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본토는 물론 글로벌시장에서 뛰어난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는 미국 로펌이지만 한국의 독자들에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로펌이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2013년부터 서울사무소를 운영하며, 소송과 크로스보더 M&A, 자본시장 등의 분야에서 굵직한 사건들을 대리하며 호평을 받고 있는 로펌이다. 2018년 연 매출 기준 미국 로펌 중 14위. 지난해 15억 5000여만 달러, 한국돈 1조 84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 그린버그 트라우리그(Greenberg Traurig)에 관한 설명이다.
연 매출 기준 미국내 14위
2013년 서울사무소가 문을 열 때부터 서울에 상주하며 팀을 이끌고 있는 김창주 서울사무소 대표는 "일만 잘 하면 됐지 홍보가 중요한 건 아니지 않느냐"는 말로 그동안 GT가 견지해온 로키(low-key) 방침을 소개했다. 그는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외부에 떠들썩하게 자랑하는 로펌이 아니다"고도 했다.
하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듯이, GT가 한국시장에서 연이어 두각을 나타내며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GT는 2018년에 발표된 한국 기업의 크로스보더 M&A 중 최대 규모였던 SJL 파트너스-KCC-원익 컨소시엄의 미 화학기업 모멘티브(Momentive Performance Materials) 인수 거래에서 매수인 측을 대리해 지난 5월 거래를 종결했으며, 지난 해 말엔 KT 자회사를 대리해 이른바 모뉴엘(Moneual) 국제사기 사건의 미국 측 공모자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배심원 판결을 통해 3200만 달러의 손해배상 승소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로펌 시장에서 GT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가운데 리걸타임즈가 최근 한국을 찾은 GT의 에들린(Richard A. Edlin) 부회장(Vice Chair)을 인터뷰했다. 에들린 부회장은 뉴욕사무소의 소송파트를 이끌고 있는 30년 이상 경력의 유명한 소송변호사로, 앞에서 소개한 KT 소송에서도 팀의 리딩 변호사로 활약했다. 이번 방한이 40번째쯤 되는 한국 방문일 정도로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한국 업무를 챙기고 있는 그와의 인터뷰는 6월 초 서울 세종대로의 파이낸스센터에 위치한 GT 서울사무소에서 진행됐다.
-GT의 한국 업무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파트너 등 4명 상주
"2013년 김창주 대표 혼자 부임해 서울사무소를 열었는데, 지금은 파트너 3명과 오브 카운셀(Of Counsel) 1명 등 4명이 상주하는 규모로 커졌다. 물론 업무도 비례해서 늘어나고 있다. 서울에 진출한 여러 외국 로펌 중 한국사무소를 축소하거나 철수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GT 서울사무소는 오히려 인원과 업무가 확대되고 있어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렇게 GT의 한국 업무가 확대되며 꾸준히 발전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무엇보다도 전 세계 39개 사무소에 2100명이 넘는 일류 변호사들이 포진한 GT의 뛰어난 플랫폼과 한국 기업과 한국 사정에 밝은, 한국어가 유창한 서울사무소 변호사들의 시너지가 GT 경쟁력의 바탕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국 기업들 중에 일종의 언더독(underdog)으로 시작해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발전한 곳이 많은데, 1967년에 설립되어 비약적으로 발전해온 GT와 비슷한 점이 많다. 이러한 공통점, 공통된 문화도 GT가 한국 기업들에게 어필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에들린에 따르면, GT는 1967년 플로리다의 마이애미에서 유대인 변호사 3명이 주춧돌을 놓아 일종의 지역 로펌(regional law firm)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불과 50년 만에 올 7월에 문을 열 예정인 이탈리아의 밀라노사무소까지 더하면 전 세계에 모두 40개 사무소를 가동하는 굴지의 글로벌 로펌(global law firm)으로 성장했다.
1967년 플로리다에서 출발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면, 지역 로펌에서 전국 로펌(national law firm)으로, 다시 전국 로펌에서 글로벌 로펌으로 발전과정을 밟아왔는데, 에들린 부회장은 글로벌 로펌 못지않게 지역 로펌, 전국 로펌의 가치, 의미를 강조했다.
"미국은 매우 큰 나라입니다. 미국엔 지역 로펌으로 시작해 크게 발전한 로펌들이 많이 있지요. GT도 업무능력이 탁월한 지역 로펌 중 하나로 발전을 거듭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뛰어난 변호사들, 스타플레이어들이 자꾸 더 큰 로펌으로 떠나는 문제가 생겼어요. 1990년대 초반, 창업자 중 한 분이 큰 결단을 내렸습니다. 지역 로펌에서 미국 전역을 커버하는 전국적인 로펌으로 키워보자는 전략적인 결정을 내려 이후 미국 전역으로 사무소를 확장했습니다.
미국에만 30개 사무소
여기서 미국 전역이란 워싱턴이나 뉴욕, LA와 같은 거점 도시만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GT는 1991년에 문을 연 뉴욕사무소를 비롯해 워싱턴 DC, LA에도 사무소가 있지만 필라델피아, 애틀랜타, 덴버, 오스틴, 라스베이거스, 실리콘밸리 등 미국에만 30개의 사무소를 두고 있어요. 달리 말씀드리면, 미국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다른 어떤 로펌보다도 미국시장 전역을 잘 커버하는 로펌이 GT라는 겁니다. 워싱턴이나 LA 등의 빅마켓만 커버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들린은 이어 "미국 밖에 있는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보면, 미국에 진출해 사업을 하려고 할 때 미국 전역에 액세스(access)가 있는 로펌을 찾게 된다"며 "그런 면에서 GT가 미국에서 사업을 전개하려는 한국 기업들에게 유니크(unique)하게 미국 곳곳에 그런 접근성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례로 거래규모가 3조 5000억원에 이르는 모멘티브 인수 거래의 경우 미국에서만 GT의 뉴욕, 워싱턴 DC, 마이애미, 시카고사무소의 변호사들이 관여했고, 이와 함께 서울사무소의 김창주, 김익수 변호사와 독일 베를린사무소의 변호사들이 함께 투입되어 거래를 마무리했다. 인터뷰에 배석한 김창주 서울사무소 대표는 "GT는 그냥 미국 로펌이 아니라 미국의 금융센터, 주요 주(states), 리딩 비즈니스센터 등에 있는 30개 사무소에 최고 수준의 변호사들이 포진해 클라이언트에 포커스를 맞춘 통합 자문을 제공하는 로펌"이라며 "GT의 광범위한 미국내 네트워크를 보고 사건을 의뢰하는 클라이언트가 상당히 많다"고 소개했다.
2013년 서울사무소 오픈
플로리다에서 시작해 미국의 전국적인 로펌으로 발돋움 한 GT가 처음 해외사무소를 연 것은 암스테르담사무소를 오픈한 2003년. 동북아엔 이후 2008년 상하이사무소를 거쳐 2013년 서울사무소가 문을 열었고, 도쿄에도 2015년부터 사무소를 두고 있다.
-6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2013년 서울사무소를 연 배경에 대해 듣고 싶다.
"서울은 전 세계 인구의 25%가 거주하는 동북아의 중심에 있고, 특히 한미 협력관계 등을 고려할 때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2008년 김창주 변호사가 GT에 합류하면서 한국 업무를 본격적으로 발전시켰는데, 한국 업무를 더 키워보자, 서울에 가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한국 클라이언트들을 가까이에서 서포트하면서 진정한 가치를 창출해보자 그런 생각으로 법률시장이 열리자 서울에 사무소를 열었고,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한국에서의 업무가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한국 기업들이 굉장히 단기간에 크게 발전한 것처럼 GT도 짧은 시간에 굉장히 강력한 로펌으로 성장한 유사성에 비추어 볼 때 GT의 높은 경쟁력이 한국 기업들에게 어필할 것으로 생각했고, 이러한 예상이 맞아떨어진 성공적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의사결정 매우 빨라
이와 관련, 서울사무소의 최동두 캘리포니아주 변호사는 "GT가 사무소도 많고, 변호사도 가장 많은 미국 로펌 중 한 곳이지만, 의사결정이 매우 빠르고, 신속하게 팀을 짜 대응에 나선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컨대 한국의 클라이언트가 유럽이나 중남미에서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한국에 있는 변호사가 곧바로 유럽 등 GT의 현지사무소에 연락해 서비스를 받게 할 수 있다"며 "미국 본사 등의 허락을 받아 일을 진행하는 게 아니라 각각의 파트너들이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고 4개 대륙에 나뉘어 있는 GT 전 세계 사무소의 리소스를 동원해 주도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GT는 실제로 이러한 효율적인 운영을 통해 높은 시너지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 40개 오피스를 가동하며 2100명이 넘는 변호사가 활동하는 GT로선 이러한 방법을 채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GT는 물론 단일 파트너십을 통한 '원 펌(one firm)'의 구조이며, 파트너들을 파트너 칭호 대신 주주란 의미의 'shareholder'로 부를 정도로 구성원들의 소속감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변호사들 업무성과 중시
GT는 또 뉴욕의 오래된 전통 로펌들보다 소속 변호사들의 구체적인 업무성과(performance)를 중시하는 로펌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실질적인 접근이 고속 성장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로펌 경영의 오랜 경험이 쌓인 에들린에게 이른바 영업능력이 뛰어난 변호사와 업무능력이 출중한 변호사 중 누구에게 더 점수를 줘야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에들린이 곧바로 대답했다.
"어머니와 아버지 중 누가 더 좋으냐, 장남과 막내 중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고 묻는 것과 같은 질문입니다. 둘 다 중요하고, 각자 소질과 능력이 다양한 변호사들의 협조 속에 로펌이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에들린 부회장은 GT의 수많은 업무분야 중에서도 소송과 국제중재(Litigation & International Arbitration), 기업법무(Corporate), 부동산(Real Estate), IP의 4개 분야를 특히 강조했다. 이들 업무분야는 미국내 소송과 국제중재에 자주 노출되고, 크로스보더 투자 등의 거래에 많이 나서는 한국 기업들에게도 수요가 많은 분야로, 에들린은 모두 'Tier 1'의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자랑한다고 구체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상업소송 수행 미국내 1위
소송 분야의 경우 Lex Machina가 집계한 2009년 이후 상업소송(Commercial Litigation) 수행 사건 수에서 미국 로펌 중 1위를 차지한 곳이 GT이며, IP 분야는 250명 이상의 풀타임 변호사가 포진하고 있다고 했다.
GT의 업무파일을 들춰보면,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의 주요 기업을 대리해 미국내 소송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한 사례를 여러 건 확인할 수 있다. GT는 특허괴물(NPE)이, 애플을 상대로 공격해 재미를 본 동일한 특허를 활용해 삼성전자를 제소한 사건에서 배심원 평결을 통해 비침해 판정을 이끌어냈으며, 현대자동차가 전기자동차 관련 캘리포니아주 소비자 보호규정 및 품질보증 관련 연방법규(Magnuson-Moss Warranty Act) 위반을 이유로 피소된 집단소송에서도 현대차를 대리해 승소했다.
KT 자회사를 대리해 미국 측 공범인 컴퓨터 회사를 상대로 배심원 승소 판결을 받은 모뉴엘 사기 사건은 미국 법원의 첫 판결이라는 점이 의미 있는 대목. GT 외에도 여러 국내외 로펌에서 미국의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내 합의로 종결했으나, GT는 배심재판까지 가는 공방 끝에 배상 판결을 받아낸 것이다. 서울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여러 피해자가 동시다발적으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으로, 판결의 집행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첫 판결의 의미가 더욱 돋보이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GT는 이 외에도 현대오일뱅크 IPO에서 발행사 측에 자문하고 있으며, 한화시스템과 SK바이오팜 IPO에선 주관사 측에 자문하는 등 IPO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GT는 미국 기업의 한국거래소 상장과 관련해서도 자문했다.
가스공사 마이너스 금리 채권발행 성공
또 KEB하나은행, LG디스플레이, KDB생명, 한국철도공사, 한국가스공사 등의 해외채권 발행과 관련해 자문하는 등 이른바 DCM 쪽에서 활발하게 실적을 쌓고 있다. GT는 올 3월 한국가스공사의 3억 달러 규모의 스위스프랑 채권발행에 성공적으로 자문했는데, 이 거래는 실질금리가 -0.02%로, 국내 최초의 마이너스 금리자금 조달 성공 케이스였다.
GT의 꾸준한 성장과 업무분야 추가는 서울사무소 맨파워의 확충에서도 확인된다. 2013년 회사법 분야의 파트너인 김창주 대표가 단신 부임해 서울사무소를 오픈한 GT는 2017년에 자본시장과 M&A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김익수 변호사가 파트너로 합류하고, 이어 1년 후인 2018년엔 국제중재와 분쟁 관련 사건에 경험이 풍부한 최동두 파트너가 합류해 서울사무소의 업무영역을 자본시장, M&A, 일반 기업법무, 소송 및 국제중재, 정부조사, 금융 규제와 컴플라이언스까지 확대했다. 올 초엔 자본시장 업무, 그중에서도 DCM 쪽에 경험이 풍부한 황은상 변호사가 합류했다. 2017년부터 매년 1명씩 변호사가 늘어난 셈이다.
에들린 부회장은 "한국 기업, 한국시장의 세계화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진행될 것"이라며 "GT는 서비스 프로바이더(provider)로서 한국 기업들이 크고 성장하는 데 계속 참여해 기여하고 싶다"고 한국시장에 대한 열의를 다시 한 번 나타냈다. 그러나 규모를 엄청나게 키울 생각은 없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의견. 에들린은 한국 로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한국 로펌들과 협력을 많이 하고 있으며, 앞으로 상호 협력관계를 더욱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규모 엄청나게 키울 생각 없어"
유명한 소송변호사인 그에게 미국 등에서 소송에 많이 연루되는 한국 기업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그는 "소송을 피하는 팁을 주기는 어렵지만, 좋은 변호사를 선임하는 게 중요하다"며 "유능한 변호사일수록 복잡한 사실을 간단하게 단순화해서 설명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그런 능력이 소송을 승소로 이끄는 비결 중 하나"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또 미국에서의 소송을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에 비유하고, "기술을 쉽게 설명하고, 단순화시켜 배심원을 잘 설득해야 승기를 잡을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기술 등 복잡한 내용을 많이 알고 있는 것도 좋지만, 변호사에겐 사실을 단순화해 전달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했다. 30년 넘게 소송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면, 'Simple stories win.'이라는 것이다.
리걸타임즈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