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매수인이 잔금을 내지 않아 매매계약이 해제됐음에도 토지에 대한 처분금지 가처분을 신청해 소유자인 매도인의 토지 처분을 지연시켰다면 그에 따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용도지역이 계획관리지역인 평택시에 있는 밭 4,744㎡와 임야 787㎡를 나누어 소유하고 있던 A씨 등 5명은, 이 토지에 공장을 짓겠다는 B사와 2017년 9월 총 매매대금을 15억원으로 하는 매매계약을 체결했으나, B사가 계약금과 일부 잔금을 합한 7억 1,000여만원만 지급하고 잔금지급 기일이 지날 때까지 나머지 잔금을 지급하지 아니하자 2018년 1월 12일 계약을 해제하고 계약금 1억 5,0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5억 6,000여만원을 반환했다.
B사는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2018년 1월 19일 공장 부지로 사용할 목적으로 평택시에 있는 다른 공장용지 6,285㎡을 매수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또 A씨 등의 토지에 공장을 건축하기 위한 개발행위허가 신청을 취하했다. 이어 A씨 등을 상대로 매매계약 해제가 무효라고 주장하며 이 토지에 관한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을 신청해 인용 결정을 받고 2018년 2월 8일 가처분 기입등기를 마쳤다.
B사는 또 매매계약 해제가 무효라고 주장하며 소유권이전등기청구소송을 제기하고 다시 계약금 1억 5,000만원을 반환하라며 청구취지를 변경했으나, 2019년 7월 3일 본안소송 1심에서 패소했고, 가처분 기입등기는 2019년 8월 1일 집행해제 되었다. 본안소송은 이후 B사의 패소가 확정됐다. 이에 A씨 등이 "B사의 가처분은 피보전권리 없이 행하여진 위법행위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며 "가처분 기입등기가 마쳐진 때부터 집행해제 된 때까지 토지 처분 지연에 따른 손해 등을 배상하라"며 B사를 상대로 소송(2020가단5068338)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노미정 판사는 7월 16일 "피고는 원고들에게 가처분이 계속된 2018. 2. 8.부터 2019. 8. 1.까지 토지 처분대금에 대한 법정이자 연 5% 상당의 이자에서 원고들이 처분지연 기간 동안 토지의 점용수익으로 얻었다고 자인하고 있는 100만원을 제외한 2,4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노 판사는 "가압류나 가처분 등 보전처분은 법원의 재판에 의하여 집행되는 것이기는 하나 그 실체상 청구권이 있는지 여부는 본안소송에 맡기고 단지 소명에 의하여 채권자의 책임 아래 하는 것이므로, 그 집행 후 집행채권자가 본안소송에서 패소 확정되었다면 그 보전처분의 집행으로 인하여 채무자가 입은 손해에 대하여는 특별한 반증이 없는 한 집행채권자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있다고 추정되고, 따라서 그 부당한 집행으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전제하고, "다만, 특별한 반증이 있는 경우에는 위와 같은 고의 · 과실의 추정이 번복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는 본안소송에서 패소하였으므로 가처분 집행으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손해에 대하여 피고의 고의, 과실이 추정되는바, 피고는 부당한 가처분 집행으로 인해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하고, 가처분이 계속된 2018. 2. 8.부터 2019. 8. 1.까지 토지 처분대금에 대한 법정이자 연 5% 상당의 이자를 원고들이 입은 손해로 보았다.
노 판사는 "매매계약 체결의 경위와 피고가 잔금 지급의무를 끝내 이행하지 아니한 사정, 피고는 가처분 신청 전에 토지에 관한 개발행위허가 신청을 취하하고, 공장 부지로 사용할 다른 토지에 관한 매매계약 체결까지 마친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위에서 본 과실 추정을 번복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또 "원고들은 가처분 직전 공인중개사와 전속중개계약을 체결하고, 이 사건 토지를 매도하려고 한 사실, 그러던 중 가처분이 집행된 사실, 가처분 등기로 인하여 전속중개계약 체결에도 이르지 못한 사실, 원고들이 가처분이 계속되는 동안 토지를 매도하지 못한 사실이 인정되고, 피고가 다른 사정으로 인하여 토지에 대한 처분이 지연되었다는 사정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가처분 집행과 토지에 대한 처분 지연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