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3일, 중국의 한 기업이 애플을 상대로 중국 상하이시 고급인민법원(우리나라의 고등법원에 해당)에 무려 100억 위안(약 1조 7천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특허(중국 용어로는 발명전리 · 發明專利이나, 본 기고문에서는 편의상 "특허"로 지칭)침해소송을 제기하여 화제가 되었다. 이 사건의 사회적 배경 내지 함의와는 별개로, 계쟁 특허의 무효 여부에 대해서는 8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친 치열한 법리 다툼이 있었다. 2심에서 종결 및 확정되는 통상의 중국 소송 사건과 달리, 본 사건은 재심에 이르러 최고인민법원의 판단까지 받았으며, 그 단초가 된 무효심판 사건과 행정소송 중 2심 사건은 각각 '2013년 특허 복심 무효 10대 사례'와 '2015년 북경 법원 지식재산권 10대 사례'로 선정되기도 한 바 있어, 중국의 무효심판 및 소송 시스템의 면모를 가늠하고자 본 사건의 이력 및 쟁점을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샤오아이 로봇 vs 애플
중국의 인공지능 업체인 샤오아이 로봇(Xiao-i Robot, 小i機器人)은 "채팅 로봇 시스템"에 관한 중국 특허 제ZL200410053749.9호(2009년 7월 22일 등록. 이하 "본건 특허")의 특허권자인데, "상하이 즈전 네트워크 테크놀로지(上海智臻智能網絡科技公司)"에서 출시한 음성인식 서비스에 대해 라이선스도 제공하고 있었다. 한편 애플은 2010년 Siri Inc.를 인수한 후 2011년부터 동명의 음성인식 서비스인 Siri를 iPhone, iPad, Mac 등에 탑재하여 판매했다. 2012년 6월, 샤오아이 로봇은 애플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등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하였고, 이에 대해 애플이 곧바로 무효심판을 청구하면서 공방이 시작되었다.
무효심판 및 행정소송 1심: 특허 유효
전리복심위원회(우리나라의 특허심판원에 해당)는 본건 특허 명세서가 발명을 충분히 공개하였는지, 특허청구범위가 명세서에 의해 뒷받침되는지, 특허의 보호범위가 명확한지, 신규성과 진보성에 흠결이 없는지 여부에 대해 심리한 결과, 2013년 9월 본건 특허가 유효하다는 취지의 결정을 하였다. 특히 쟁점이 된 '발명의 충분한 공개'와 관련하여, "통상의 기술자는 당해 기술분야에서 일반적인 기술을 토대로 본건 특허 명세서의 채팅 로봇 시스템을 게임 서버를 이용하여 인터액티브 게임 형태로 구현할 수 있으므로 본건 특허 명세서에는 발명이 충분히 공개되어 있다"고 판단했다. 애플은 이에 불복하여 북경시 제1 중급인민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2014년 7월 원결정이 유지되었고, 애플은 북경시 고급인민법원에 항소했다.
행정소송 2심 판결: 특허 무효
2015년 4월, 북경시 고급인민법원은 1심 판결과 입장을 달리하여 본건 특허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주목할 만한 것은, 2심 판결이 '발명의 충분한 공개' 여부에 대한 판단기준으로 "명세서에는 발명을 실현하는 적어도 하나의 방식이 상세하게 공개되어야 하고, 발명을 실현함에 있어서 필수적인 기술의 내용이 완전히 공개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기준은 중국의 전리심사지침(중국의 심사 및 무효심판 기준 등 행정적 사항을 규율)에서 규정한 "통상의 기술자가 명세서에 기재한 내용에 따라 보호받고자 하는 발명의 기술적 방안을 도출할 수 있고, 기술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예상할 수 있는 기술적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는 세 가지 요건에 추가되는 것으로서 이전 실무에 비해 더 구체적인 발명의 공개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2심 판결은 '공개 불충분'과 '기재불비'를 이유로 본건 특허를 무효로 판단했는데, 이는 중국에서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판결로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아울러 중국의 소송 사건은 통상 2심에서 종료되는 것에 비추어, 애플은 방어에 성공한 듯 보였다.
최고인민법원 최종판결: 특허 유효
그러나 샤오아이 로봇은 2015년 6월 재심을 청구하였고, 최고인민법원은 2020년 6월 28일 "특허 유효"라는 최종판결을 내면서 2심 판결을 뒤집었다. 이 판결에서, 최고인민법원은 '발명의 충분한 공개 여부'에 대한 판단기준을 새롭게 제시하였는데, 요컨대 발명이 충분히 공개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문제가 되는 기술이 선행기술에도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선행기술과 구별되는 것인지를 먼저 살펴보고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만약 선행기술에도 존재하는 것이라면 명세서에 대한 공개 요건을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적용하고 선행기술과 구별되는 것이라면 공개 요건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특히 후자의 경우에는, 그 공개가 "기술적 방안을 실현할 수 있고, 기술적 과제를 해결하며, 예상한 기술적 효과를 일으킬 수 있을 정도"라는 전리심사지침의 세 가지 요건을 동시에 만족해야 발명을 충분히 공개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최고인민법원은 이러한 기준에 의거하여, 본건 특허 청구항1의 '게임 서버'가 선행기술에도 존재한다는 점을 본건 특허의 심사 이력, 즉 심사관이 심사과정에서 제시한 선행기술 문헌을 토대로 인정하고, 나아가 그와 같이 선행기술에 기재된 구성에 대해서는 전리심사지침의 세 가지 요건을 적용할 것 없이 '발명의 충분한 공개'가 이루어졌다고 판단하였다.
최고인민법원은 그 밖에도, 발명의 충분한 공개가 문제되는 경우 해당 기술이 선행기술과 구별되는지 여부는 객관적으로 판단되어야 하고, 출원인 또는 특허권자의 진술이나 자백에 기대어서는 안 된다고 판시하면서, 본건의 특허권자가 심사과정에서 '게임 서버'가 선행기술과 구별되는 기술적 특징이라고 주장한 것을 받아들인 2심의 판단을 배척하였다.
"출원인 편익 향상에 기여"
최고인민법원의 판결은 '발명의 충분한 공개' 여부에 대한 구체적 판단기준을 제공한 것으로, "공개의 대가로서의 보호"라는 중국 전리법의 대원칙에 부합하면서도 전리심사기준과의 통일성 및 일관성을 유지한 해석인 동시에, 명세서 작성 실무에 있어서도 기술에 대한 설명 부담을 경감하여 출원인의 편익 향상에도 기여할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실시 가능 요건'이라 하여 발명을 "그 발명이 속하는 기술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그 발명을 쉽게 실시할 수 있도록 명확하고 상세하게 적을 것"이 요구되는데(특허법 제42조 제3항 제1호), 실시 가능 요건이 문제되는 경우, 출원인이나 특허권자는 문제되는 발명의 구성이 당해 기술분야의 기술 상식이나 주지관용기술에 해당하여 구체적 기재를 생략할 수 있다는 반론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최고인민법원의 판결은 문제되는 발명의 구성이 다른 선행기술문헌에 기재되어 있다면 느슨한 요건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 경우 문제되는 기술이 일반적 기술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보이므로 우리나라에 비해 완화된 요건이라는 평가도 가능해 보인다.
한편 이 사건의 특허권자는 특허 유효의 최종판결 후 새로이 제기한 특허침해의 소에서, Siri가 샤오아이 로봇의 보호범위에 속한다는 사법감정(司法鑑定) 결과를 증거로서 제출하였다. 첫 제소로부터 8년여가 흘렀음에도 오히려 사회적 배경과 맞물려 사안의 중량감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본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박영훈 변리사 · 강혜련 중국변리사(김앤장 법률사무소, younghoon.park@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