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제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3월 17일 중앙보훈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다가 뒤로 넘어진 후 뇌출혈로 사망한 A씨의 부인과 자녀 2명이 의료과실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중앙보훈병원을 운영하는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8다263434)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병원 측에 배상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A는 2014년 11월 11일 중앙보훈병원 신경과를 방문해 뇌혈관 질환, 경동맥 협착, 만성음주로 인한 인지기능저하 등의 진단을 받고 12:27쯤 흉부 엑스레이 검사를 받던 도중 식은땀을 흘리며 갑자기 뒤로 넘어졌다. A는 그 직후 응급실로 돌아왔다가 뇌 MRI 검사를 위해 영상검사실로 이동했으나, A가 소리를 지르거나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해 검사를 시행하지 못한 채 응급실로 돌아왔다. A는 16:14 응급실에서 입원을 기다리던 도중 약 10초 동안 양쪽 팔다리에서 경련 증상이 나타났고, 병원 의료진은 알코올 중단에 따른 금단성 경련으로만 파악해 A에게 항경련제를 투약했다. 의료진은 다음날인 11월 12일 07:47 뇌 CT 검사를 했다. 검사결과 외상성 뇌내출혈, 양쪽 전두엽과 측두엽의 급성 뇌출혈과 뇌부종, 경막하출혈 등이 발견되었고, 의료진은 개두술과 뇌내 혈종제거술을 시행하여 오른쪽 전두엽의 뇌내출혈, 왼쪽 측두엽의 혈종 등을 제거했다. 그러나 A가 약 보름 뒤인 11월 28일 외상성 뇌출혈과 뇌부종으로 인한 연수마비로 사망하자 원고들이 소송을 냈다.
원고들은 "엑스레이 검사 당시 쓰러져 머리를 바닥에 부딪힘으로써 두개골 및 안면에 골절상을 입었는바, 뇌경색 등 과거 병력에 비추어 뇌출혈 및 뇌부종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는데도 피고 병원 의료진은 A의 병명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의료상 과실로 외상성 뇌출혈 및 뇌부종을 조기에 진단하거나 적절한 시기에 치료하지 못함으로써 A를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먼저 "여러 명의 의사가 분업이나 협업을 통하여 의료행위를 담당하는 경우 먼저 환자를 담당했던 의사는 이후 환자를 담당할 의사에게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려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특히 환자가 병원에서 검사나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넘어지는 등의 사고가 발생하였다면 담당 의사는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여 환자의 건강 유지와 치료를 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담당 의사가 바뀌는 경우 나중에 담당할 의사에게 이러한 사정을 알려 지속적으로 환자의 상태를 살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A 머리의 부종은 흉부 엑스레이 검사 도중 뒤로 넘어지는 사고로 A의 머리가 바닥이나 기계 등의 물체에 부딪치면서 발생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A는 이 사고 이전에는 뇌출혈의 발생이 예상되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고, 사고가 발생하고 4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양쪽 팔다리에 경련 증상이 나타났는데, 통상적인 의료수준에 비추어 피고 병원 의료진으로서는 이 사고로 발생한 뇌출혈이 위와 같은 경련 증상의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정이 이러하다면 피고 병원 의료진으로서는 이 사고로 A에게 뇌출혈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예상하여 A의 사고 부위를 자세히 살피고 A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적절한 조치를 해야 했다"며 "특히 사고를 발견한 의료진은 이러한 사실을 담당 의사에게 알려 적절한 조치를 하도록 해야 하고 환자의 담당 의사가 바뀌는 경우 이전의 담당 의사는 이후의 담당 의사에게 사고 사실을 전달하여 A에 대한 관찰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여 사고가 발생하고 4시간 정도 지나서 A에게 경련 증상이 나타났을 때에는 사고로 뇌출혈 등이 발생하였을 가능성을 예상하고 곧바로 뇌 CT 검사 등의 조치를 해야 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그러나 "피고 병원 의료진이 사고 발생 이후 A에게 뇌출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식하고 그에 필요한 조치를 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피고 병원 의료진은 사고가 발생하고 약 19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A에 대한 뇌 CT 검사를 시행하여 뇌출혈과 뇌부종을 발견하였고 수술을 시행한 것"이라며 "만일 피고 병원 의료진이 사고 이후 A의 사고 부위를 지속적으로 살피면서 A에게 경련 증상이 나타났을 때 곧바로 뇌 CT 검사를 시행하였다면 뇌출혈 또는 뇌부종을 보다 일찍 발견하고 적절한 조치를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피고 병원 의료진에게는 사고 후 A에게 나타나는 증상을 살펴 위험을 방지할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원심은 이 사건 사고가 A의 뇌출혈이나 뇌부종을 발생하게 하였고 이로써 A가 사망에 이르게 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피고 병원 의료진이 위와 같은 주의의무를 다하였는지 심리하고 판단해야 했다"며 "그런데도 원심은 이 사고로 A에게 머리 외상이 발생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또한 당시 A의 상태가 머리 손상이 의심되는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조기에 뇌 CT 검사 등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원심에는 의료행위에 요구되는 주의의무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1심에 이어 이 사건의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재판부는 "피고 병원 의료진이 A에 대한 뇌출혈과 뇌부종 진단에 필요한 주의의무나 이에 대한 치료와 경과관찰 의무를 게을리 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나아가 피고 병원 의료진이 A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여 높은 수준의 주의의무를 부담한다거나 이 사건 수술(개두술과 뇌내 혈종제거술)의 필요성과 후유증 등에 관한 설명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도 없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