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칼럼] 차이니즈 월 규제의 개편
[리걸타임즈 칼럼] 차이니즈 월 규제의 개편
  • 기사출고 2019.07.0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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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희석 변호사]

2006년 금융변호사로서 처음 로펌 생활을 시작했던 필자에게 가장 먼저 불어닥친 시련은 다름 아닌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의 시행이었다. 민법이니 상법이니 하는 기본법을 겨우 이해하고 있던 햇병아리 변호사에게 「증권거래법」이나 「간접투자자산 운용업법」 같은 금융 관련 법률을 해석하는 것은 그야말로 '암호 해독'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법률을 그나마 꾸역꾸역 다루어왔더니, 갑자기 이제는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자본시장 뭐라는 법이 시행된단다. 그것도 기존에 있던 법률을 조금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금융업(엄밀하게 말하면 은행업, 보험업, 기타 일부 금융업은 제외되지만)과 관련되는 모든 법률을 통합하고 재분류해서 완전히 새로운 법률이 시행되는 것이었다. 요즘에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을 줄여서 그냥 '자본시장법'이라고 부르지만, 당시에는 위와 같은 점을 감안해서 자본시장법을 '자본시장 통합법'이라고 불렀다.

◇채희석 변호사
◇채희석 변호사

자본시장법 시행 이전에는 금융 관련 법률이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도입되다 보니 상당히 중구난방인 상태였고, 그러다보니 사실상 동일한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업무를 영위하는 금융기관의 근거법에 따라 규제가 달라지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동일한 업무에 동일한 규제 적용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기존에 증권업, 선물업, 자산운용업, 신탁업 등 복잡하고 다양하게 나뉘어 있던 금융업을 업무의 내용에 따라 투자매매업, 투자중개업, 집합투자업, 투자자문업, 투자일임업, 신탁업으로 재구분하고, 동일한 업무에 대하여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자는 것이 자본시장법의 기본 취지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하나의 금융기관이 여러 금융업을 겸영할 수 있게 하여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게 하면서, '차이니즈 월(Chinese wall)' 규제를 통하여 금융업 겸영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이해상충 문제를 예방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보면 차이니즈 월 규제는 자본시장법의 핵심인 '금융업 겸영을 통한 시너지 창출'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안전판으로서 매우 중요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지난 5월 금융위원회는 차이니즈 월 규제에 관한 대대적인 개편을 포함하는 「금융투자업 영업행위 규제 개선방안」(이하 “개선방안”)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제도 개편은 금융감독 당국이 그간 중요한 정책적 목표로 밝혀 왔던 '모험자본의 공급기능 강화' 및 '금융투자업의 특화 · 전문화 유도'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고, 금융투자업의 자율성과 유연한 조직 · 인사 운영보장을 통하여 핀테크 등 급변하는 금융투자업 경영의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차이니즈 월 규제 관련 제도 개편은 이른바 '금융기관계 GP', 특히 전문사모집합투자업이나 투자매매업 · 투자중개업과 업무집행사원을 겸업하고 있는 금융기관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 제45조는 '정보교류의 차단'이라는 제목으로 동일한 금융기관내 여러 업무단위 간의 차이니즈 월과 금융기관과 그 계열회사 간의 차이니즈 월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차이니즈 월 설치대상을 '업 단위'로 구분하면서, 교류가 금지되는 대상정보와 인적 · 물리적 교류 차단에 관해서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한 조항을 두고 있다. 이러한 구체적이고 상세한 조항은 규제의 내용을 매우 명확하게 하는 장점이 있으나, 현재와 같이 급변하는 금융환경 하에서 다소 경직적으로 운용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번 개선방안은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차이니즈 월 규제를 유연하고 현실에 맞게 개편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정보 단위' 규제로 전환

차이니즈 월 규제는 대체로 '이해상충 가능성의 차단' 및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금지'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현행 자본시장법은 차이니즈 월 규제를 '업 단위'로 설정하여, '고유재산운용업무 · 투자매매업 · 투자중개업↔집합투자업 · 신탁업', '기업금융업무↔고유재산운용업무 · 금융투자업'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자의 경우 자기재산 운용 업무와 타인재산 운용 업무 간의 이해상충 가능성에 중심이 있고, 후자의 경우 기업금융업무 수행 중 취득하게 되는 미공개 중요정보의 이동을 차단하는데 주된 취지가 있다. 그런데 '업 단위'로 차이니즈 월 규제를 적용하다보니 새로운 상품 및 서비스 제공의 가능성이 애매한 경우가 많고, 그 결과 이러한 상품 · 서비스 제공의 신속한 도입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업 단위' 규제를 '정보 단위' 규제로 전환하고, 정보교류 차단이 필요한 정보를 유형별로 포괄적으로 구분하고 정보의 특성에 맞추어 규제 원칙을 마련한다는 것이 이번 개선방안의 골자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차이니즈 월 규제는 '이해상충 가능성의 차단' 및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금지'를 목적으로 하므로, 정보교류 차단이 필요한 정보를 (i)이해상충 가능성이 있는 정보(즉 고객자산 운용정보)와 (ii)미공개 중요정보로 구분하여 차이니즈 월 규제를 구축하게 된다.

우선 이해상충 가능성이 있는 정보(고객자산 운용정보)는 정보가 상시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관련 정보를 상시적으로 차단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개선방안은 집합투자업 · 신탁업을 수행하는 부서와 다른 금융투자업을 수행하는 조직을 독립된 부서로 구분하고, 집합투자업 · 신탁업 수행 시 발생한 고객재산 매매정보, 운용정보, 소유재산 정보를 타 부서에 제공하는 것을 금지한다.

불필요한 정보교류 차단에 중점

반면 미공개 중요정보는 정보가 상시적으로 발생하지는 않기 때문에, 불필요한 정보교류를 차단하는 절차를 구축하는데 중심이 있다. 이에 따라 금융투자업자는 (i)미공개 중요정보 해당 여부에 대한 판단기준 및 절차, (ii)권한이 없는 자가 미공개 중요정보 생산조직에 상시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안, (iii)미공개 중요정보를 활용한 이익추구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체계 등을 마련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차이니즈 월 규제에 관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규제의 내용이 명확해진 반면, 금융환경 변화에 따른 유연한 대처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번 개선방안에서는 차이니즈 월 규제의 기본원칙과 금융투자업자가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할 의무만 규정하고, 구체적인 차이니즈 월의 내용은 금융투자업자가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는 금융투자협회 등에서 차이니즈 월에 관한 표준 내부통제기준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금융투자업자는 이러한 내부통제기준과 가이드라인에 따라 개별 표준 내부통제기준을 규정하는 형식을 취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따라서 변화하는 차이니즈 월 규제의 구체적인 내용은 금융투자협회 등이 마련할 표준 내부통제기준과 가이드라인을 기다려보아야 한다.

금투협 등에서 가이드라인 마련 예상

위와 같은 사항 외에 이번 개선방안은 금융기관과 그 계열회사 간의 차이니즈 월 역시 앞서 살펴본 내용과 유사하게 조정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 사후제재를 강화하는 내용도 이번 개선방안에 포함되어 있는데, 특히 내부통제기준을 위반한 행위규제 위반(예를 들면 내부통제기준을 위반한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행위 등)에 대한 가중처벌과 과징금 부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융 관련 법률의 강제성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직접적인 재제만큼이나 법률 위반을 통하여 얻은 수익의 박탈이 큰 효과를 가진다는 점에서, 과징금 부과는 유연해진 차이니즈 월 규제의 실효성과 강제력을 보장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PEF의 업무집행사원업무를 기업금융업무로 분류하고 있어서 고유재산운용업무 및 금융투자업과 차이니즈 월을 구축할 의무를 부담한다. 이에 따라 전문사모집합투자업이나 투자매매업 · 투자중개업과 업무집행사원을 겸업하고 있는 금융기관의 경우, 차이니즈 월 규제로 인해 내부적인 시너지를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다. 실제로 PEF 설립에 필요한 출자승인의무(「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제24조에 따른 절차이다)의 면제와 함께 위와 같은 차이니즈 월 규제의 완화는 그간 '금융기관계 GP'의 숙원이기도 했다.

이번 개선방안에 따라 위와 같은 전문사모집합투자업이나 투자매매업 · 투자중개업과 업무집행사원 간의 차이니즈 월 규제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사모펀드 통합 관련 자본시장법 개정안(이에 따라 사모펀드가 종전의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및 경영참여형 사모펀드 체계에서 일반 사모펀드 및 기관전용 사모펀드 체계로 변화된다)에 따라 사모집합투자기구의 재산운용에 관한 규제가 완화되면, 업무차이니즈 월 규제와 관련해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조만간 국회 제출 예정

금융위원회에 의하면, 이번 개선방안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조만간 국회에 제출하고 법안 통과 시 자본시장법 시행령 등 하위규정을 정비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금융투자협회, 금융투자업자 및 연구기관 등으로 구성된 TF도 구성하고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내부통제기준 표준안' 등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번 개선방안은 핀테크 등으로 대표되는 금융분야에서의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큰 틀에서의 정책방향만 발표되어 구체적인 내용을 기다려보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번 개선방안은 금융환경 변화에 따른 유연성 제고라는 점에서 감독당국의 고심과 노력이 돋보인다고 하겠다. 이번 개선방안이 4차 '금융산업' 혁명을 위한 토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채희석 변호사(hschai@jipyong.com, 법무법인 지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