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임금을 주면 사직서를 내겠다고 조건부 사직 의사를 밝힌 근로자에게 회사가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채 해고한 것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박영재 부장판사)는 3월 14일 교육관련물 제조업체인 Y사가 "김 모씨에 대한 해고를 부당해고로 판정한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을 취소하라"며 중노위를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2018누70792)에서 이같이 판시, 1심과 마찬가지로 Y사의 청구를 기각했다.
상시 10명의 근로자를 사용하여 교육관련물 제조판매업 등을 하는 Y사의 대표가 2017년 1월 18일 전체 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회사 경영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직원들에게 사직서 제출을 요구, 직원 5명은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부대표로 근무하던 김씨는 사직서를 내지 않았다. 김씨는 Y사의 대표에게 "내 동의가 없으면 권고사직이 아닌 해고가 되는 것이다. 미지급 급여와 대여금 5000만원을 받기 전에는 절대 사직서를 쓸 수 없다. 급여를 받으면 사직서를 쓰겠다"고 말했다. 이후 김씨는 1월 31일 대표와 면담을 한 후로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고, Y사는 다음날인 2월 1일 김씨에 대하여 4대 보험 상실신고를 하면서 경영악화로 인한 권고사직을 상실사유로 기재했다. Y사는 이에 앞서 1월 24일 이미 사직서를 제출했던 직원 5명에게 1월 25일까지만 근무할 것을 통보하고, 이들을 권고사직 처리했다.
이에 사직서를 낸 직원 5명과 김씨 등이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자, 김씨가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 중노위가 '김씨가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은 점, 김씨가 대표에게 미지급 임금과 5000만원을 지급받으면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말하였으나 미지급 임금과 대여금 문제가 해결되지 아니하여 사직서 제출의 조건이 성취되지 않았거나 조건부 사직의 의사표시가 철회되었다고 볼 수 없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해고사실이 인정되고, Y사가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였다고 인정할 아무런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김씨에 대한 해고를 부당해고로 인정하고 김씨를 원직복직시키고 해고 기간 동안의 임금을 지급하라는 판정을 내리자 Y사가 "김씨와의 근로관계는 김씨의 사직 의사표시를 수리함에 따라 종료된 것일 뿐이고, 김씨를 해고한 바 없다"며 소송을 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인용, "(미지급 급여와 대여금 5000만원을 받기 전에는 절대 사직서를 쓸 수 없다는) 김씨의 의사표시는 미지급 급여 지급을 조건으로 한 사직의 의사표시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하고, "그런데 원고는 2017. 1. 31.까지도 김씨에게 미지급 급여나 대여금을 지급하지 못하였고, 원고가 달리 김씨에게 이와 같은 금원의 지급을 담보할 만한 다른 조치를 취하였다는 사정도 찾아볼 없으며, 이와 같은 상황에서 김씨가 기존의 입장을 바꿔 자발적으로 사직의 의사표시를 하였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뿐만 아니라 원고는 그 무렵 직원들로부터 일괄하여 사직서를 제출받고 있었고, 김씨에게도 계속하여 사직을 요구하고 있었는바, 만약 원고의 주장대로 김씨가 종전의 입장을 번복하고 사직의 의사표시를 한 것이라면, 원고가 김씨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김씨는 원고에게 사직서를 제출한 바 없다"며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더라도 원고가 김씨의 의사에 반하여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2017년 1월 31일 김씨가 Y사에서 스스로 사직한 것이 아니라 Y사가 김씨에게 일방적으로 근로관계 종료를 통보 즉, 해고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다. 김씨는 2017년 1월 24일 직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대표로부터 그만 나오라는 압박을 받아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였고, 1월 31일 대표와 면담을 마친 후 한 직원에게 '오늘까지만 나오라고 하는데 더 이상 멱살잡이나 이런 것을 하기 싫어 나오지는 않겠지만 법적인 절차를 밟아서라도 억울함을 풀어야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재판부는 이어 해고의 적법 여부 판단에서,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효력이 있는데(근로기준법 27조 1항), 원고가 2017. 1. 31. 김씨를 해고하면서 김씨에게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기재한 서면통지를 하였다는 점에 대하여 이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지적하고, "오히려 김씨의 사직의사에 따라 근로관계가 종료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원고의 태도와 해고의 경위에 비추어 보면, 원고는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기재한 서면통지를 하지 않았음이 분명해 보인다"고 밝혔다. 따라서 Y사의 김씨에 대한 해고는 절차적으로 위법하여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