년 5월 27일경 E씨의 동의 없이 위 개발사업 12블럭 1롯트 체비지대장에 소유권 취득자로 등재된 D사와 E씨의 명의를 각 말소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조합장인 A씨에겐 기성금으로 지급된 체비지에 대해 소유권 취득자로 기재된 명의자의 권리를 보호 · 관리할 임무가 있음에도 이를 위배했다"며 배임 혐의로 A씨를 기소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가 모두 배임 유죄를 인정해 A씨에게 벌금 150만원의 선고유예를 선고하자 A씨가 상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체비지 양수인 또는 전매수인은 체비지에 대한 물권적 사용수익권을 취득하고 체비지대장에의 등재는 이에 대한 공시방법이 된다"며 "피해자의 체비지대장의 기재가 말소되었다면 재산상 실해 발생의 위험은 이미 야기되었다"고 밝혔다.

대법원 제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그러나 10월 14일 "현행 도시개발법 시행 이후의 체비지 양수인의 법적 지위는, 물권 유사의 권리자가 아니라 매매 등 계약에 기한 채권적 청구권자에 불과하고 체비지대장에의 등재 역시 물권 유사 권리의 공시방법이라고 볼 수도 없으므로, 피고인을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체비지 대장 말소로 인해 피해자에게 손해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2018도13604). 권영준 변호사가 A씨를 변호했다.

대법원은 "구 토지구획정리사업법이 폐지되고 2000. 1. 28. 법률 제6242호로 도시개발법이 제정되어 2000. 7. 1.부터 시행되었는바, 현행 도시개발법은 체비지의 소유권 취득에 관하여 제42조 제5항에서 '제34조에 따른 체비지는 시행자가, 보류지는 환지 계획에서 정한 자가 각각 환지처분이 공고된 날의 다음 날에 해당 소유권을 취득한다. 다만, 제36조 제4항에 따라 이미 처분된 체비지는 그 체비지를 매입한 자가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친 때에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규정함으로써 구 토지구획정리사업법 제62조 제6항의 규정과 달리 도시개발사업의 시행자로부터 환지처분 이전에 체비지로 지정된 토지를 매수한 자는 환지처분의 공고가 있은 후 그 토지에 관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경우에 소유권을 취득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며 "따라서 도시개발법에 따라 이루어진 도시개발사업의 시행자는 체비지로 지정된 토지에 관하여 환지처분 공고 다음 날에 소유권을 원시적으로 취득하게 되나, 당해 체비지를 매수한 자는 토지를 점유하거나 체비지대장에 등재되었다고 하더라도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때에 비로소 소유권을 취득하게 된다(2016다233729 판결 참조)"고 밝혔다. 대법원은 "따라서 환지처분 전 시행자로부터 체비지를 매수한 자 또는 그 전매수인이 자신의 매도인에 대하여 가지는 체비지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 등의 권리는 모두 매매계약에 기한 채권적 청구권으로서, 이를 행사하기 위하여 체비지대장에의 등재와 같은 공시방법이 별도로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 사건 조합이 시행한 도시개발사업은 도시개발법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므로, 체비지대장에의 등재가 환지처분 전 체비지 양수인이 취득하는 채권적 청구권의 공시방법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하고, "따라서 원심이, 체비지대장에의 등재는 환지처분 전 체비지 양수인이 취득하는 물권 유사 권리의 공시방법에 해당한다는 전제에서 피고인을 체비지 전매수인인 피해자(E)와의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인정하고, 피고인이 체비지대장상 취득자 란의 피해자 명의를 말소한 행위만으로 피해자의 재산상 실해 발생의 위험이 야기되었다고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도시개발법에 따라 이루어진 도시개발사업에서 체비지 전매수인인 피해자는 자신에게 체비지를 매도한 D에 대하여 매매계약에 따른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 등 채권적 청구권을 가질 뿐, 조합과 사이에서 직접적인 권리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하고, "결국 피해자가 매매계약에 따라 취득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체비지대장의 기재여부와는 무관하므로, 체비지대장상 취득자 란의 피해자 명의가 말소되었더라도 피해자의 D에 대한 권리가 침해되거나 재산상 실해 발생의 위험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D가 조합에 대하여 체비지 양도계약에 따른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 등 채권적 청구권을 행사하는 것 역시 체비지대장의 기재여부와 무관하다는 점에서 그 명의의 말소 사실이 법률상 특별한 의미나 효과를 가진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그런데도 피고인의 행위가 배임죄를 구성한다고 보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배임죄에서의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 재산상 손해의 발생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구 토지구획정리사업법에 따라 체비지대장에 등재된 체비지 양수인의 법적 지위와 달리, 현행 도시개발법에 따라 체비지대장에 등재된 체비지 양수인의 법적 지위는 물권 유사의 권리자가 아니라 매매 등 계약에 기한 채권적 청구권자에 불과하고, 따라서 조합장의 체비지대장 관리사무가 타인의 사무처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선언한 최초의 판결"이라고 말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